고(故) 리영희 조사 (1929∼2010년):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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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 리영희 선생이 별세했다.
강준만은
정말 그랬다. 리영희는
그가
중국의 사상가이자 소설가인 노신
진실을 알리는 글쓰기는 리영희에게 견디기 쉽지 않은 개인사적 고통을 안겨 주기도 했다. 9번의 형사입건, 4번의 구속, 언론과 학계에서 모두 4번의 해직을 당했다.
그럼에도 리영희의 글은 수많은 사람들, 특히 대학생과 지식인 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시인 고은은 《만인보》에서
김동춘은 《전환시대의 논리》
유신독재가 시작되면서 사회가 잔뜩 얼어붙고 서슬 푸르고 흉흉하던 1974년 초여름에 출간된 이 책은 대번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박정희 정권은 1979년에 이 책을 불온서적으로 지목해 판매를 금지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 책을 몰래 구입해 읽었다. 1천9백 원이던 것이 헌 책방에서는 1만 원가량에 거래되기도 했다.
《우상과 이성》도 판금 조처에도 불구하고 1986년 7월 초까지 7만 1천여 부가 판매됐다.
박정희 정권은 곧장 보복했다. 《우상과 이성》이 출간되자마자 리영희를 반공법으로 구속시켰다.
미국 제국주의의 본질을 밝히다
리영희는 미국 제국주의의 본질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그는 일찍이 1960년대 중반에 미국의 베트남전을 비판했다. 당시 〈조선일보〉 국제부에서 근무한 리영희는
리영희는 베트남전 종결 10년을 맞이해 그동안 써 왔던 글들을 모아 《베트남전쟁: 30년 베트남전쟁의 전개와 종결》
리영희는 주한미군의 진정한 존재 이유에 대해서도 선구적으로 밝혀냈다. 리영희는 미국 지배자들이 한 주장, 예를 들어 미 국방부 부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미 의회에서 한 증언을 인용해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를 들춰냈다.
2000년대 초반에 반전 운동에 참가했던 청년들 중에는 미국 제국주의를 향해 포효하는 리영희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 중인 몸을 이끌고 반전 집회에 참여해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노무현 정부의 파병을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바그다드가 함락된 직후 열린 4월 12일
리영희는 독재정권이 금기시한 영역 중 하나인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진실을 알리는 작업을 했다.
특히 리영희가 1988년에 발표한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 연구》는
그러나 리영희는 북한 체제에 비판적이었다.
그렇다고 리영희의 북한 비판은 결코 남한 체제의 우월성 인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 리영희도 1990년대 초반 옛 소련 블록의 몰락을 보면서 고민과 갈등을 했고 긴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시대의 요청에 응했다. 잠시나마 김영삼 정권에 기대를 걸었던 리영희는 김영삼 정권의 대북정책에 환멸을 느끼면서 혹독한 비판을 퍼부었다
1999년 6월 15일 서해교전이 일어나자 리영희는 북방한계선의 역사적 사실관계를 밝히는 〈
리영희는 2000년 11월 뇌출혈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긴 투병 생활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리영희는 마지막까지 낙관과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