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엥겔스에 관한 트리스트럼 헌트의 전기는 나쁘지 않다. 이 책은 널리 읽히고 논의될 것이다. 헌트가 지적하듯이, 엥겔스의 자본주의 비판은 오늘날 경제 위기에서도 유효하다.
헌트는 영국 맨체스터의 노동계급 상태에 관한 엥겔스의 초기 저작부터 철학과 여성 차별에 관한 후기 저작까지 엥겔스의 주요한 지적 성과물들을 진지하게 검토한다.
헌트는 엥겔스와 그의 오랜 지적 동료인 칼 마르크스 사이의 관계를 자세히 서술하고, 엥겔스의 저작을 당시 지적 맥락 속에서 파악한다. 헌트는 이 위대한 교사도 선배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음을 보여 주는데, 예컨대 국가에 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광원이자 공장 노동자였던 제임스 리치의 이론에서 영향받은 것이었다.
말년의 엥겔스는 당시 유럽에서 성장하고 있던 사회주의 운동과 칼 카우츠키, 윌리엄 모리스, 케어 하디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아쉽게도 헌트는 1848년 혁명과 1871년 파리 코뮌의 역사적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다룬다.
물론, 엥겔스는 성인이 아니었다. 헌트는 엥겔스의 화려한 성 생활, 폭음, 여우 사냥 애호, 동성애에 대한 반감, 교활한 정치 책략 등을 다룬다. 게다가, 엥겔스는 맨체스터에서 가족 소유 공장을 운영하면서 상당한 소득을 벌었다.
헌트는 이 소득이 엥겔스와 마르크스가 분석한 잉여가치에서 나왔다고 지적한다. 그는 엥겔스가 위선적이었다고 비웃고 싶은 듯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회주의자라면 모순 속에 살 수밖에 없다. (훌륭한 와인 창고를 채우는 것을 제외하면) 엥겔스는 대부분의 소득을 좋은 일, 특히 마르크스 가족들에게 썼다.
헌트는 엥겔스에게 전반적으로 우호적이다. 그는 엥겔스를 “매력적인 모순과 무한한 희생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한다.
이 책의 결론에서 헌트는 엥겔스가 스탈린주의 선구자였다는 [흔한] 미신을 사실상 해체한다. 헌트는 결론에서 오늘날 중국 노동자들의 상태를 묘사하면서 1840년대 맨체스터와의 공통점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그는 엥겔스가 오늘 살았다면 ‘공산주의’ 사장들이 아니라 중국 노동자들의 편에 섰을 거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마지막 장은 레닌을 엘리트주의적 전위주의자로 그리는 무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여러모로 이 책은 프랜시스 윈이 쓴 《마르크스 평전》(푸른 숲)의 자매편이라 할 만하다. 박식하면서도 생동감있는 문체로 씌여 있다.
헌트의 엥겔스 전기는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이 책이 엥겔스의 글을 읽도록 자극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