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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동당의 무기력한 역사

영국 노동당의 무기력한 역사

“우리는 노동당을 재활용할 수 있다.” 9월 30일 본머스에서 열린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노동당 좌파와 일부 주요 노조 지도자들은 여전히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노동당의 역사 전체는 그런 시도가 실패할 것임을 보여 준다.

아마도 토니 블레어는 램지 맥도널드 이래로 가장 우파적인 노동당 지도자일 것이다. 맥도널드는 1931년 노동당을 내팽개친 채 보수당 정부를 이끌었다.

그러나 노동당의 역사에는 재활용할 만한 명예로운 전통이 거의 없다.

노동당의 작동 방식은 언제나 사회주의자 현장활동가들의 압력에서 정부가 벗어나게 도와 주는 것이었다. 이 점은 일찍이 1924년 최초의 노동당 정부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존 스캔런이 당시 노동당의 역사를 다룬 선구적 저작에서 말했듯이, 노동당원들은 “[당 지도부로] 좌파 집행부를 선출했”지만, 램지 맥도널드는 “우파 각료”를 골라 썼다.

맥도널드 내각은 정부 정책들에 대한 [당] 집행부의 불만을 무시했다. 그 때 이후 그런 양상은 결코 바뀌지 않았다.

데이빗 코츠는 노동당 역사를 서술하면서 이렇게 묘사했다. “노동당 좌파 외부에 있는 세력이 유권자들을 급진화시켰을 때만, 그리고 우파 지도부가 선거 패배 때문에 일시적으로 불신당했을 때만, 노동당 좌파는 당에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이런 좌경화가 있었는데도 역대 노동당 정부들은 영국 자본주의의 필요에 맞게 정부 정책들을 추진하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1964년과 1974년의 윌슨 정부는 사회주의와 “부유세 철저 징수”라는 그럴듯한 말로 임기를 시작했지만, 그 결말은 복지 삭감, 임금 억제, 실업 증대, 파업 금지 조처 따위였다.

또 다른 노동당 역사가 랠프 밀리반드(블레어 정부의 현직 각료 두 명의 아버지)는 1972년에 마치 예언처럼 이렇게 말했다.

“노동조합 운동의 좌경화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현장 조합원들의 전투성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조합 지도권을 장악한 새 좌파가 노동당 지도부를 완전히 변화시킬 의사를 조금이라도 갖고 있다거나 그런 기회가 생기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점을 보여 주는 증거는 전혀 없다.

“좌파 노조 지도자들을 포함한 노조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노동당 안에서 조직 노동자들의 대표자 구실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노동당 안에서 그들의 정치적 동료들과 협상하는 관계이지, 지금 당을 통제하는 자들과 근본으로 다른 목적을 위해 당 통제권을 장악하려고 다투는 정치적 경쟁 관계는 결코 아니다.”

1970년대 말의 윌슨 정부와 캘러핸 정부는 이런 예견을 완전히 입증했다. 한때 좌파 노조 지도자였던 자들이 노동자들에게 복지 삭감과 임금 억제 등의 정책들을 받아들이라고 말했다.

현장의 사회주의자 평당원들이 반기를 들자 일부 노조들이 이에 합세하기 시작했는데, 그조차도 아무 효과가 없었다.

토니 클리프와 도니 글룩스타인이 노동당의 역사를 다룬 그들의 저작에서 말했듯이, “그 당시 노동당 전당대회에서는 집행부[의 결정]이 자그마치 23번이나 기각될 수 있었다. 집행부의 정책들은 흔히 정부에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다.

“1977년 전당대회에서는 상원(上院) 폐지를 노동당 선거 공약에 포함시킨다는 안건이 6백24만 8천1백 표 대 9만 1천 표로 가결됐다. 그러나 캘러핸은 이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상원 폐지는 공약에 포함되지 않았다.

“동일한 전당대회에서 ‘클레이 크로스의 노동당원 21명의 피선거권 박탈이 지속되는 것’을 개탄하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정부는 이 결의안을 완전히 무시했다.

“1978년 전당대회에서는 임금 인상률을 5퍼센트로 제한하는 정부 방침이 19만 4천 표 대 4백7만 7천 표로 부결됐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한때 좌파 국회의원들의 고문이었던 랠프 밀리반드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 것도 당연하다.

“노동당은 사회 변화에 진지한 관심을 가진 정당으로 변모할 수 없을 것이다.

“노동당 지도자들이 당 활동가들의 압력과 요구에 급진적 미사여구로 응답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 때조차도 그들은 노동당이 실제로는 여전히 과거의 노동당으로 남아 있기를 바랄 것이다. 즉, 자본주의 체제 내의 온건한 개혁 정당, 자본주의 체제 내에 점점 더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지금은 결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이 뿌리내린 정당 말이다.

“자본주의 체제에는 그런 정당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런 정당은 [대중의] 불만을 관리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하고 그것[불만]을 안전한 테두리 안에 묶어 두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언제나 노동당 안에는 진지한 사회주의자들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약 35년 전에 사회주의 저술가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노동당 좌파의] 경험을 이렇게 요약했다.

“노동당 좌파는 공식 노동당 전체와 그 전망을 희미하게 재현한 것과 비슷했다.

“노동당이 노동계급의 목표와 기존 국가 권력 구조가 타협한 결과였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노동당 좌파는 사회주의적 목표와 기존 당[노동당] 권력 구조가 타협한 결과였다.

“노동당 좌파는 이 당 권력 구조를 개혁하려고 애를 썼지만, 끊임없이 그것과 충돌했다.

“필연적으로 노동당 좌파는 그들이 영향을 미치거나 대체하려 했던 지도자들이나 간부들과 꼭 마찬가지로 기구 정치를 하게 됐고, 수천 명의 이름으로 치러지는 위원회 투표를 조작하게 됐으며, 공허해지고 있는 운동 기구들과 그런 기구들의 대의 명분이었던 대중을 혼동하게 됐다.”

이런 얘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실이다. 그러나 반전 운동, 그리고 노동당의 사회 정책들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운동의 규모만 보더라도 대안의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사회주의 정치 세력이, 결코 통제할 수 없는 노동당 지도자들을 통제하려는 헛수고에 더는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우리가 “노동당 재활용”이라는 기치 아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정치로 되돌아간다면 그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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