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불안정의 원인 ─ 제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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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주 동안 우리는 전쟁에 대한 불안감을 몸소 느꼈다. 많은 이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해외 뉴스에서 보던 끔찍한 불행이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을 것이다.
주류 언론들은 밤낮으로 전문가를 동원해 해설 보도했다. 그들은 입을 모아 북한에 강한 모습을 보이고, 강한 군대를 양성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의 전제조건인 것처럼 주장했다.
그러나 〈레프트21〉이 반복적으로 주장한 것처럼, 그런 대안은 더 큰 재앙을 낳을 뿐이다.
사실, 어떤 나라가 외부의 ‘군사적 위협’에 군비 확장으로 대응하고 이것이 다른 나라의 군비 확장을 낳고, 그것이 또 다른 나라의 군비 경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1백 년 넘게 현대 세계 체제의 근본적 특징이었다.
그러나 현대사 책을 한번 읽어보기만 해도 알 수 있듯이 군사 경쟁은 평화를 가져오기는커녕 1·2차 세계대전, 냉전, 1990년대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등 크고 작은 전쟁과 불안정을 낳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각 나라들은 군사 경쟁으로 내몰리는가?
경쟁 - 자본주의의 알파요 오메가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경쟁적 성격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경쟁은 시장에서 기업들의 가격 경쟁뿐 아니라 나라 간 경쟁으로 표현된다.
20세기 초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런 경쟁 체제를 제국주의라고 불렀다. 이 단어는 흔히 강대국의 약소국 억압과 식민 지배에 한정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더 폭넓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를 뜻하는 것이며 이 체제의 기본적인 특징은 여전히 그대로다.
첫째,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떤 국가가 다른 국가와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성공적인 자본주의 경제를 건설해야 한다. 따라서 국가는 자국에 기반을 둔 기업들이 세계적 경쟁에서 ‘승리’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한동안 기업 활동에서 국경과 ‘모국’이란 개념이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세계화론’이 유행하면서 국가와 자본의 밀접한 관계가 더는 체제의 근본 성격이 아니라는 사고가 팽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론자들의 주장은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세계 5백대 기업들은 자신의 출신 국가가 있는 특정 지역(북미, 유럽, 동아시아가 가장 중요한 세 축이다)에, 특히 자기 출신국에 집중적으로(총 투자의 70퍼센트 이상) 투자한다.
이것은 기업 활동이 원활히 이루어지려면 국가 권력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양질의 노동력을 공급하는 교육 체제, 도로와 항만 등의 사회간접자본, 원료와 자원의 원활한 공급 등은 개별 기업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이른바 ‘세계화’ 시대에 국가들은 세계시장에서 자국 자본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종종 국가 관료들은 직접 기업 ‘영업 활동’에 뛰어들기도 한다.
예컨대, 최근 위키리크스는 미국 외교관들이 미국의 대표적 제조업 기업인 보잉사의 항공기를 팔아먹기 위해 해외에서 ‘보따리 장사’를 해 온 사실을 폭로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미 국무부 경제부문 국장 로버트 호매츠는 ‘이것이 21세기의 현실이다. 정부들은 자국 기업들을 지원하는 데 더 큰 구실을 하고 있으며 우리도 똑같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사적 경쟁
둘째, 국가가 자국 자본주의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은 개별 기업의 시장 경쟁을 보조하는 데 멈추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국가는 외교와 군사력도 강화해야 한다.
경제적 경쟁과 군사적 경쟁은 밀접히 연관돼 있다. 예컨대, 2000년대 미국 부시 정부와 네오콘이 중동 석유를 통제하려고 벌인 전쟁들에서 우리는 제국주의 열강이 자국 자본주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군사력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석유를 고리로 유럽·일본·중국 등의 경쟁국들을 압박하기 위해 이라크인 수백만 명을 제물로 삼았다.
사실, 미국 제국주의가 이런 식으로 군사력을 활용한 것은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본주의 국가로 등극하는 데서 군사력은 대단히 중요한 구실을 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선진 자본주의 지역이 미국 군사력의 보호 아래 있게 되면서 이들 나라들은 대공황 당시 지배적이던 폐쇄적 경제 체제를 포기하고 미국의 투자와 상품에 문호를 활짝 개방했다.
미국의 한 급진적 학자가 당시 미국 제국주의를 ‘문호 개방 제국주의’라 부른 것은 이 점을 잘 지적한 것이었다.
반대로, 비슷한 시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폐쇄적 스탈린주의 체제는 문호 개방을 통한 시장 경쟁에서 미국이나 선진국과 경쟁하기엔 경쟁력이 너무 약한 일부 후진국들이 선택한 체제였다.
그러나 시장 가격 경쟁을 가로막았다고 해서 그들이 자본주의 경쟁 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나라들은 경쟁 압력을 주로 국가들 간 군사적 경쟁 압력으로 경험했다.
이 나라들의 관료들은 군사적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대부분의 자원을 중공업에 쏟아부었다. 이 결정은 그 어떤 민주적 토론도 없이 집권세력이 일방적으로 내린 것이었다. 따라서 흔한 오해와 달리 이 나라들은 모종의 사회주의가 아니었다. 관료들이 자본가 구실을 하며 중요한 결정을 독점하는 국가자본주의였을 뿐이다.
위계적 질서
그러나 국가들 간 충돌이 발생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는 그것이 1차대전 같은 열강 간 전쟁인지 아니면 열강과 약소국 간 전쟁인지에 따라 다르다. 제국주의 경쟁은 자본주의에서 벌어지는 다른 모든 경쟁과 마찬가지로 승자와 패자, 강자와 상대적 약자를 낳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체제는 흡사 학교 성적처럼 위계서열이 대단히 명확하다.
물론 이 서열은 변한다. 20세기 초 영국은 최강대국 자리를 미국에 넘겨 줬다. 러시아는 20세기 중반 미국과 우열을 겨루던 세계적 강국에서 오늘날에는 지역 강국으로 전락했다. 또, 최근 중국의 부상은 다른 열강을 긴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는 ‘게임의 법칙’을 정하는 소수의 열강이 있고, 다른 편에는 그 법칙에 호응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거나 아니면 그것에서 배제됐기에 때때로 저항하는 다수의 중소국들이 있는 제국주의의 위계적 특징은 계속 유지돼 왔다.
오늘날 군사적 측면에서 위계는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국과 북한이 갈등을 빚을 때 단순히 양비론적 태도를 취할 수 없는 것은 전 세계 군비의 약 50퍼센트를 지출하고 3백여 개의 군사 기지를 전 세계에 촘촘히 배치한 미국과 최빈국인 북한 중 누가 오늘날 동아시아를 포함한 제국주의 경쟁 체제의 불안정에 더 큰 책임이 있고, 누구의 패배가 제국주의 경쟁 체제의 약화에 더 크게 기여할지 명백하기 때문이다.
현재 동아시아 불안정의 핵심은 미국 제국주의가 제국주의 서열 체제를 뒤흔들 수 있는 잠재적 지역 경쟁자인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 북한 위협을 부추겨 지역 동맹들을 규합하고 대북 압박을 유지하는 데 있다. 북한 같은 소국이 세계적 열강이 밀집한 이 지역의 안정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주류 언론의 인식은 현실과 거리가 한참 먼 것이다.
물론, 미국 제국주의의 대북 압박이 좌절되기를 바란다고 해서 그것이 독재를 유지하며 핵 개발에 몰두하는 북한 김정일 정권에 대한 정치적 지지로 표현돼서는 안 된다.
여태까지의 논의에서 두 가지 중요한 정치적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첫째, 국가들 사이의 경쟁이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특징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를 그대로 둔 채 국제법, 국제 기구, 국제 협정 등 국가들 사이의 타협으로 제국주의적 불안정과 전쟁을 막을 수는 없다. 일부 좌파들이 미국 제국주의의 대안으로 착각하는 중국도 자본주의 경쟁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기 때문에 대안이 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진정한 반제국주의 운동을 건설하려면 자본주의 국가들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간 연관 때문에 결국 반제국주의 운동은 자본주의에 맞서는 혁명적 투쟁과 결합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