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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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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의 울타리를 넘어서 (토끼 울타리, 필립 노이스 감독, 94분)

토끼 울타리는 간결하지만 아주 힘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실화다.

몰리, 그레이시와 데이시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지갈롱이라는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살고 있는 소녀들이다. 어느 날 서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보호관인 A. O. 네빌은 이들이 백인남성과 원주민 여성간의 혼혈아라는 사실을 알고 당시 법에 따라 원주민들로부터 격리시키라는 명령을 내린다. 소녀들은 강제로 무어 강 원주민 정착지로 이주되고 그곳에서 백인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몰리는 겉으로는 친절해 보이는 이 정착촌이 사실은 역겨운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다. 그녀의 주도로 그레이시와 데이시는 정착촌에서 탈출하고 토끼 울타리를 따라서 집으로 향하는 2천 킬로미터 이상의 여행을 시작한다.

이 영화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잃어버린 세대”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잃어버린 세대란 20세기 초부터 1970년까지 백인으로 동화시키기 위해 강제로 정착촌으로 이주되었던 원주민 아이들을 이르는 말이다.

이 영화의 전반부는 당시의 인종차별제도를 잘 보여주는 장면들로 가득 차 있지만 특히 세 장면이 눈에 띈다.

하나는 지역경찰이 무어강 정착촌으로 데려가기 위해 어머니로부터 아이들을 강제로 떼어 놓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격한 감정으로 충만해 있다. 아이들은 어머니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 하지만 경찰은 법을 들먹이면서 아이들에게 “순순히 따라오지 않으면 너희 엄마도 잡아넣겠다”고 협박한다.

무어강 원주민 정착촌에 대한 묘사도 대단히 탁월하다. 병원처럼 보이는 하얀색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는 정착촌은 실제로는 누군가를 치료하기보다는 병을 만들어 내는 장소로 보인다. 아이들은 자기 말이 아니라 영어만 써야 하고, 가톨릭 신앙을 강요당하며, 아무런 선택의 권리도 없이 백인 가정의 가정부나 값싼 농장 노동자로 양육된다. 아이들은 보호관 네빌을 데빌(악마)이라고 부른다.

보호관 네빌이 지배계급 여성들에게 자신의 정책을 설명하는 장면은 당시의 원주민 억압이 얼마나 역겨운 이데올로기에 기초하고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그는 슬라이드를 보여주면서 “우리가 혼혈 원주민 아이들을 백인들과 교배시킨다면 그들은 세대가 지나면서 점차 백인들로 진화할 것이다.”하고 설명한다.

토끼 울타리는 대사가 많은 영화는 아니다. 특히 후반부는 아이들이 여행을 하면서 맞닥뜨리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자연 환경에 대한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은 아름다우면서도 잔인한 오스트레일리아의 자연 경관을 탁월하게 잡아냈다. 인권운동가이기도 한 음악가 피터 가브리엘은 대사가 빠진 공백을 자연음과 원주민의 노래가 결합된 음악으로 보충했다.

어떤 사람은 영화의 이런 점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억압의 역사에 대한 역사적 통찰력을 원한 사람들은 영화의 앞뒤에 배치된 짧은 설명 자막으로는 영 성이 차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사건의 사회적인 맥락이 간략하게 다루어지는 한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토끼 울타리는 맨 마지막 장면 때문이라도 꼭 한번쯤 볼만한 영화다. 아이들의 여정이 끝나고 몰리의 나레이션도 끝나 갈 때 갑작스럽게 현실의 몰리와 그레이시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난다. 팔십을 넘어서 구부정한 등과 얼굴에 깊게 파인 주름은 노쇠해진 육체를 보여주지만,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을 보면 정부와 그들 중 누가 진정한 도덕적 승리자인가를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