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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서 연속혁명이 이미 일어났는가?

〈레프트21〉 51호 1면 헤드라인은 튀니지와 이집트에 이어서 중동의 독재자들이 연쇄적으로 타도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이를 “중동의 연속혁명”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그 단어가 단지 혁명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을 뜻한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연속혁명이라는 단어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의미를 지닌 용어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로 사용하지 않을 경우 그릇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트로츠키가 정식화한 연속혁명론의 첫째 측면은 노동계급이 아직 인구의 소수인 상대적 후진국에서조차 노동계급이 사회변혁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노동계급은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부르주아 민주주의 변혁과 사회주의적 변혁을 연속적으로 함께 수행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 여부다. 러시아에서도 독재자 짜르를 타도했던 1917년 2월 혁명은 정치 혁명이긴 했지만 아직 연속혁명이 수행된 것은 아니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변혁(농민들에게 토지 분배,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 보장 등)과 사회주의적 변혁을 동시에 수행한 연속혁명은 인구의 소수였던 노동계급이 농민을 이끌고 권력을 장악한 10월에서야 비로소 시작했다.

이런 점에서 현재 중동의 혁명은 아직 연속혁명이 수행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비록 앞으로 그렇게 발전할 잠재력이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연속혁명의 둘째 측면은 어떠한가? 연속혁명론의 둘째 측면은 국제적으로 노동자 혁명이 확산돼 몇몇 선진국에서 노동자 국가 수립이 성공해 그곳의 도움을 얻어야 상대적 후진국에서 사회주의적 변혁이 완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중동에서 독재자들을 타도하는 혁명이 여러 나라로 확산되는 것은 연속혁명 이론의 타당성을 힐끗 보여 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트로츠키가 연속혁명의 둘째 측면을 정식화한 것은 혁명 중에도 노동자 혁명의 국제적 확산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것은 노동자 혁명의 확산만이 사회주의적 변혁을 시작한 상대적 후진국에서 그 변혁을 완수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도 현 중동 혁명 상황을 연속혁명이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노동자 권력

연속혁명 사상은 스탈린주의자들의 단계혁명론과 일국사회주의론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스탈린주의자들은 후진국에서는 생산력 수준이 낮아 당장 사회주의적 변혁을 추구할 수 없으므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변혁만 수행해야 한다는 단계변혁 전략을 갖고 있었다. 이런 전략은 노동계급이 자본주의를 넘어선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제어했다.

일국적 관점에 기초한 스탈린주의자들은 국제 혁명 노선을 버리고, 소련 국가 방어를 명분으로 각국 공산당들에게 자본가적 정치 세력과의 동맹에 노동계급의 실천을 종속시키는 민중전선 전략을 종용했다.

반면 연속혁명론은 1917년 10월 혁명과 그 여파로 1918~23년 오스트리아·이탈리아·헝가리·독일 등에서 노동자 혁명이 확산됨으로써 역사의 시험대를 통과했다.

그러나 당시 서유럽에 확산된 노동자 혁명은 실패했다. 서유럽에서는 오랜 노동계급 투쟁 과정에서 훈련되고 노동계급 조직에 광범하게 뿌리를 내린 러시아의 볼셰비키와 같은 혁명적 조직이 저발전했기 때문에 그 혁명을 제대로 이끌 수 없었다. 그 결과 러시아 혁명은 고립돼 변질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스탈린의 반혁명을 통해 혁명의 성과가 파괴되는 비극을 겪었다.

이렇듯 연속혁명은 자동적 과정이 아니다. 권력 장악을 향한 노동계급의 자기 의식적 행동이 열쇠다. 그리고 그것은 목적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전략이다. 그런데 지난 호 〈레프트21〉 헤드라인은 마치 현재 중동에서 연속혁명이 이미 일어난 것처럼 여기게 해, 연속혁명이 목적의식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전략이라는 점을 놓치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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