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 만한 나라에서는 혁명이 일어나기 어렵지 않은가?’, ‘한국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분열해 있기 때문에 혁명이 일어나도 힘을 발휘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내가 최근 〈레프트21〉 독자들과 중동 혁명에 대해 토론하면서 받은 질문들이다.
튀니지나 이집트보다는 ‘먹고살 만한 나라’ 한국, 한국보다 훨씬 더 노동조건과 복지환경이 좋은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혁명이 불가능한가? 그렇다면 1968년에 일어난 프랑스에서의 반란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연속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쟁취한 다음에야 사회 혁명이 가능하다는 단계론적 공식에 도전하면서, 동시에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선진국에서는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공식에 대해서도 반문을 던진다. 중동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우리는 그리스, 프랑스에서 대중파업이 벌어지는 것을 봤다. ‘먹고살 만해 보이는 나라’들의 국민들은 왜 거리로 계속 쏟아져 나오는 것일까?
이집트의 독재자 무바라크는 아주 오랫동안 이슬람과 기독교 간의 종교 갈등을 부추기며 분열 지배전략을 구사해 왔다고 한다. 한국의 지배자들도 그동안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이간질하면서 노동계급을 분열시켜 왔다.
그러나 우리는 수백 년 된 종교적 갈등을 뛰어넘어 독재자를 물러나게 한 이집트인들의 위대한 투쟁을 봤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사람들의 열망이 간절해지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분열쯤은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월급이 튀니지 노동자들의 월급보다 더 많겠지만, 나도 튀니지의 노동자들처럼 회사에서 사장을 내쫓고 싶다. 자본주의의 온갖 착취와 억압과 차별 속에 살아가는 노동자들이라면 우리는 차이점보다 훨씬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