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서방 개입은 불가피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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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공습 이후 벌써 조중동 등 우파 언론들은 ‘카다피 제거를 위해서는 지상군 투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들은 북한을 압박할 선례를 리비아에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런데 자유주의 언론과 진보진영 일부도 서방의 개입을 지지하고 나섰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각각 두 차례나 사설에서 서방의 군사 개입을 지지했다.
〈한겨레〉는 유엔 안보리 결의 후 “국제 사회가 좀더 일찍 이렇게 단호한 모습을 보였더라면 그토록 많은 희생을 치르지 않을 수도 있었을 터”라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유엔 결의안에서 “지상군 투입 문제는 … 사실상 배제됐다[.] … 이는 … 리비아 시민들의 학살과 고통의 장기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불평했는데 사실상 지상군 개입을 주장하는 셈이다.
진보신당은 17일 “국제 사회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실효성 있는 조치를 즉각 취해야할 것”이라며 “비행금지 구역 설정” 등을 촉구했다. 진보신당 지도부는 26일 반전평화연대(준) 주최로 개최 예정인 리비아 군사 개입 반대 집회에도 참가하지 않겠다고 한다.
사회당은 18일 “유엔 안보리가 리비아에 대한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것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옹호했다.
진보정당들이 반제국주의라는 진보의 중요한 과제를 외면하고 오히려 제국주의의 논리에 타협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 달리 지금 다국적군의 목적은 리비아 민중의 보호가 아니다.
서방이 내세운 ‘국민 보호 책임의 원칙’은 1990년대 냉전 이후 제국주의가 만든 ‘인도주의 개입’ 이데올로기의 변형일 뿐이다.
그것은 국가 주권보다 보편적 인권이 더 우선하므로 ‘국제 사회’가 인도주의적 목표를 위해 각국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국가에 대항해 강제 개입할 수 있는 ‘국제 사회’는 현실에서 서방 강대국들밖에 없다. 결국 이른바 ‘국민 보호 책임의 원칙’은 서방 강대국들에게 어느 곳이든 자기 입맛에 따라 무력 개입을 할 수 있는 허가증을 주는 허울 좋은 포장지일 뿐이다.
‘국민 보호 책임의 원칙’
인도주의 개입의 국제적 첫 사례인 1992년 소말리아부터, 1990년대 내내 이어진 이라크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경제봉쇄, 1999년 나토의 세르비아 침략전쟁 등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이 서방의 ‘인도주의’ 폭탄과 총탄에 희생됐다.
반대로 서방 지배자들은 동맹국의 만행에는 침묵한다. 21일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폭격한 일은 유엔안보리에 회부하지 않는다. 14일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의 군대가 바레인에 진격해 민주화 시위대를 진압한 일에는 ‘국민 보호 책임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결국 서방 열강은 석유 패권을 유지하고, 중동 혁명의 확산을 막으려고 리비아에 군사 개입을 하는 것이다.
카다피가 서방 군대와 정면으로 맞서고 공습으로 카다피를 무너뜨릴 수 없다면, 서방 열강은 지상군 투입으로 이끌릴 수밖에 없다. 제국주의의 위신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제국주의의 리비아 점령이 되는 것이고, 또 다른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될 것이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더 큰 인도적 재앙으로 발전할 것이다. 독재정부를 제거했다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지금 민주주의가 생겨나고 있는가.
이 과정에서 카다피는 ‘반제국주의 항쟁’이라는 거짓 선전을 강화하며 오히려 입지를 강화할 수도 있다. 반대로 항쟁 세력은 위축되고 분열할 수 있다.
따라서 진정으로 리비아 민중의 안전과 해방을 바란다면 서방의 군사 개입을 지지해선 안 된다.
카다피의 학살을 막으려는 심정에는 백번 공감하지만, 물에 빠진 사람에게 칼날을 쥐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다.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폭탄이 내게 가져다 줄 해방은 무엇일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