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좌파가 서방의 리비아 개입을 지지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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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이 리비아에 개입한 것을 두고 진정한 좌파 내에서도 얼마간 분열이 일어났다. 놀랄 일이 아니다. 아랍 세계만 살펴봐도, 무아마르 카다피를 혐오하는 광범한 여론에 혁명에 대한 지지가 더해지면서 서방의 무력 행사에 반대하기가 무척 어렵게 됐다.
누구보다 세련되게 서방 개입을 옹호하는 주장을 펴는 이는 내 오랜 친구인 질베르 아슈카르다. 서방 제국주의에 한결같이 반대해 왔지만, 아슈카르는 이번에는 반제국주의자들이 불가피하게 타협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혁명가들이 때때로 제국주의 열강의 도움을 받을 준비가 돼 있었다는 아슈카르의 주장은 옳다.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 직후, 독일 군대의 침략으로 갓 출범한 소비에트 공화국의 존립이 위태로워지자 혁명 러시아는 영국과 프랑스의 도움을 받았다. 이때 레닌은 볼셰비키 중앙위원회에 이렇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 “영국과 프랑스라는 두 제국주의 강도한테서 감자와 무기를 받는 것에 찬성하는 쪽에 내 한 표를 더해 주시오.”
카다피가 어떤 점에서는 ‘진보적’이고 벵가지의 혁명 지도부가 알카에다를 지지한다는 좌파 일부의 주장을 아슈카르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 또한 옳다.
그런데 질베르는 이렇게 되묻는다. “좌파에 속한다는 사람들이 민중 운동의 보호 요청을, 그것이 비록 제국주의적 강도-경찰의 도움을 받는 것이라 하더라도 간단히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민중 운동이 요청한 방식의 보호로는 제국주의자들이 그 나라를 마음대로 주무르지 못할 것인데도 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역겨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슈카르가 또한 미국, 프랑스, 영국 정부가 벵가지에서 벌어질 대학살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의 압력에 밀려 개입했다고 말할 때 그 역겨움은 더했다.
이 말을 프랑스의 우파 ‘철학자’인 베르나르 앙리-레비의 다음과 같은 말과 비교해 보라. 그는 지난 일요일자 〈옵저버〉에서 자신이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을 설득해 서방 개입을 요구하게 했노라고 자랑했다. “이번 사태에서 중요한 것은 드부아 댕제랑스[인권을 심하게 침해한 경우 주권을 박탈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됐다는 점이다.”
프랑스에서 ‘BHL’로 불리는 역겹기 그지없는 인물인 앙리-레비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개입의 정치학이다. 그는 이번 개입이야말로 이라크 재앙 이후 힘을 잃은 사상, 즉, 전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가 옹호했던 사상에 대한 지지를 다시금 다질 기회라고 본다. 다시 말해 서방 열강은 자신의 규칙들을 침해한다고 여겨지는 나라들을 공격할 권리를 가진다는 사상 말이다.
그러나 최소한 미국 정부의 경우, 이것이 리비아에 개입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니다. 아슈카르는 카다피가 서방 기업의 리비아 석유 개발을 더는 허용하려 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논박한다. 나는 석유가 개입의 주된 이유가 아니라는 점에 동의한다. 미국이 아랍 혁명 물결 앞에 부랴부랴 뛰어든 이유는 그것이 중동에서 자신의 지배 체제를 무너뜨릴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실린 한 백악관 고문의 인터뷰는 바로 이런 점을 확인해 준다. “리비아는 우리가 중동에서 가장 관심을 적게 두는 곳입니다.” 그는 미국 제5함대의 주둔지이자 석유가 풍부한 양대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사이의 줄다리기에 휘말려 위태로운 한 섬나라 왕국을 가리키며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가 가장 커다란 관심을 두는 곳은 바레인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군대가 조직한 바레인에서의 탄압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 지역의 다른 독재 국가 지배자들이 혁명의 파고를 되돌리려 한다는 점을 잘 보여 준다. 오바마 정부는 바레인과 예멘에서 벌어진 탄압을 강력히 비판했다. 오바마 정부는 이 혁명들을 이용해 아랍 사회들을 더 안정된 신자유주의 노선에 따라 개혁하려 한다.
미국은 카다피와 대결하는 모양을 취하면서 아랍의 혁명들과 관계를 맺고, 이 혁명들의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 앙리-레비는 벵가지의 혁명가들 모임에서 연설하며 자신이 리비아 혁명가들이 서방 지도자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허풍이다. 그러나 이것은 서방이 혁명을 자신의 영향 아래 두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아슈카르와 앙리-레비가 모두 이용한 마지막 주장이 남았다. 바로 서방 개입이 벵가지에서 벌어질 대학살을 막았다는 것이다. 슬픈 사실은 대학살이 자본주의의 만성적 특징이라는 점이다. 애석하게도, 혁명적 좌파는 그런 학살을 막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우리가 더 강해지기 전까지는, 우리는 적어도 무엇이 중요한지에 관해 정치적으로 명확한 입장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