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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혁명과 서방의 개입 Q&A

‘민간인 살상 방지’와 ‘민주주의 수호’를 명분으로, 주류 언론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서방 열강이 리비아 공습을 시작한 지 3주가 지났다.  

서방이 리비아 혁명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혁명이 본래 방향을 잃고 왜곡되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서방 개입과 리비아 혁명을 둘러싼 논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논점에  답하려 한다.    

서방의 개입은 인명을 살리기 위해 불가피했다?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은 지난주 칼럼 ‘리비아 공습은 옳았다’에서 서방이 인명 살상을 막기 위해 개입한 것이라며 서방의 개입을 옹호했다.

사실, 리비아 민중 학살에 반대하는 정서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많은 사람이 리비아 민중을 걱정하면서 서방 개입을 옹호한다.

또, 이대근은 이명박 정부를 줄기차게 비판해 왔고, 부시의 이라크 침략을 비판했다. 따라서 이대근은 다른 친서방 인사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만약 서방 열강이 스스로 말하듯이 인명을 존중한다면 그들은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예멘 등 친미 동맹국 정부들이 민주화 시위대를 공격한 것도 저지해야 한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는 말로만 우려를 표했을 뿐이다.

튀니지 혁명은 서방 열강의 도움없이 민중 스스로 독재자를 몰아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지난주에 미국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는 시위대 1백 명을 학살하고 수천 명을 다치게 한 예멘 대통령 살레가 물러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이대근은 “바레인·예멘에는 왜 개입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위험성, 긴급성에서 차이가 있었다”고 말한다.

이마누엘 월러스틴은 최근 글에서 이런 주장의 허약한 논리를 꼬집었다. “서방 개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개입 기준을 수량화하는 것 같다. 예컨대, 만약 어떤 정부가 10명을 죽인다면, 이것은 말로 비판하면 충분한 ‘정상적’ 상황이다. 만약 어떤 정부가 1만 명을 죽인다면 그것은 인도주의적 개입이 필요한 ‘범죄적’ 상황이다. 그럼 정확히 몇 명이 죽어야 ‘정상적’이 아니라 ‘범죄적’인가? 1백 명? 1천 명?”

이대근 같은 입장은 의도와 상관없이 자꾸만 서방 열강의 의도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면서 서방의 이중잣대, 자가당착 등을 변명하게 된다.

그래서 이대근은 또 다른 개입 지지 근거를 든다. 즉, “카다피 같은 위험한 인물이 있을 때”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과 서방 정부가 코소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미래에는 북한?) 등을 공격할 때마다 내세운 논리를 고스란히 반복하는 것이다. 자신들은 자유민주주의 세력이고 자신이 공격하려는 대상은 독재 악당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서방 열강의 리비아 개입을 지지한 아랍연합 국가들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등 독재 ‘악당’ 국가들을 포함하고 있다.

물론, 현재 많은 서방 열강이 국내적으로 카다피 같은 독재 체제는 아니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유럽 정부의 내핍 정책과 이에 대한 대중적 반발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들도 수백만, 수천만 명을 고통에 빠뜨리고 다수 인구가 반대하는 정책을 폭력을 사용해 밀어붙일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이 언제 중동 지역에서 카다피와 견줘 선행을 베푼 적이 있던가? 오히려, 이들이 이라크를 10년간 경제 제재하고, 침략하고 점령하지 않았다면 많은 아동을 포함해 수백만 명이 죽지 않았을 것이고 수천만 명이 도탄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유네스코 보고를 봐도 1990년대 이라크 경제 재제로 의약품이 부족해 이라크 아동 50만 명이 치료할 수 있는 질병에 걸려 죽었다. 저명한 의학저널 〈랜싯〉은 2006년 10월 발표한 글에서 2003년 시작된 이라크 전쟁과 점령의 결과로 이라크인 약 1백만 명이 죽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게다가, 이것은 서방의 아프가니스탄 점령과 친미 경비견 이스라엘이 저지른 살상행위를 포함하지 않은 숫자다.

카다피는 악당이었지만 이런 서방 악당들의 가공할 파괴력에 댈 만한 짓은 저지를 수 없었다.

그럼, (촘스키가 지적하듯이) 카다피를 능가하는 서방 악당들의 악행을 중단시키기 위해 워싱턴과 파리 등을 폭격해야 할까? 많은 미국 민간인이 죽은 9·11을 기억해 보자. 그것은 부시 정부를 강화시켰고 그가 미쳐 날뛰면서 전쟁과 학살에 나서는 빌미가 됐다. 리비아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서방의 폭격이 리비아 혁명을 살렸다?

개입을 지지하는 또 다른 가장 흔한 주장 하나는 서방 열강의 군사 개입 덕분에 죽어가던 혁명이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다.

3월 26일 다국적군의 리비아 폭격 규탄 집회

우선, 서방 언론들이 인정하듯이 서방의 폭격은 지상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폭격이 시작된 뒤 지난 몇 주 동안 지상 상황은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하고 있다.

최근 브레가 등에서 반란군이 선전한 것은 어디까지나 혁명 지지자들이 여전히 군사적으로 우월한 카다피군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운 결과다.

또, 서방 정부와 주류 언론처럼 리비아 혁명을 군사적 관점에서만 보면 왜 이 혁명이 초기에 그토록 강력했던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2월 17일 동부 지역에서 시작된 시위가 불과 일주일 만에 카다피를 궁지로 몰아넣고 그의 군사력을 마비시킨 것은 혁명 세력이 전투에서 이겼기 때문이 아니라 민중의 압력 때문에 군이 분열했기 때문이었다.

혁명은 외부 군사 개입이 없었던 2월 말에 최절정에 도달했다. 당시 카다피는 리비아 전 국토의 80퍼센트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 이후 혁명 세력은 카다피의 반격에 직면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카다피가 남은 군사력을 정비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혁명이 이질적 세력을 포함 ― 특히 카다피 세력에서 이탈한 엘리트들 ― 한 덕분에 일직선으로 급진화하고 힘을 집중하는 데 다소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일부 귀족 세력이 혁명에 가담해 입헌군주정에서 혁명을 마무리 하려 했던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부터 시작해 모든 혁명이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과정이다.

그러나 현 리비아 혁명가들은 18세기 프랑스 혁명가들은 겪지 못한 상황을 겪고 있다. 오늘날 서방 열강은 멈출 수 없는 기관차를 강제로 멈추려 하기보다는 그것의 방향을 바꾸려는 교활한 술책을 펴고 있다. 서방의 개입으로 리비아 혁명은 급진화는커녕 왜곡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리비아 혁명은 카다피 독재 권력과 부의 독점 ― 리비아 국내총생산의 거의 절반인 3백억 달러에 이르는 카다피 일족의 해외 계좌로 상징되는 ― 에 반대하는 혁명이다.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왜 목숨을 걸고 혁명에 참가하겠는가?

그러나 서방 정부들은 리비아 부의 핵심인 석유 자원을 놓고 카다피 정부가 서방 기업과 맺은 계약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서방 정부는 리비아가 ‘테러와의 전쟁’을 지속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과도국가위원회에서 혁명 지지 세력의 중요한 한 축인 이슬람주의 세력(서방 정부가 툭하면 ‘알카에다’로 뭉뚱그려 표현하는)을 축출하라는 압력으로 점차 나타나고 있는데 과연 이것이 내부 숙청 요구와 뭐가 다른가.

동시에, 서방 군사 개입은 카다피가 무너진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즉, 서방 정부·기업과 거래해 막대한 부를 챙긴 카다피가 자신을 반서방 제국주의 투사로 내세울 명분을 주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서방 폭격으로 민간인 사망자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강화될 것이다.

최근 트리폴리의 대목구장인 지오반니 이노첸조 마르티넬리는 로마 교황청 통신사인 〈피데스〉에 “트리폴리의 무슬림 지역에서 민간인 소유 빌딩이 폭격으로 붕괴, 40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는데, 과거 코소보 전쟁 등에서 서방 폭격이 낳은 결과를 볼 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따라서 리비아 혁명에 대한 서방의 영향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혁명은 본래의 목표를 잃고 왜곡될 것이고, 리비아 민중이 목숨걸고 싸울 이유도 약해질 것이다. 이것은 최악의 경우 친서방 정부의 수립이나 반혁명 세력의 반격을 가져올 확률을 높일 것이다.

리비아 혁명은 서방의 음모였다?

리비아 혁명의 운명을 걱정하며 서방 개입을 옹호하는 주장의 반대편에서 일부 국내외 좌파들 ― 한호석, 〈글로벌 리서치〉 운영자 미셸 초스도프스키 등 ― 은 리비아 혁명이 친서방 음모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카다피를 지지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이번 ‘혁명’이 소수 반카다피 엘리트와 서방 열강이 손잡고 준비한 ‘색깔 혁명’이지 기층 혁명이 아니라고 말하거나, 아니면 반란군의 성분이 의심스럽다고 말하며 사실상 리비아 혁명을 지지하지 않는다.

〈민중의 소리〉도 “리비아 사태는 민주화 운동과 거리가 멀다”며 “기득권 파벌간 내전”이라고 깎아내린다. 민주노동당 지도부와 한국진보연대도 이런 식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최근 상당수 혁명 세력들이 제한적 수준의 서방 공습을 옹호하는 것을 보면서 이들은 ‘거봐 내가 뭐랬어’ 하는 식의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리비아 혁명 세력들은 처음에 서방 군사 개입에 반대한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바 있다. 지금도 서방의 지상군 투입을 반대하는 정서가 상당히 존재한다.

서방음모설은 서방 정부가 카다피를 제거할 음모를 꾸밀 설득력 있는 이유를 딱히 제시하지 못한다.

그들은 보통 서방과 타협하기 이전의 카다피 전적을 들먹인다. 그러나 유럽과는 1990년대 말부터 미국과는 2004년부터 정신없이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다국적 석유 기업을 환영하고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과 유럽의 반이주민 정책에 적극 협력한 카다피를 서방이 왜 제거하려 하겠는가.

리비아 혁명에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제국주의 열강 패권의 핵심 지역 중 하나인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제국주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투쟁에 기권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는다.

문제는 카다피가 반격에 나서고 혁명 확산이 정체된 틈을 타서 카다피 정부 이탈자들이 서방과 혁명 세력의 중재자 구실을 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이 서방 열강과 손을 잡고 혁명을 가로챌 위험성은 분명 존재한다. 역사상 혁명은 성공도 했지만 실패도 했다. 중요한 것은 리비아 혁명이 아직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카다피의 학살을 지켜보기만 하라는 것인가?

서방의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것이 곧 리비아 혁명을 지지하지 않거나 심지어 카다피의 독재를 지지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함께, 사회진보연대처럼 카다피에 맞서 리비아 혁명을 지지하면서도 서방의 개입을 반대하는 올바른 입장이 있다.

리비아 혁명의 성공은 리비아 민중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점은 분명한 진실이다. 이것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방 열강이 리비아 민중을 대신해 카다피를 제거하는 상황이 펼쳐진다면 열강이 혁명을 대신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서방 열강의 리비아 통제를 뜻할 것이다.

리비아 내 서방 열강의 기존 이권이 완벽하게 보존될 뿐 아니라 훨씬 확장될 것이고, 서방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세력은 탄압받을 것이다. 중동 전문 기자 패트릭 콕번의 말처럼 “가장 영어를 잘하는 리비아 엘리트가 낙하산을 타고 정부로 내려오는” 상황이 펼치질 것이다. 즉, 더는 혁명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결정된 결론이 아니다. 지금 전 세계 민중은 리비아 혁명의 성공을 바라며 연대할 수 있다. 그것은 우선 서방 열강이 리비아 혁명을 파괴하는 것에 항의하는 행동이 돼야 한다.

혁명이 심화하고 있는, 인접한 이집트와 튀니지의 혁명 세력은 좀더 직접적인 연대 활동을 펼칠 수 있을 것이고, 리비아 민중이 서방에 의존하기보다 자신의 힘으로 독재자를 물리칠 수 있다는 정치적 자신감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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