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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부패는 왜 일어나는가?

김대중은 신년초 기자회견 때 "사정 기관을 총동원해 부패를 척결하겠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진승현 로비의 핵심 인물인 금감원 부원장보 김영재를 슬그머니 기소중지해 버렸다. 안기부 선거 자금 수사는 김영삼 정치 자금 관련설만 모락모락 피워낼 뿐 관련자 구속은 유야무야됐다. 국세청이 한나라당 선거 자금을 모았던 세풍 비리의 경우 기소된 지 2년이 다 됐는데도 아직 1심 재판도 끝나지 않았다.

김대중은 비리 척결은커녕 집권 첫 해부터 부패 정권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1998년에 폭로된 경성 비리는 건설업계 비리에 신여권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경성 그룹이 건낸 뇌물을 받은 정관계 인사 15명에는 김현철·전 청와대인사비서관·건설교통부 차관뿐 아니라 당시 국민회의 부총재였던 정대철 등도 포함돼 있었다. 한국부동산신탁회사 사장이 토지 용도 변경의 뒤를 봐 줘서 경성그룹은 엄청난 특혜를 누렸다.

정대철은 78명의 변호사로 대규모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여기에는 신기남·노무현·이상수천정배·추미애·장석화·전 헌법재판관 변정수·김대중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세작·오제도(악명 높은 공안 검사) 등이 포함돼 있었다.

김대중 정권의 대형 비리는 경성 비리에 이어 다음 해 옷로비로, 그 다음 해에는 대형 금융 비리로 이어졌다. 결국 '김대중 20억+?' 수사를 무마시켜 김대중 대선 승리의 1등 공신인 검찰총장 김태정이 옷로비 때문에 경질돼야만 했고 김대중의 '눈과 귀'라고 불렸던 박지원이 한빛은행 부정 대출 비리로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금융 구조조정을 밀어 붙이려고 하자 대형 금융 비리에 금융 사정 기관이 연루됐음이 폭로됐다.

한나라당은 폭로된 비리는 여권 인사들이 연루된 부패 사건들의 빙산에 지나지 않는다며 "성공한 로비는 공개되지 않고, 실패한 로비는 수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야말로 '성공한 로비' 덕에 온갖 뇌물과 상납을 받아온 자들로 가득한 부패 정당이다.

그 자들이 핵심으로 연두된 대형 비리 사건만 해도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이다. 1993년 슬롯머신 사건, 1993년 축협 비리, 1995년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같은 해 터진 전북은행 대출 비리 사건, 1996년 씨프린스호 비리, 1997년 한보 비리, 1997년 공황의 뇌관 노릇을 했던 종금사 비리, 1998년 국세청 선거 자금 모집 비리, 2000년 경부고속철도 비리, 진승현 비리, 안기부 선거 자금 비리….

정경유착 ― 한국 자본주의에 아로새겨진 특징

한국 사회가 R.O.T.C(총체적 부패 공화국이라는 의미의 영문 'Republic of Total Corruption'의 이니셜)로 통할 정도로 대형 비리 사건이 끊이지 않는 핵심 원인은 바로 기업·금융과 국가 사이의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유착 관계 때문이다.

정치 거물들은 주로 기업들이 보험금 성격으로 갖다 주는 비교적 안전한 돈을 앉아서 챙긴다. 그렇치 않은 경우라도 정치인들은 주로 친구들로부터 기부를 받거나, 금융 기관 대출을 소개해 주거나 이권 개입을 통해 사례비를 받는다.

이러한 정경유착은 한국 자본주의에 구조화된 특징이다. 1961년에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난 뒤1) 국가는 경제 발전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국가로부터 지도받는 자본주의"는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특징이었다.

국가는 산업 투자의 우선 순위를 정했다. 예컨대 중화학공업에 집중하겠다는 기업에게 법인세를 감면해 주는 식이었다. 한국은행은 낮은 금리로 특별융자를 제공해서 부실기업의 산업합리화를 도모한다는 내용의 '한국은행 특별융자제도'를 만들었는데 이것으로 재벌은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대우 그룹이 1967년 대우 실업으로 출발해서 8년 만에 재벌의 대열에 낄 수 있었던 것도 박정희의 '후원' 때문이었다. 김우중 부친의 제자였던 박정희는 울산화력발전소, 옥포조선소 인수 등 고비마다 김우중의 '대우가족'이었다. 김우중은 '실수'로 박정희의 '후원'을 다음과 같이 고백한 적이 있다.

"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대우가 성장기 때 박대통령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초기 단계에서 귀여움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월간조선》 1987년 인터뷰)

박정희 정권 당시 만들어진 한국전력공사·석유개발공사·포항제철 등 거대한 공기업의 주요 경영진들은 군사 독재 정권의 정치적 위계 조직과 서로 긴밀히 얽혀 있었다.

호남석유화학 사장인 하태준도 박정희 정권 때 중앙정보부의 고위 간부 출신이었고, 작년에 불법 부동산 투기 사실이 폭로돼 실각한 박태준도 1963년에 국영기업인 대한중석의 사장을 지낸 바 있다. 5공 때는 11대 국회 재무위원장을 맡다가 포항제철 회장으로 옮겨갔다. 공기업 사장들 가운데 정부 관료 또는 당의 직책을 겸하고 있는 경우는 권위주의 정권 때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많다.

한국통신 7대 사장인 이상철은 민주당 분당을 지구당위원장이기도 하다. 한국전력 사장인 최수병은 박정희 정권 당시 경제기획원 공보관을 지냈고 김대중 정권 초기에는 국민회의 경제 담당 총재 특별보좌역을 맡다가 한국전력 사장으로 낙하산을 타기 전까지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을 지냈다. 김명규 가스공사 이사장은 국민회의의 총재 특별 보좌관이었다.

기업 경영진과 정부 관료 사이

국가와 기업 간의 '연줄'은 단지 공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수많은 기업의 경영진, 은행 경영진, 정부 관료 사이를 오고 간 자들의 연결망처럼 정경유착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현 재경부 장관인 진념도 그런 인물이다. 그는 김영삼 정권 때 노동부 장관을 지내다가 1997년말에 기아 그룹 회장에 임명됐다. 대우차 군산 공장의 사장은 진념의 동생이기도 하다.

종금사 무더기 인허가의 장본인이었던 IMF 구제금융 당시 재경부 장관 강경식은 현재 동부그룹 금융 보험 부문의 회장이다.

현 금감위원장 이근영은 대한투자신탁 사장을 지낸 자이기도 하다.

재벌의 경영진들 가운데도 금융계와 국가 관료 사이를 오간 자들이 부지기수다. 예를 들어 한화그룹의 박종석 부회장은 국민은행장·상업은행장·은행감독원장·증권감독원장 자리를 지낸 금융통이다.

재벌의 최고 이사급이나 경영진들의 고문 자리에는 구 국가관료들이 포진해 있다.

현재 롯데 재단 이사장은 전두환 정권 당시 국무총리였던 노신영이고 롯데 그룹의 고문도 전두환 정권 때의 국무총리였던 유창순이었다. 죽은 이낙선 롯데그룹 부회장도 국세청장·상공부 장관·건설부 장관 출신이었다.

김영삼 정권 당시 국무총리를 지낸 황인성은 현재 금호그룹 고문이다. 그는 호남정유 이사를 거쳐 장관직을 두루 거치다가 아시아나 항공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금호그룹 쉘화학 사장은 바로 민국당 김윤환의 동생 김태환이다.

친일 전력이 있는 김정열은 박정희 정권 당시 삼성물산 사장을 지냈고 전두환 정권 때에는 국무총리를 지냈다.

군사 정부 때 경제 총리를 지냈던 남덕우는 이승만 정권 당시에는 한국은행에서, 박정희 정권 때에는 재무부 장관, 5공과 6공 때에는 코리아헤럴드 사장이었고 현재는 전경련 원로 자문단의 일원이다.

데이콤 세틀라이트 멀티미디어 시스템 사장 유세준도 박정희 정권 당시 문화공보부 행정 사무관에서 출발해 공보처 국장을 지낸 정부 관료 출신이다.

기업과 금융계, 그리고 정치권은 이처럼 거대한 사슬처럼 연결돼 있다. 금융계 쪽에서 자금 동원법을 익힌 자들이 기업과 정부 관료로 옮아가서 정치 자금을 수거하고 기업인들에게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대한전선 부사장이었고 식품 기업주이자 증권일보 사장이었던 김원길은 김대중 집권 초기 국민회의의 '경제통' 노릇을 하면서 빅딜·은행 퇴출 등 1차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전두환과 노태우의 비자금을 관리했던 핵심 두 인물은 부정부패의 사슬을 아주 잘 보여준 사례다.한 때 "금융계의 황제"로 불린 이원조는 제일은행 인사부장이었다가 신군부가 등장한 1980년에 제일은행 상무로 승진하면서 국보위 자문위원, 대통령 경제비서관을 겸임했다. 그는 신군부가 금융계를 통제할 수 있는 다리 구실을 했다. 이원조는 다시 1981년에 석유개발공사 사장이 됐고 5년 뒤에는 은행감독원장이 됐다. 노태우 비자금의 두 번째 주역이었던 금진호는 노태우의 동서로서 상공부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상공인"으로 통했다. 1981년에는 상공부 차관, 1983년에는 상공부 장관을 하면서 기업인들에게 압력을 행사해 비자금을 모으는 역할을 했다.

기업과 금융계, 정부 관료를 오가면서 정경유착 인생을 보낸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이헌재가 빠질 수 없다. 전 재경부 장관이었던 그는 다시 5대 은행의 은행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는 금융 관료와 은행과 기업의 경영진 자리를 무수히 오간 자다. 박정희 정권 때인 1973년에 재무부 서기관을 지내고 그 다음해에는 박정희의 경제 비서 노릇을 했던 그는, 전두환 정권 때에는 대우 상무 이사이자 대우 반도체 대표 이사였고 1997년에는 조흥은행 상임 이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