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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수렁’ - 미국의 지배자들을 위기에 빠뜨리다

미국의 점령에 맞서 싸우는 이라크인들의 저항이 나날이 격렬해지고 있다.

11월 3∼4일 바그다드 중심의 이른바 “그린 존”(안전 지대) 안에 있는 미군 사령부가 연일 박격포 공격을 받았다. 이제는 미군 점령 당국의 심장부마저 이라크 저항 세력의 공격 표적이 되고 있다.

11월 2일에는 팔루자 인근에서 미군 수송 헬기가 격추당해 16명이 사망하고 20여 명이 부상했다. 지난 5월 1일 조지 W 부시가 “주요 전투 작전” 종료 선언을 한 후 하루 사망자로는 가장 많은 숫자이다.

10월 28일에는 부시의 “종전” 선언 후 처음으로 미군 탱크가 파괴돼 미군 2명이 사망했다.

후세인 정권 붕괴 후 첫 라마단(이슬람 금식월)이 시작된 10월 27일에는 바그다드에서 동시다발 폭탄 공격이 벌어졌다. 국제적십자사 건물과 경찰서, 교도소를 겨냥한 적어도 5차례의 폭탄 공격으로 2백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 전 날에는 미 국방부 부장관 월포위츠 일행이 묵던 알-라시드 호텔이 로켓 세례를 받아 20명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다.

미국 내에서는 라마단을 계기로 시작된 이번 일련의 공격을 1968년 베트남전 당시 ‘뗏(구정) 공세’에 비유하는 얘기까지 나왔다.(10월 28일자 〈워싱턴 포스트〉 인터넷판.)

이라크 주둔 미군에 대한 공격 횟수는 지난 7월 하루 평균 12차례에서 최근에는 33차례 정도로 늘어났다. 지난 6개월 동안 이라크 저항 세력의 공격 등으로 사망한 미군이 2백40명을 넘었고, 부상자도 속출하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저항의 배후 세력으로 시리아나 이란에서 잠입한 테러리스트들, 후세인 잔당,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을 지목한다.

뗏 공세

그러나 70퍼센트에 이르는 만성 실업, 기본 생필품 부족, 미군의 학살과 인권 유린 등에 시달리는 평범한 이라크인들의 고통과 분노야말로 이라크 저항 세력의 진정한 배후다.

지난 10월 24일 디얄라주 허브허브시 외곽에서 이라크 청년들이 미군을 습격하다 사망한 사건은 평범한 이라크인들이 저항 세력으로 변모한 대표적 사례다.

숨진 청년들이 처음부터 미국을 증오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미국이 사담 후세인의 악몽을 씻어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서부터 미국을 침략자와 적으로 여기게 됐다.

숨진 청년의 형은 “미군이 들어온 후 수도나 전기, 일자리 등 무엇 하나 좋아진 것은 없고 야밤에 헬기가 바트당원들을 색출한다며 사격을 가해 집을 파괴했다.”며 이 때문에 주민들이 점차 미군을 침략자로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 곳에 주둔중인 미군 대위조차 저항 세력 중에는 후세인 추종 세력이나 외국 테러조직원뿐 아니라 평범한 주민들도 있으며, “시간이 갈수록 반대 세력이 강해지고 있다.” 하고 시인했다.

바그다드 서쪽에 있는 팔루자는 지난 4월 28일 미군이 주민 18명을 사살하면서부터 민심이 반미 쪽으로 급속히 기울었다. 미군은 시위대가 먼저 공격했다고 주장하지만, 주민들은 시위대가 대부분 비무장이었다고 반박한다.

11월 2일 미군 수송 헬기가 격추당하자, 팔루자 거리에는 이라크 청년들이 뛰쳐나와 춤을 추며 축하했다. 한 농민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인들은 돼지다. 우리가 이렇게 축하하는 것은 이 헬기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크나큰 경사다. 미국인들은 인류의 적이다.”

팔루자에서는 미군의 지원을 받는 시장의 집무실이 대낮에도 습격을 당하고 시장이 구타당하기도 했다.

미군이 이라크에서 운용하는 수용소 내의 심각한 인권 침해도 반미 정서를 부채질하고 있다.

미군 수용소에서 풀려난 한 이라크인은 이렇게 말했다. “[미군은] 우리를 양떼처럼 가둬 놓았다. 여자들은 몇 개월씩 냄새나는 옷을 갈아입지 못한 채 지내야 했다. 구타는 예사였고, 모욕을 주기도 했다.”

수용자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 타는 듯한 모래땅에 얼굴을 대고 두 손을 뒤로 묶인 채 2∼3시간 엎드려 있는 가혹 행위를 당했다.

10월 31일 바그다드 교외에서는 시위대와 미군이 충돌해 이라크인 14명이 사망했다. 미군이 이라크 주민들을 무차별 투옥하자 시위대 수백 명이 이에 항의했고, 미군은 탱크와 전투기를 동원해 시위를 진압했다.

모래땅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국이 만든 꼭두각시 기구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조차 미 군정 당국과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넷판(11월 3일자)은 과도통치위원회 위원의 상당수가 미 군정 최고행정관 브레머가 주재하는 회의 참석을 거부하는 등 과도통치위와 미 군정 당국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상황이 날로 악화하자, 미국 지배자들은 이라크 처리 방안을 둘러싸고 더 심각하게 분열하고 있다.

추가 병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얘기에서 이라크 병력을 양성해 미군을 대체하자는 제안, 심지어 뚜렷한 해법이 없으므로 “탈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부시에게는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선택이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은 베트남 민중의 저항을 제압하기 위해 베트남 주둔 미군을 50만 명까지 증강했다. 그러나 끝내 전쟁에서 패배해, 한동안 해외 파병 기피 증후군(“베트남 신드롬”)에 시달려야 했다.

지금 부시 일당에게는 “이라크 신드롬”이라는 새로운 악몽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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