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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적 세계화에 저항하는 역동적 국제 운동을 건설해야 합니다”

“제국주의적 세계화에 저항하는 역동적 국제 운동을 건설해야 합니다”

12월 13~14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리는 제2차 카이로 국제 반전 회의는 아랍 세계의 반전 운동과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기회다.

이 날 한국에서도 반전 시위(전쟁 반대 한국-중동 공동행동)가 열릴 예정이다.

‘다함께’ 기자 김인식과 김용욱이 카이로 회의 조직자 아슈라프 엘-바유미(Ashraf El-Bayoumi)를 런던에서 만나 중동과 이집트의 반전 운동 상황을 들었다.

Q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저는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생명공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입니다. 또, 알렉산드리아 인권협회 부회장이기도 합니다. 1997∼98년에는 이라크 석유-식량 프로그램 감시단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이집트 활동가입니다. 이라크 전쟁과 팔레스타인 점령에 반대하는 카이로 회의 최초 발기인 가운데 한 명입니다.

Q 카이로 회의는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A 카이로 회의는 아랍과 이집트의 활동가와 지식인 들이 유럽과 특히 미국(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의 활동가들에게서 그들의 생각과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을 직접 듣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이런 교류는 미국과 유럽에 대한 신화를 걷어 내는 데도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다른 집단을 내부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는 단일한 집단으로 여기곤 합니다. 이들 나라의 반전 운동이 그런 신화를 부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아랍과 이집트의 활동가들이 인정했듯이, 미국과 유럽의 활동가들을 직접 만나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이런 만남은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런 시도는 민중의 세계화로 제국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비롯했습니다. 조지 갤러웨이[미¶U영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지난 10월에 영국 노동당에서 제명당한 반제국주의 국회의원]가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우리는 이런 생각에 동의해 카이로 회의를 개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집트 정부는 회의를 취소했다가 비아랍인들이 참가하자 당황했고 결국 회의를 허가해야 했습니다.

Q 1차 카이로 회의는 어떤 사람들이 참가했습니까?

A 우리는 반제국주의 정서를 잘 전달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엄선해 회의에 초청했습니다.

데니스 핼리데이와 한스 폰 스포넥 같은 전 유엔 관리들도 초청했습니다. 그들은 이라크 경제 제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대변했습니다. 비아랍인들이 이런 주장을 했기 때문에 더 커다란 권위가 있었습니다.

영국 국회의원 조지 갤러웨이, 전 미국 법무부 장관 램지 클라크, 영국 전쟁저지연합의 존 리즈 등도 초청했습니다. 특히 존 리즈는 카이로 회의가 지속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밖에, 저널리스트와 작가 들을 초대했습니다. 《세계화의 덫》을 쓴 독일의 [하랄트] 슈만, 유럽사회포럼을 대표해 크리스토프 아기똥이 참가했습니다. 에드워드 사이드도 빼먹어서는 안 되겠지요.

또, 아프리카인과 아시아인도 있었습니다. 회의 의장은 전 알제리 대통령인 벤 벨라입니다. 그는 프랑스 제국주의에 맞선 알제리 혁명의 지도자였습니다.

이렇듯 카이로 회의는 여러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했습니다. 카이로 회의는 이집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집회였습니다. 아랍 세계를 통틀어서도 보기 드문 행사였지요. 레바논·시리아·이라크에서도 참가했습니다. 이라크에서는 정부 관료와 재야 인사가 동시에 참가해 약간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습니다. 저는 쿠르드족 대표와 기타 재야 인사들이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해야 했습니다.

다양한 정치 견해를 갖고 있는 이집트인들도 카이로 회의에 참가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나세르주의나 진보주의, 그리고 저처럼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슬람주의자들도 참가했습니다. 이 회의는 참가자들 모두의 시야를 넓혀 줬습니다.

우리는, 일반으로 말해 사회 정의와 진정한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모두 참가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자신의 정견이 마르크스주의든, 이슬람주의든, 나세르주의든 상관 없이 말입니다. 참가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런 목표가 오직 사회주의를 통해서만 쟁취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Q 2차 카이로 회의는 1차 회의와 어떻게 다릅니까?

A 이번 회의의 특징은 활동가들이 대거 참가한다는 것입니다. 유럽에서만 2백 명이 넘는 활동가들이 참가할 예정입니다. 이것은 이집트 정부에 커다란 압력이 될 것입니다. 정부가 행사를 함부로 금지하지 못하도록 몇몇 유명 인사들도 초청할 계획입니다.

회의를 조직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지금 이집트 활동가들의 행동 속도는 더딥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항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도처에서 운동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징후들이 존재합니다.

일부 아랍 정부들은 이런 저항의 수혜자입니다. 시리아와 이란이 그런 경우죠. 지금 미국은 이들 정부를 협박하고 있습니다. 저항 운동이 강력해질수록 이들 국가가 미국의 공격을 받을 확률은 작아질 것입니다.

Q 2003년 3월 20일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1970년대 이래 최대 규모의 반전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그 시위를 소개해 주십시오.

A 우리 시위 조직자들은 3천 명이 타히르 공원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놀랐습니다. 오후 1시쯤에 공원 안으로 홍수처럼 밀려드는 시위 대열을 보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들은 조직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정치 조직에도 속해 있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공원은 시위대로 가득 찼고 행진이 시작됐습니다.

정부는 너무 당황해 멍하니 구경만 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가혹한 반격을 가했습니다. 이튿날 시위에서 두 명의 의원들이 경찰의 구타를 당했습니다. 경찰은 무자비한 폭력을 시위대에 휘둘렀고 소란을 피웠다는 죄목으로 이들을 고발했습니다.

애초 무바라크는 평화 시위는 보장하지만 파괴는 용서치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무라바크는 내무부 장관이 시위에 무르게 대처했다고 그를 윽박지르고 해임하려 했습니다.

며칠 뒤에 다시 시위가 조직됐습니다. 이 시위는 법원 판결에 힘입은 것이었습니다. 이집트 법원은 대중은 시위할 권리가 있을 뿐 아니라 그럴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이 결정을 무시하고 1백 명의 시위대를 체포했습니다.

저와 아내도 아무 근거 없이 체포됐습니다. 여성들은 몇 시간 뒤에 풀려났지만 남성들은 계속 감금됐습니다. 저는 2주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제가 리플릿을 배포하고 이러저러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저와 함께 수감됐던 사람들은 툭하면 구타와 모욕을 당했습니다. 경찰은 제 얼굴을 강제로 벽에다 밀어붙였습니다. 또, 수형자 제복을 입히고 심지어 두건으로 눈을 가리려 했습니다. 저는 거부했습니다. 다른 경찰이 제지하지 않았다면 저는 두들겨 맞았을 것입니다.

저는 69살이고 이집트에서 많은 과학자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무라바크와 내무부 장관은 자기 나라의 교수이자 시민을 이런 식으로 대접했습니다.

Q 미국의 이라크 점령에 대해 중동인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까?

A 처음에 이라크가 주저앉았을 때 중동 민중은 의기소침했고 실망했습니다. 거리의 평범한 사람들은 매우 슬퍼했습니다. 이런 감정에서 벗어나는 데는 얼마 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이라크 팔루자에서 미군 헬리콥터가 격추당하고, 트럭이 폭발하고, 탈선된 열차 화물이 털리는 사건을 보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미군이 병사들에게 달아 줄 훈장들을 이라크인들에게 몽땅 빼앗긴 적도 있었습니다!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의 저항이 지치지 않고 계속되면서 이라크 점령 이후 추줌했던 이집트 반전 운동도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Q 이집트에서 저항 운동이 부활하고 있습니까?

A 이집트내 운동들은 서로 상당한 정치적 차이가 있습니다. 일부는 자신의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운동을 이용하고 싶어합니다. 무슬림형제단이 대표적입니다. 또, 기회주의적이거나 어린이 같은 행동을 하는 부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이 국가로부터 엄청난 정치적 탄압을 받는 데다, 자원이 빈약한 운동에서 나타나는 증상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이집트 정부가 활동가들을 체포했습니다. 이것은 이라크의 완강한 저항 운동과 함께 우리 운동을 부활케 하는 연료가 됐습니다.

물론 영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반전 운동이 제공한 자극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자본주의의 불의와 불평등을 폭로하면서 운동이 성장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10월 25일에 10만 명이 모인 워싱턴 반전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미국과 영국의 반전 운동은 우리가 이집트 정부에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다른 나라 활동가들의 개입은 언제나 대환영입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 정부의 간섭은 반대합니다. 우리는 이집트 정부의 무능과 부패와 정치적 억압에 신물이 나 있지만 이것을 빌미로 미국과 영국 같은 제국주의 국가가 이집트에 개입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이들 정부에게 ‘인권’과 ‘민주주의’는 제국주의적 개입을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TV에서 무라바크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뒤에 체포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 정부들이 일부 NGO를 앞세워 이집트 정부에 문제 제기하는 데 제 이름을 이용했을 때, 당시 저는 그들에게 제 이름을 이집트 내정 간섭에 이용하지 말라고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지금 평범한 이집트인들은 매우 정치화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고등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정치적으로 각성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의 선전 기구들은 우리가 어리석고 순진하다고 비아냥거립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야말로 그들이 얼마나 멍청한지를 잘 보여 줍니다.

이집트의 저항 운동은 전진하고 있습니다. 물론 난관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강력하게 단결한 저항 세력을 구축하지는 못했지만 그 목표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성취하는 데는 흔히 아주 오랜 세월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따금 도약하기도 합니다. 지금 볼리비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그렇습니다. 저는 이집트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Q 이라크에서 심각한 난관에 봉착했는데도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카이로 회의의 장기적인 계획은 무엇입니까?

A 카이로 회의는 얼마간 성과를 거뒀습니다. 무엇보다, 저와 그 밖의 다른 이집트 활동가들이 영국에 오는 것과, 미국 반전 시위에 참가하는 것을 이집트 정부가 허용해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성과 입니다.

일단 첫발은 내딛은 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제국주의적 세계화에 저항하는 역동적이고 잘 조직되고 상호 긴밀하게 연결된 국제 운동을 건설하려 합니다.

2차 회의는 이런 작업을 도울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 반전 활동가들과 아랍 활동가들이 접촉할 기회를 마련할 것입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그리 되면 정부가 함부로 간섭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두번째 걸음이 될 것입니다.

회의는 결코 일회성 행사가 돼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서로 배워야 합니다. 당신들 같은 한국 동지들로부터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서로 배우는 과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Q 한국에서도 세계화와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중동인들과 연대하기 위해 카이로 회의에 맞춰 반전 시위를 조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반전 활동가들에게 해 줄 말이 있다면?

A 한국의 동지들에게 인사하게 돼 너무나 기쁩니다. 저는 1980년 광주항쟁 때부터 한국의 투쟁에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당시에 저는 여러분들의 투쟁을 지지했습니다. 우리가 같은 이유 때문에 싸우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불의, 부패, 그리고 미국 제국주의 등 이것이 우리가 투쟁하는 공통의 이유입니다.

제국주의적 세계화가 진척되면서 우리는 함께 연대해 역동적인 운동을 건설할 필요성이 더한층 커졌습니다. 이런 운동을 통해 잔인한 시장의 힘, 인종 차별, 군국주의에 기초한 제국주의적 세계화에 맞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 정의와 진정한 민주주의와 평화에 바탕을 둔 새로운 세계를 함께 건설해야 합니다.

우리는 동일한 대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국에서, 우리는 카이로에서 서로의 투쟁을 지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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