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규모의 정형외과에서 일할 때 겪은 일이다. 50대 중반의 한 노동자가 작업 도중 유리판이 깨지면서 한쪽 어깨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한 대학병원에서 보낸 환자였는데, 밤 내내 수혈을 해도 환자의 의식은 선명하게 돌아오지 않았다. 응급 수술에 들어갔지만, 결국 환자는 비슷한 규모의 다른 병원으로 이송돼 숨을 거뒀다.
상식대로라면 이 환자는 애초 진료를 받았던 대학병원으로 이송해 여러 과의 의사들의 협진을 받는 것이 옳았지만, 병원장은 환자를 보내 주는 “거래처”
발을 크게 다친 80대 한 할머니는 포천과 서울의 대학병원을 전전하다가 이 병원으로 옮겨졌다. 폐휴지를 모으며 생계를 유지해 왔던 할머니는 발을 잘 씻고 잘 말리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병원에 왔을 때 이미 허벅지까지 염증이 올라와 있었다. 절단 수술을 해야 했지만 이름도 보호자도 말할 수 없는 치매 할머니를 병원은 받아 주지 않았다.
대학병원은 환자의 필요와는 관계없이, “처치 곤란”이라 문제가 될 것 같은 환자를
환자는 돈이 있든 없든 치료와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다. “돈”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를 중요하게 봤다면 그 노동자와 할머니도 필요한 의료진의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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