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유시민에게 :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항의 이유서’
〈노동자 연대〉 구독
오래전, 당신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재밌게 읽었고, 4·27 김해 재보선에서 한나라당 승리에 분노하는 한 사람입니다. 얼마 전, 국가에 관한 책을 출판했더군요.
용산참사를 바라보며, ‘도대체 국가란 무엇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는 말에 십분 공감합니다.
당신은 국가를 ‘함께 속해서 공동의 선을 이룩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좌절을 겪었던 듯합니다. “실제 국가 운영을 해 본 입장이다 보니 참 괴롭더라. 분명 우리가 국가권력을 갖고 있는데, 마음대로 잘 안 되는 거다 … 우리가 ‘국가’ 하면 ‘정부’ 아니냐 이런 생각을 은연중에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컴퓨터와 비교하면 정부는 일종의 운영 시스템이고, 그 토대가 되는 하드웨어가 있는 것 아닌가.”
당신이 이 말을 한 인터뷰에서 박명림 교수는 “‘국가가 건드리지 못하는’ 영역으로서 재벌·종교·재산·언론·교육의 상층 영역”에 대해 얘기했고, 당신도 이런 것들의 존재를 인정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자연스럽습니다. “국가는 ‘상하층 영역’의 분리를 은폐하고, ‘상층 영역’의 이해를 보호하기 위한 군사적(군대와 경찰)·평화적(의회제도 등) 수단이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폄하한 마르크스 국가 정의의 출발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사회투자국가론이 신자유주의 국가론이라고 비판한 것에 대한 당신 자신의 답변을 보면, 당신은 별로 ‘상층 영역’을 강제해 복지를 확대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나는 직업으로서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내 논리가 아무리 옳으면 뭐 하나, 실현을 못 하면 책임지지 못하는 거다.”
이제 당신이 어느 곳에서 훌륭한 국가를 찾았는지 보겠습니다. “서유럽 국가들이 훌륭하더라. 복지국가론도 다루고 있다. 대한민국은 괜찮은 국가인데 훌륭하다고까지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난 3월 26일 ‘훌륭한 서유럽 국가’ 영국에서는 그 나라 역사상 가장 거대한 시위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 의료 등 복지 삭감에 항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그림은 ‘괜찮은 국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 2월 8일 강원 강릉에서 번개탄을 피운 뒤 숨진 ㄱ씨(23). 그가 혼자 살던 원룸에서는 여러 장의 즉석복권과 학자금 대출 관련 서류가 발견됐다.”
이런 오늘이, 1985년 당신의 〈항소이유서〉가 말하는 ‘5월’에 비해, 정말 ‘괜찮’아진 겁니까? 당신 말처럼 국가가 컴퓨터의 토대가 되는 하드웨어고 정부가 그것을 운영하는 소프트웨어라면, 정부 장악은 사실상 국가권력 장악과 전혀 다른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바꿨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김대중·노무현 10년 동안 경험했던 것, 그리고 지금 미국 사람들이 버락 오바마 정부를 통해 경험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