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노동자들을 추방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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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노동자들을 추방하지 말라
노무현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한국 사회의 5대 차별을 없애겠다고 큰소리쳤다. 이주 노동자들이 받는 차별을 없애겠다는 약속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러나 노무현은 집권 8개월만에 강제 추방 조치로 이주 노동자들을 내치려 한다.
노무현 정부는 11월 16일부터 20여만 명의 미등록 이주 노동자를 강제 추방하기 위해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간다.
법무부·노동부·경찰청·국가정보원을 동원해 “초강력 단속”을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단속과 추방 과정에서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은 무시되기 다반사다.
최근 법무부 산하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은 합법화 신고를 하러 온 이주 노동자들에게도 온갖 욕설과 발길질을 해댔다. 이들은 집중 단속 기간이면 이주 노동자들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여권을 만들기 위해 지문 날인을 강요하고 심지어 조작하기까지 해 왔다.
그 동안 이주 노동자들은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해 왔다.
방글라데시인 모니르는 8년 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다. 방글라데시아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모니르는 하루 12시간 이상 일을 했는데 한 달에 고작 30만 원을 받았다. 3년 뒤 공장을 이탈한 모니르는 IMF 위기 때 하루 5천 원을 받고 박스 공장에서 일했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가 와서 일을 빼앗아 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내가 일하는 공장에 한국 사람들이 일하러 오면 반나절, 하루 일하고 나면 그만뒀어요.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사장이 잘해주면 열심히 일했어요. 그래서 사장들이 우리를 쓰는 거예요. 우리가 힘들게 일했기 때문에 한국도 잘사는 거 아닌가요?”
이주 노동자들 때문에 한국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기여
이주 노동자들은 1987년부터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1997년까지만 해도 한국 실업률은 떨어지고 있었다.
한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기업 구조조정, 사기업화 등에 의해 날아갔다. 형편없는 저임금과 긴 노동시간으로 만성적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3D 업종은 이주 노동자들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정지하고 말았을 것이다. 중소기업주 가운데 일부가 이주 노동자 강제 추방 조치에 반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강제 추방 대상이 된 노동자들은 한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
한국에 온 지 8년 된 방글라데시인 알롬은 “난 한국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요. 나는 나무 공장에서 4년 동안 일했습니다. 내가 없으면 공장 문을 닫아야 합니다.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우리 공장에서 나밖에 없어요.” 하고 자신이 쓸모 없는 사람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모니르처럼 자국에서 대학을 나와도 변변한 일자리가 없거나 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감은 이주 노동을 결심하게 만든다. 한국 노동자들도 1960년대 독일에서 광부와 간호사로 일했고 1970년대 중동 지역에서 건설 노동자로 돈을 벌었다.
이주 노동자들은 출입국 규제 때문에 대부분 가족과 몇 년, 심지어 10년이 넘도록 만나지 못한다. 필리핀인 로스는 한국에 온 지 12년이 넘었다.
“미싱일, 청소,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회사 한켠에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방에서 살았어요. 화장실도, 샤워실도 없는 좁은 방에 6명과 함께 몇 년을 살았습니다. 필리핀에 남편과 13살 난 아들이 있는데 많이 보고 싶어요.”
한국 정부는 산업연수제도를 유지해 사장들이 이주 노동자들을 초착취할 수 있도록 해 왔다.
반면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에 빨리 적응하도록 돕는 데는 인색했다. 산업연수제도로 들어온 이주 노동자들의 경우 단 한 차례의 오리엔테이션 이후 곧바로 현장에 배치됐다.
한국말도 이주 노동자들 스스로 배워야 했다. 이주 노동자들이 처음 배운 한국어가 “때리지마”, “빨리 빨리”다.
심지어 매년 50여 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지만 2000년이 돼서야 산업재해 예방 교육을 시작했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IMF 위기로 고통받을 때 이주 노동자들도 월급의 절반 정도만 받거나 심지어 밥값만 받고 일했다. 공장에서 쫓겨나면서 체불 임금을 떼이기도 했다.
이주 노동자들은 한국 경제의 ‘3D’업종이라는 한 축을 담당하며 부를 생산하고 있다.
또, 국내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상품을 소비하고 있고 이주 노동자들의 유입으로 새로운 일자리도 생겨났다.
한국 노동자들은 정부의 미등록 노동자 강제 추방에 맞서 이주 노동자들을 방어해야 한다. 단지 불쌍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 이주 노동자들도 한국 노동자들처럼 이 사회를 윤택하게 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김덕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