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강령 개정 반대 투쟁 패배에 대한 자기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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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진보 정당/새 진보 정당’ 강령에 사회주의 요소 포함시키기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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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민주노동당 강령 개정안이 통과됐다. 강령 개정 저지에 필요한 3분의 1 선에서 21표가 모자랐다. 민주노동당 당원 게시판에는 섭섭함, 아까움, 분함 등을 토로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이 결과는 지도부에게는 ‘상처뿐인 승리’이고, 강령 개정 반대측 입장에서는 ‘불가피하지 않은 패배’였다. 정말이지 강령 개정 반대 운동의 패배는 결코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다. 충분히 강령 개정을 저지할 수 있었다. 1라운드 전투는 개정 반대 세력의 패배로 끝났다. 그러나 전투 자체가 종료된 것은 아니다. 통합 진보 정당/새 진보정당의 강령 작성 작업이 남아 있다. 그래서 1라운드 전투로부터 교훈을 잘 이끌어내야 2라운드 전투에서 실수를 최소화하며 대처할 수 있다.
다함께 운영위원회의 공식 평가서 ‘쓰라린 성찰 — 패배는 불가피하지 않았다’는 그런 시도의 일환이다.(다함께는 이번 전투의 최전선에서 헌신적으로 싸웠던 세력 중 하나였지만, 강령 개정 반대 운동에는 다함께가 아닌 많은 민주노동당 당원들도 참여했다. 이 동지들도 필시 여러 전선에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동지들의 활동을 자세히 알지 못하며, 그래서 이 글은 주되게 다함께의 강령 개정 반대 운동 과정에서 필자가 저지른 과오를 일반화하는 데 맞춰져 있다. 그러므로 필자가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해서 다른 민주노동당 당원들의 노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전투의 패배 책임이 다함께 운영위원회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함께 운영위원회는 일찍이 3월 초에 강령 개정 반대 운동을 광범하게 건설해야 한다고 결정했고, 그 운동 건설을 주도할 임무를 필자에게 부여했다. 그래서 다함께 내에서 민주노동당 강령 개정 반대 운동 주도 책임을 맡았던 필자에게 대부분 책임이 있다. 이렇게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하는 것은, 오류로부터 교훈을 남기고 다음 전투의 과제를 뽑아내기 위해서다. 이 과정의 첫 출발점은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책임자의 자성적 성찰이다. 이 글을 쓰는 데서 다함께 운영위원들의 날카로운 비판이 필자의 사고를 명료하게 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됐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 밝히는 오류는 전적으로 필자의 것이다.
이 전투의 중요성에 대한 불철저한 인식
다함께 운영위원회는 오래 전에 민주노동당 강령 개정 반대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그런데 실제 캠페인은 당대회를 일주일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시작됐다. 당대회의 아슬아슬한 결과를 보더라도 운동 착수 시점의 문제는 작은 실수가 아니었다. 시간이 부족해 더 많은 대의원(과 당원)들에게 강령 개정의 문제점, 강령 개정 주도 세력의 정치적 의도를 충분히 그리고 널리 알리지 못했다.
이 실수는 다함께 회원들을 이념적으로 무장시키는 일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결코 불가피하지 않았음에도 필자의 게으른 대응 때문에 다함께 회원들은 충분한 토론에 근거한 설득과 동의 과정이 거의 생략된 채 곧바로 전장에 뛰어들어야 했다.
필자가 늑장 대응을 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이 전투의 중요성에 대한 불충분한 인식을 먼저 꼽을 수 있겠다. 강령 개정 주도 세력들은 필사적으로 강령을 개정하고자 했다. 강령 개정 주도 세력의 주축인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의 최규엽 소장과 박경순 부소장은 인천연합 계열을 제외한 나머지 전국연합 계승 세력의 지원을 받으며 사력을 다해 이 전투에 임했던 것 같다. 그들에게 강령 개정의 목적은 전략적 목표와 밀접하게 관계 있었다. 최규엽 강령개정위원장은 당대회에서 강령 개정은 ‘지난 2년 동안 민주노동당이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를 밝히는 것’이라고 했다.
최규엽 위원장은 강령 개정의 핵심 이유 하나로 ‘집권’을 강조했다. ‘사회주의’ 강령을 유지하면 집권할 때 보수파의 반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집권’은 정황상 민주노동당 단독 집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당대회의 캐치프레이즈가 ‘2012년 진보적 정권교체’였기 때문이다. ‘집권’은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단독으로 집권할 가망성은 극히 희박하다. 민주노동당이 정부에 참여한다면(‘집권’) 그것은 민주당과의 연립정부를 통해서다. 그래서 강령 개정 주도 세력은 민주당과의 연립정부를 구성할 때 지배계급이 민주노동당 강령에서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법하다.
또, 연립정부 참여를 통한 ‘집권’이 민주당의 하위 파트너 구실을 강요받으며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당의 ‘몸집’을 키워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 통합 진보 정당에 국민참여당을 포함시키는 것을 내밀하게 고려했던 것 같다.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강령이 개정되자 국민참여당 대변인 이백만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환영 논평을 올렸다. 반면, 진보신당이나 민주노총 등은 강령 개정에 환영 논평을 내지 않았다.
당면한 집권 전략과 연결돼 있는 만큼 강령 개정 주도 세력들은 만만치 않은 반대를 무릅쓰고 개정을 강행했던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의 입장에서 강령 개정은 민주노동당이 지난 몇 년 동안 형식적으로라도 지켜 왔던 사회주의의 ‘시민권’을 박탈하는 것이었다. 특히, 부패하고 무능한 자본가 계급 정당들이 오랫동안 주류 정치권을 지배해 온 한국 정치사에서 공개적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노동계급 정당이 활동한다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의 공론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대 진보인 것이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같은 대중적 노동자 정당이 ‘사회주의’ 요소를 삭제한다면 노동운동이 자본주의를 반대하고 사회주의 운동으로 발전하기가 좀 더 어려워진다. 〈조선일보〉 같은 우익 언론이 민주노동당 당대회 전에 강령 개정에 주목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전투가 아니라 선전의 문제로 접근하다
이 쟁점은 선전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투쟁 문제가 돼야 했다. 세력과 조직을 가진 한쪽이 그것을 사용해 강령을 개정하려 했다면 개정에 반대하는 쪽도 거기에 맞서 정치적·조직적으로 무장하고 싸워야 했던 것이다. 그러려면 강령 개정 반대 운동을 광범하게 건설해야 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 사안을 실제 전투의 차원이 아니라 마치 ‘진공’ 속에서 수행하는 활동인 양 선전의 차원에서 접근했다. 추상적으로 사고하면서 현실에서 벌어지는 실제 전투로 인식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필자가 철저하게 자기 해부적 관점에서 실수를 극복하지 못한 것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5월 말까지 민주노동당 강령개정위원이었다. 5월 말 마지막 강령개정위원회에서 필자는 강령개정위원을 사퇴했다. 강령개정위원회가 개정안을 합의해 중앙위원회에 올리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령개정위원회 첫 회의에서 필자는 강령 개정 반대/현 강령 사수를 목표로 삼지 않고 진정한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에 관해 선전했다. 세력 균형을 오해함에 따라 회의 참여의 목표를 부정확하게 인식했던 것이다. 다함께 운영위원 동지들의 비판적 지적을 통해 필자의 개정위원회 참여 목표를 현 강령 사수로 수정했으나, 이것이 발본적으로 수정되지는 못했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고유의 사회주의를 선전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이 문제를 선전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태도 자체가 교정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의 문제점은 이 전투의 최초 전장이었던 6월 4일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드러났다. 첫째, 필자는 이 중앙위원회의 주요 목적을 진보대통합연석회의 합의문 처리라고 잘못 판단했다. 그래서 당시 다함께 명의로 낸 양면짜리 리플릿에서도 진보대통합에 대한 입장을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당시 민주노동당 안팎에서 합의문을 둘러싼 논쟁이 격화된 것은 맞지만, 이 때문에 내가 강령 개정 문제를 부차화시킨 것은 오류였다. 진보대통합이 중요한 쟁점인 것은 맞다. 그리고 당연히 다함께도 그 논의에 참여해야 하고 입장을 내야 한다. 그런데 진보대통합은 우리뿐 아니라 당내 다수가 지지하는 것이었지만, 강령 개정 문제는 다함께가 발의해 적극 나서지 않으면 산발적 문제제기 수준으로 끝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그만큼 다함께의 몫이 큰 쟁점이었다.
둘째, 뒤늦게 깨달은 것이지만, 6월 4일 중앙위원회는 강령 개정의 사전 정지 작업이었다. 즉, 중앙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강령 개정 안건을 올려 당대회 결정을 앞둔 대의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려 했던 것이다. 따라서 중앙위원회를 겨냥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여 중앙위원회에서 강령 개정안이 당대회에 상정되는 것을 막으려 했어야 했다.
그러나 필자는 중앙위원회에서 강령 개정 반대 취지의 발언을 한 뒤, ‘현재의 강령을 개정하는 것에 반대 의견 있음’을 명기하자는 수정안을 냈다(152명 중 15명 찬성으로 부결). 이 수정안은 강령 개정안의 당대회 상정을 ‘막을 수 없다’는 수동적 태도를 반영하고 있었다. 설령 당대회 안건 상정을 막을 수 없었을지라도 반대 목소리를 최대한 규합했다면 당대회 결정에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수십 명의 중앙위원들이 안건 상정을 반대했다면 대의원들도 그 의미를 심사숙고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수동성은 얼마간 필자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했다. 필자는 분당 이후 3년 동안 참여했던 중앙위원회에서 단 한 번을 제외하고 모조리 패배했다. 그것도 형편없이 패배했다. 그래서 중앙위원회에 갈 때마다 빠지지 않고 당의 우경 정책에 비판적인 주장을 하고 수정안을 냈지만, 그때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무인도에 고립돼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물론 이것이 필자의 수동적 대응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시 중앙위원회를 전투를 치를 전장으로 여기지 않고 선전의 장(함께할 세력을 구하기보다는 내 사상을 선전할 기회)으로 사고한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강령 개정 주도 세력의 강령 개정안, 개정 방식과 시기 등에 대해 적잖은 중앙위원들이 문제 의식을 느꼈다. 한 중앙위원이 토론 불충분을 이유로 다음 중앙위원회에서 다루자며 안건 반려를 요구했다. 필자는 이 요구에 찬성하지 않았다. 다음 중앙위(곧 당대회 직전에 열릴 중앙위)로 사안을 넘기는 것일 뿐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안건 반려가 자아낼 정치적 효과를 못 본 것이다. 설령 이 안건 반려 요구가 당대회 직전 중앙위원회로 안건을 이월할지라도 중앙위원회도 현재의 강령 개정에 문제 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대의원들에게 알릴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못 본 것이다.
또, 필자는 안건 반려가 토론을 막는 것이라고 봤다. 이런 사고의 근저에도 이 사안을 전투가 아니라 선전으로 보는 선전주의적 관점이 깔려 있었다. 결국 안건 반려는 23명의 지지를 얻어 부결됐다.(안건 반려를 강령 개정 반대 운동에서 취할 수 있는 회의 ‘전술’로 사고하지 못하는 문제는 당대회 때까지 이어진다. 안건 반려가 토론을 막는 것이라고 보고서는 당대회에서도 안건 반려를 지지하지만 우리가 적극 취할 수 있는 회의 ‘전술’로 상정하지 않았다. 다른 누군가가 안건 반려를 내놓으면 우리는 지지한다는 정도로만 여겼던 것이다.)
‘사회주의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키고’라는 문구를 삽입하자는 수정안이 제출됐으나 이 또한 필자는 찬성하지 않았다(152명 중 찬성 19명으로 부결). 강령 개정안이 이미 심한 내용적 후퇴를 담은 상황에서 이 정도의 문구로는 현 강령을 지킬 수 없으므로 찬성하지 않았던 것은 옳았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문제 의식이 있는 중앙위원들이 있다는 사실을 주의 깊게 보지 않은 것은 큰 문제였다.
결국 정성희 최고위원이 낸 수정안(‘본 강령 개정안은 향후 새로운 통합 진보 정당 강령 제정 시 민주노동당 안으로 함’을 명기)이 98명 찬성으로 통과됐다.
정성희 위원이 낸 수정안은 강령 개정의 성격을 바꾸는 것이었다. 강령 개정이 단지 민주노동당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통합 진보 정당이 작성할 강령에 한계를 부과하기 위한 것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6월 5일부터는 개정 반대 운동의 성격을 ‘통합 진보 정당의 강령에서 사회주의 요소 배제 시도 반대’로 규정해야 했다. 그랬더라면 이 운동을 훨씬 더 광범하게 전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 수정안을 그렇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후 강령 개정 반대 운동도 민주노동당 강령 개정 반대 운동으로 한정하게 됐다.
6월 4일 중앙위원회를 돌아보건대, 필자는 전혀 전투 태세가 돼 있지 않은 채 그저 선전만 하기(근본적으로 수동적인 자세)에 맞춰져 있었다. 게다가 첫 번째 전투의 의미를 곱씹어 보지 않음으로써 향후 당대회를 겨냥한 강령 개정 반대 운동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켰다.
이 중앙위원회 이후에도 필자는 강령 개정 반대 운동에 착수하지 않았다. 당시의 이유로는 필자가 청탁받은 글을 써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안의 경중과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하지 못한 것이었다. 여전히 필자에게 강령 개정 반대 운동이 최우선적 과제가 되지 못했음을 반영한다. 무언가에 집중하려면 선택해야 한다. 강령 개정 반대 운동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라면 나머지 과제들은 부차화시켜야 했다. 분산은 몰입을 방해하고, 몰입하지 않으면 결코 목표를 성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몰입한다는 것은 선택과 집중을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분석에 기초해 사안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가려내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엉거주춤한 상태로 이것과 저것과 그것을 모두 손에 쥔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하여 또한 6월 4일 중앙위원회 결과를 동지들에게 글로 보고하고 그 의미와 향후 대응을 내놓지 못했다. 어떤 운동을 효과적으로 건설하려면 집단적 토의가 필요하다. 집단적 토의를 하려면 보고가 있어야 한다. 그런 보고를 통해 과거의 실수들을 교정하고, 미래의 징후적 위험성들을 예방할 수 있는 수단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럴 때 단단하고 효과적인 행동의 결집을 이룰 수 있다. 그래서 보고는 민주집중제의 핵심 요소다.
이처럼 필자는 6월 4일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의 위상과 목적을 돌아보지 않은 채, 이번에는 강령 개정 반대 소책자 제작에 몰두했다.
민주노동당 내 세력 균형에 대한 오판
앞서 6월 4일 중앙위원회를 평가한 부분에서 이미 밝혔듯이, 필자는 민주노동당 내 세력 균형을 주의 깊게 분석하지 않았다. 강령개정위원회에서 필자를 제외한 모든 개정위원들이 ‘사회주의’ 요소 삭제를 지지하는 것을 몇 달 동안 경험하고는 이것이 당의 지배적 의견일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가정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중앙 지도부, 중앙위원, 대의원, 평당원 들이 거의 획일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민주노동당 같은 좌파 개혁주의 정당은 때때로 중앙과 기층 사이에 날카로운 정치적 긴장이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이 경우 중앙 지도부의 결정은 대부분 당원들의 민주적 토론을 거치지 않으므로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도 있다. 이번 강령 개정안만 해도 최대 불만 중 하나가 당원 토론을 충분히 거치지 않고 졸속으로 처리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령개정위원회에서 겪은 협소한 경험이 개혁주의 정당에 대한 이론적·역사적 분석을 압도해 버렸다. 그러다 보니 민주노동당은 ‘자주파’의 균열 없는 획일적 당이라는 진보진영의 부정확한 관측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것이다.
둘째, 당내 ‘노동계’는 강령 개정에 강한 비판 의식을 갖고 있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수단으로 창당했다. 그러나 강령 개정을 둘러싼 정치적 배경은, 민주노총 지도부가 강조하는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국민참여당의 진보대통합 참여 문제를 놓고 민주노동당 지도부와 민주노총 지도부 사이에 날카로운 긴장이 형성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따라서 ‘노동계’의 문제 의식을 적극 파악해 초기부터 공동 대응을 모색했어야 했다.
한편, 필자는 당 내에 존재하는 ‘국민파’가 노동쟁의 등에서 취한 온건한 구실 때문에 이들과의 적극적 동맹 맺기를 꺼렸다. 그러다 보니 당내 ‘노동계’의 불만을 알면서도 운동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이들과 함께하는 것으로까지 사고를 확장하지 않았다.
셋째, 이른바 ‘자주파’ 내에서도 강령 개정안에 대한 문제 의식이 많다는 점을 면밀히 고려하지 못했다. 북한 권력 승계 문제와는 달리, ‘사회주의’ 요소 삭제 개정 안에 대해서는 내용적 이견, 개정 방식과 시기, 당내 좌파에 대한 정치적 배려 등을 놓고 다양한 견해들이 존재했다. 그런 점에서 필자가 편집한 소책자에서 강령 개정 시도를 비판하면서 강령 개정 시도의 주체를 ‘자주파’로 싸잡아 명기한 것은 틀렸다. 이는 마치 다함께만이 당 강령 개정에 반대하는 유일한 세력이고, 이 전투에 함께 참여할 동맹이 없다는 내 암묵적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런 오판은 필자로 하여금 강령 반대 운동의 승리 전망을 확신하지 못하게 했다. 물론 승리 전망이 불확실하다고 해서 우리가 이 전투를 하지 말아야 할 까닭도, 소극적으로 해야 할 까닭도 없다. 사회주의자는 대중적 진보 정당이 강령에서 ‘사회주의’ 요소를 삭제하려 한다면 적극적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 (필자의 수동성은 세력 균형에 대한 오판도 있지만, 앞에서 언급한 강령 개정 반대 운동을 선전주의적으로 이해하는 데서 비롯한 탓이 더 컸다.)
이것은 마침내 당대회에서의 회의 ‘전술’에 반영됐다. 강령 개정 주도 세력의 치밀한 회의 전술과 조직에 비해 우리의 회의 대응은 누군가 인터넷 댓글에서 지적했듯이 ‘착했다.’ 당대회 의장은 귀향 시간에 쫓기는 지역 대의원들의 심리를 적절히 이용해 토론을 최대한 제약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대회 의장은 강령 개정안에 대한 반대 발언을 허용해 놓고는 나중에 돌연 취소했다. 사실, 강령 개정 주도 세력의 치밀한 작전 계획 수립과 그 수행에 비해 필자는 거의 압도적으로 토론과 논쟁을 통한 당원 설득이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일단 글을 마치며
이것 말고도 곰곰이 생각해야 할 것들이 더 있을 것이다. 새로운 전투를 시작하는 과정에서도 지난 활동들에 대한 복기를 해야 하는 까닭이다. ‘진공’ 속에서 벌이는 활동이 아니라 현실의 세력(그것도 잘 조직된)과 맞서 벌이는 ‘전투’에서는 순간의 작은 실수가 나중에 눈덩이 같은 오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렇게 자기 비판적 분석을 하는 것은 이 전투의 다함께측 책임자로서 정치적 책임을 지기 위한 것이지만, 더 중요하게 2라운드 투쟁에서는 더 잘 싸우기 위해서다.
당대회 결과는 강령 개정 주도 세력의 시도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였다. 강령 개정 반대 운동을 제대로 조직했더라면 단지 경고가 아니라 그 시도를 좌절시켰을 것이다.
이제 곧 2라운드 전투가 시작된다. ‘통합 진보 정당/새 진보 정당’ 강령에서 ‘사회주의’ 요소를 포함시키기 위해 1차 전투의 교훈을 바탕으로 더 넓은 세력들과 운동이 건설돼야 할 것이다. 필자의 공개 자기비판이 강령 개정에 반대했던 많은 동지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투지를 모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강령 개정에 찬성했던 당원들일지라도 다시 한 번 이 호소에 귀기울여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필자는 강령 개정에 찬성했음에도 개정 강령에 강한 문제 의식을 갖고 있는 당원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통합 진보 정당/새 진보 정당’의 강령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함께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런 공명감이 민주노동당 밖에서 ‘통합 진보 정당/새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도 울릴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