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점거 농성:
설준위 해체 때까지 점거를 계속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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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학생들의 본부 점거 투쟁이 한 달 가까이 이어져 왔다. 그동안 본관 점거 농성을 사수해 온 학생들은 집에도 못 가고, 차가운 복도에서 자면서 헌신적으로 이 투쟁을 이어 왔다.
그리고 이런 용기있고 단호한 투쟁은 법인화가 대세처럼 여겨졌던 분위기에 강력한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래서 대학을 기업화하고 교육을 시장화하는 이명박 정부의 법인화 추진에 결정적 타격을 가하며 곳곳에서 고무적인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당장 경북대가 법인화 추진을 중단했고, 부산대도 법인화를 반대하는 총장이 당선됐다. 서울대 학생들의 점거 투쟁은 ‘반값 등록금’ 촛불 투쟁이 커지는 데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교육의 미래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 본부 점거 투쟁이 승리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본부 점거 투쟁이 한 고비를 맞이하고 있는 듯하다. 최근 학교와 학생 측 대표 들이 몇 일에 걸쳐 “비공개 협상”을 했다. 아직 협상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을 알 수는 없다. 6월 25일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는 이 협상안을 수용할지 거부할지 결정하는 자리가 될 듯 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 전개는 다소 우려스럽다. 대다수 서울대 학생들은 학생대표가 학교 측과 협상을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 사실은 협상을 시작한 이후 언론을 통해 먼저 알려졌다. 총학생회와 총운영위원회가, 다양한 방식으로 점거를 지원해 온 학생들도 충분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학교 측과 ‘비공개’ 협상을 추진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현재 제시된 타협안은 ‘총장 사과와 국회 출석, 협의체 구성’ 등 대단히 미흡한 내용들이다.
학생 총회 때 분명히 “설준위 해체”를 위해 “본관 점거”를 하기로 결정하지 않았던가. 지윤 총학생회장은 5월 31일 총회 결과를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저희는 설립위원회가 해체될 때까지 점거를 풀지 않고 투쟁할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그런데 이제 학교 측과 “비공개” 협상을 통해 다른 타협안을 찾으려했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물론 최근 방학이 시작되면서 점거 참여 인원이 줄었고 학교 측은 이 틈을 타 압박을 강화했다. 교직원들을 동원해 본부 진입 시도를 하고, 학생들에게 본부 점거를 풀지 않으면 법적 조치나 징계를 하겠다고 협박했다. 이는 총학생회에게 상당한 부담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본관 점거를 지지하는 여론이 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민주적인 학교 당국과 법인화 추진에 맞선 반감은 커졌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한 ‘본부스탁’에도 수백 명이 참가했다. 최근 서울대 대학원생 5백24명도 법인화 반대 기자회견을 해 투쟁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서울대 점거 투쟁의 성과로 법인화를 반대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점거장에 상주하는 인원이 줄었다는 이유로 투쟁의 가능성을 어둡게 볼 필요는 없다.
대학생들의 점거 투쟁은 비록 일시적으로는 소수에 의해 유지되더라도 끈질기게 투쟁한다면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다. 2005~2006년 그리스에서도 대학을 사유화하려는 법에 반대해 소수가 대학 점거를 시작했지만 1년 가까이 점거를 유지하며 연대를 확대한 결과 법을 폐기시킬 수 있었다. 지난해 영국에서 등록금 인상에 맞서 벌인 학생들의 점거 투쟁도 사실 초반에는 수십 명이 주도한 것이었다.
오히려 학교 측과 협상에 치중하며 활동을 분산시키는 것이 동력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실제로 학교와의 부적절한 협상을 보며 투쟁에 열의 있게 참가해 왔던 학생 중에 본부를 떠나가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끈질기게
지금은 점거를 단호히 유지하면서 지지여론을 행동으로 조직하려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아야 할 때다. 예를들어 7월에 여러 단과대 학생회들은 농활을 계획하고 있는데,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는 농활에 주력하기 보다 ‘본부 점거장 체험 활동’ 등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활동을 기획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방 국립대 학생들이 서울대 본관으로 지지 방문을 오게 호소하거나, 법인화를 반대하는 진보적인 교수님들을 초청해 서울대 학생만이 아니라 관심있는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대중 토론회도 계획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학생은 “저도 나름대로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학생회도 아니고 일개 학우로서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제일 안타깝습니다”하고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점거위원회를 꾸려 이런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활동을 조직한다면 더 많은 동력을 모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점거 농성을 하기 보다는 국회에서 서울대 법인화법을 폐기시키는 데 집중하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국회에서 법인화 법을 폐기시키려 해도 본부 점거를 굳건히 유지하면서 연대를 확대해야 한다. 이미 지난해 법인화 법 폐기 안건이 국회에서 발의는 됐었지만 전혀 논의가 되지 않다가 올해 본부 점거가 시작되자 겨우 논의가 시작 됐던 사실이 그것을 보여 준다.
더구나 투쟁의 구심이 없는 상태에서 민주당이 일관되게 법인화를 반대할 것이라고 결코 믿어서는 안 된다.
일부 활동가들은 2학기에 동맹휴업을 하고 방학 중에 국공립대 학생들의 연대를 강화하자고 제안하는 데, 이를 위해서도 점거라는 구심을 유지해야 한다.
본부 점거는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서울대 법인화 반대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반년이 넘게 천막 농성을 하고, 서명을 하고, 교수 1백45명이 면담을 요청을 해도 총장은 “바쁘다”는 이유로 만나주지 않았다. 점거 투쟁이 시작된 이후에야 총장은 대화에 응했다.
이것은 단호한 점거를 유지하면서 설준위 해체를 요구하고 법인화법 폐기가 가능하도록 투쟁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만약 본부 점거를 중단한다면 설준위를 해체시키고, 법인화를 중단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내려놓는 것이 될 수 있다.
지난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KEC 노동자들도 공장을 점거하고 투쟁하다 미흡한 중재안을 받아들이고 점거를 푼 바 있다. 그러나 그 뒤 사측은 중재안 조차 제대로 시행하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을 대량 징계하고 악랄한 탄압을 가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미흡한 협상안을 받고 점거를 해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대 한기연은 ‘부적절한 논의를 중단하고 점거를 유지하자’는 성명서를 냈다. 게시판에서도 지금 점거를 푸는 것은 “기껏 얻어왔던 모든 것을, 전부 무용지물로 만드는 일일 수 있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따라서 6월 25일 전학대회는 혹시라도 설준위 해체가 빠진 협상안을 수용하며 점거 중단을 결정하는 자리가 되지 말아야 한다. 총학생회도 전학대회에서 단지 학교 측의 타협안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 이런 미흡한 타협안을 거부하고 계속 투쟁하자고 호소해야 한다. 그래서 오히려 새롭게 투쟁의 결의를 다지고 동력을 모으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더구나 학생총회에서 결정된 점거를 전학대회에서 마무리할 수도 없는 일이다. 지금은 끈질기게 체계적으로 점거를 유지하면서 연대를 확대할 때이지 투쟁을 중단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