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내가 겪은 공동 지방정부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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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수고를 하는 것을 시쳇말로 ‘삽질 한다’고 한다.
포크레인이면 한 번에 할 일을 삽으로 온종일하는 미련한 짓을 뜻하는 말이다.
나는 얼마 전부터 그 말을 입에 담지 못하게 됐다.
실제로 포크레인을 쓰지 못하게 하고 강제로 삽질을 해야 하는 노동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남시청에서 도로를 관리하고 맨홀 속에 들어가 하수도를 관리하는 하남시청 수로원·준설원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건설했다. 20년을 근무해도 갓 입사한 노동자와 같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시급 6천 원을 받고 모든 휴일은 무급으로 쉬어야 하는 노동자에게 노동조합 가입은 당연한 선택이다.
노조 가입 이후 그들을 만난 어느날 눈이 왔다.
퇴근한 이후 밤 8시가 넘은 시각인데도 눈이 오자 그들은 회의를 하던 도중 도로관리업무를 하러 가야 한다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처럼.
민주노동당 하남시당은 적극적으로 수로원·준설원 노동자를 만나 설득하고 조직화에 성공했다.
현재 하남시장은 선거운동 당시 민주당 후보였으나 민주노동당과 선거연합을 통해 당선했기에, 민주노동당 하남시당은 수로원·준설원 노동자의 노조 가입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나 하남시장은 노조가입 사실이 공개적으로 드러나자 탄압에 나섰다.
협업으로 하던 일을 분업으로 바꾸고, 업무량을 정해 주고 업무량이 목표치에 도달했는지 보고하게 하고는 30초 늦었다는 이유로 시말서 제출을 요구했다. 집으로 찾아가 가족을 괴롭히고, 사적인 관계를 이용해 노조 탈퇴가 고용을 보장하고 노조 가입은 곧 생존권 박탈로 이어진다고 겁박했다.
그리고 포크레인으로 하던 일을 삽으로 하도록 지시했다. 업무가 험해서 용역을 줬던 일을, 게다가 용역회사도 일이 험해 포크레인 기사를 통해 하던 일을 하남시청은 수로원·준설원 노동자로 하여금 하루종일 삽으로 하게 만들었다. 수채구멍의 악취를 들이마시며 삽질을 하던 60세 정년을 앞둔 노동자는 병이 나서 결근을 했고 입이 다 헐어서 밥을 먹기 불편하다 호소했다.
결국 노조가입 사실이 공개된 지 보름 만에 전원이 탈퇴하게 됐다.
노조가입을 부추기고 조직화에 매진하던 민주노동당 하남시당은 하남시장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노조가입을 선동하던 때와 너무도 다르게 이들의 탈퇴를 방치했다.
절반 이상의 조합원이 탈퇴한 후, 불안한 마음으로 남아 있는 조합원에게 노조활동을 통해 당하게 될 최악의 경우에 대하여 몇시간에 걸쳐 친절하게 안내했다.
지속적으로 최악의 경우를 각오해야 하고, 무장한 조합원에 대해서만 민주노동당의 지원이 있을 것임을 주지받게 된 노동자는 불안감을 키우게 되었고, 불안감은 공포로 발전하고, 공포는 결국 노조탈퇴로 이어갔다.
노조가입 시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조합원을 보호하고 책임질 것이라고 약속한 민주노동당 하남시당은 하남시장이 노조탄압에 나서자 시장과 보조를 맞춰 불안해하는 노동자들에게 노조활동으로 닥칠수 있는 갖가지 고통을 '알려 줬다'. 노조 가입으로 인해 생길 고통과 보이지 않는 희망은 노조탈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불안감을 조직해 노조해산에 성공한 것이다.
노조탄압이 이어질 때 공공노조는 하남시장을 규탄하는 1인시위를 제안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를 보호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실천투쟁에 끝내 동참하지 않았다 .
민주노동당의 참여 없이 공공노조는 1인시위를 이어갔고, 1인시위가 지속되자 민주노동당 하남시당은 1인시위 자제를 촉구했다. 하남시청에 고용돼 있는 조직된 또 다른 노동자들에게 보복이 이어질지도 모른다며 말이다. 조직된 노동자의 안정된 미래를 위해 미조직된 노동자의 생존권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물론 민주노동당 하남시당은 공동정부를 구성한 정당답게, 수로원·준설원 노동자의 탄압을 중단시키기 위해 수차례 시장을 면담하고 읍소했다.
면담을 통해 탄압이 중단되지도 않았지만 민주노동당은 하남시청에서 가장 궂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위한 하남시장과의 싸움은 선택하지 않았다.
1인시위가 2주간 지속되던 지난 5월 20일 경 공공노조는 하남시장을 우연히 만나게 됐다.
하남시의 후원을 받아 지역의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무료급식소가 개소식을 하는 곳이었다.
공공노조는 마침 팻말을 들고 있었던지라, 하남시장이 보이는 곳에서 기습적으로 팻말시위를 진행했다.
당일 팻말시위를 마치고 몇 시간 후 공공노조는 항의전화를 받았다.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민주노동당 하남시당 임원의 항의전화였다.
노동조합 가입을 이유로 잔인하게 탄압하는 시장에 맞선 1인시위를 두고 노동자 서민의 정당인 민주노동당이 하는 말이라는 게 '해도해도 너무하다'라니.
민주노동당은 누구의 이익을 지키는 것인지 나는 평당원으로서 할 말을 잃었다.
늙은 노동자가 자신의 입이 헌 모습을 보여 주며 자신이 수채구멍을 삽으로 파고 있는 모습을 한 번 촬영해 달라고 요구하자, 민주노동당 하남시당 간부는 ‘찍어서 뭐하냐’고 일축했다. 하루종일 삽질을 해야 해서 힘이 든다고 호소하는 노동자에게 ‘시간이 약’이라는 기막힌 처방을 주기도 했다.
수로원·준설원에 대한 탄압은 기습시위가 있은 다음날로 종지부를 찍었다. 이제 더는 수로원과 준설원노동자는 삽질을 하지 않는다. 수로원·준설원 노동자는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은 것 같다.
그러나 수로원·준설원 노동자가 예전과 같지 않은 모습이 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서민의 정당이라는 말에 그들은 더는 감동하지 않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