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방된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이 말한다:
“여러분이 우리 뒤에 있어서 힘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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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2일 ‘불법파업’ 혐의로 구속된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이 무죄로 풀려난 이후 ‘베트남 이주노동자 10인 무죄석방 대책위’와 기쁨을 나누는 ‘삼겹살 파티’를 열었다.
사실 우리가 직접 대면한 것은 몇 차례 재판, 구치소와 출입국관리소 철창을 사이에 둔 짧은 면회가 전부였다. 그런데도 마치 몇 년은 만나 온 사람들처럼 서로 깊은 친밀감을 느꼈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베트남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정말 흥겨운 베트남 노래를 한 곡 뽑아 줬다. 한 베트남 노동자가 목메어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했다.
“남자로 태어나 눈물 흘린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여러분의 도움을 받고 눈물이 흘러 나옵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약속하겠습니다. 저희를 도와준 마음, 노력, 고생하신 것에 보답해 잘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베트남에 만삭인 아내가 있는 이 노동자가 감옥에서 보낸 시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충분히 짐작이 갔기 때문에 그의 정중하고 진실된 감사는 우리 모두에게 감동을 줬다.
그는 “구속이 됐을 때 정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경찰은 양팔 저울처럼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우리가 당한 일은 그렇지 않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고 말했다.
정중하고 진실된
지난 몇 개월 동안 이들이 타국의 감옥에서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하루하루를 버텼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원옥금 씨도 그의 말을 통역하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툭하면 범죄자로 몰리며 겪는 고통에 대해 말해 줬다. “저는 오늘 도박 혐의로 체포돼 수사를 받고 있는 베트남 노동자를 만났습니다. 억울한 점이 너무 많았습니다. 경찰이 이들에게 씌운 혐의는 무시무시한 것이었고 몇 년은 감옥에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그 사실도 잘 알지 못했고 이들을 도와줄 변호사를 찾을 수도 없습니다. 이런 현실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베트남 노동자 석방 활동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던 건설연맹의 유기수 정책실장은 “한국 노동자들이 베트남 노동자를 도와준 것이 아니라 우리는 같은 노동자다. 힘을 합쳐서 싸웠으면 좋겠다. 건설연맹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조직이고, 동지들의 권리도 한국인 노동자와 똑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함께하겠다고 약속 드린다”며 화답했다.
이 말이 결코 공문구가 아니라는 것을 대책위 활동에 연관 맺은 건설노조 활동가들이 보여 주고 있다. 민주노총 인천본부 조남수 동지는 “우리 지역 일반노조 동지들이 여러분이 필요로 하면 한글을 가르쳐 주고 싶다고 합니다”라고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베트남 노동자들과 연대한 경험은 이 투쟁을 지켜보던 다른 한국인 노동자들을 각성시키는 효과도 낸 것이다.
재판 전에는 알던 사이가 아니었기에 베트남 노동자들이 연대하는 한국인들의 존재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 궁금했는데, 한 노동자가 말해 줬다. “재판을 받는 동안 여러 분이 면회를 와 주셨고, 또 우리 베트남 친구들이 면회를 와서 말해 줬어요. 우리를 위해 싸워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요. 이 얘길 들은 뒤 재판정에 나가면 뒤를 돌아 여러분을 봤습니다.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여러분이 우리 뒤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힘이 났고 기뻤습니다. 여러분이 재판정을 가득 메워 줬으니까요”
순도 1백 퍼센트 감동
“재판 때 공식 통역자가 하는 말을 알아듣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도무지 뭐라고 답변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원옥금 씨가 방청석에서 우리를 위해 통역에 나서줄 땐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 통역을 들으면 내가 무슨 말과 답변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재판정에서 느낀 것을 이들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게 진정한 교감이고 순도 1백 퍼센트 감동이다.
“감옥에 있을 때 한국인 재소자들이 우리를 대하는 눈길이 좋지 않았어요. 우리를 게으르고 문제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우리 소식이 신문에 실리고 그것을 본 뒤로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어떤 사람은 나에게 음료수를 주면서 힘내라는 말을 해 주기도 했어요.”
베트남 노동자들의 말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은 경제도 발전했고 문화도 다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베트남에 한국 기업들이 많이 와 있어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와서 작업장에서 겪는 일들은 정말 힘들었고, 한국이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 그리고 한국 사람들 모두가 다 싫어졌죠. 그런데 여러분을 만났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번 경험을 하지 못했다면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희망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노무현 정부 이래로 한국 정부들은 이주민 1백만 시대를 말하며 ‘다문화’를 외쳤다. 그러나 정작 70만 명의 이주노동자들과 결혼 이민자 대부분은 한국의 주류 사회 어디서도 ‘존중’과 ‘이해’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투쟁은 한국 정부와는 달리, 이주노동자들과 연대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한국 노동자들 사이에서 이런 연대가 확대될 잠재력이 매우 크다는 것도 보여 줬다.
이제 이 잠재력이 현실화하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 투쟁에 적극적이었던 ‘건설이주노동자와 연대하는 모임’의 소집자인 이세훈 동지는 나에게 “지난해 말부터 이 모임을 만들며 노력해 온 것이 이번 투쟁에 적극 나서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날 작은 파티는 기쁨을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제2라운드를 준비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최근 검찰이 무죄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했기 때문이다. 또 무죄를 선고받고도 이 사건과 무관한 경미한 벌금 납부 전력 때문에 여전히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돼 있는 베트남 노동자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에 지속적인 지지와 연대를 호소한다.
이정원 씨는 맑시즘2011에서 베트남 여성 활동가 원옥금 씨와 다문화주의에 관해 연설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