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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대표는 노동자 진보정당의 대표답게 행동해야 한다

이 글은 〈레프트21〉 김문성 기자가 민주노동당 중앙당 게시판에 올린 글을 다시 다듬은 것이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7월 13일 유시민과 함께 쓴 책의 출판기념회 참가 여부를 두고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고민을 토로했다.

이 보도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의문은 이 출판기념회가 문제가 된 것은 진보정당의 대표로서 적절한 행보냐가 쟁점인데, 당기구나 당원게시판이 아니라 왜 페이스북에서 여론을 수렴하는 척하냐는 것이다. 그것도 출판기념회를 하루 앞둔 시점에 말이다.

여러 당원들이 당대회 때도 국민참여당 문제로 질문과 의견을 많이 냈고, 당원게시판에도 비판적인 글들과 학생위원회 유시민 초청 논쟁이 벌어졌다. 당대표라면 당연히 당기구와 당원게시판에서 먼저 당원들의 의견을 듣고 묻고 토론하고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정희 대표가 당내 민주주의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 의문은 이정희 대표의 개인적 행보를 보면서 더 짙어진다.

공개된 6월 12일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이번 책의 출판 여부는 당 최고위원들도 몰랐던 듯하다. 이정무 〈민중의소리〉 편집장의 변으로는 이미 올해 초부터 이 책의 기획은 진행돼 왔다.

이정희 대표는 이 책의 서문에서 “꽃길을 내고 길 폭을 넓혀 함께 걸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심지어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에게 보낸 6월 10일치 공개편지에서도 빨리 국민참여당 합류 여부를 결정하자며 채근하기까지 한 바 있다.

지난 6월 정기당대회에서 당대표와 지도부들은 반복되는 질문에 국민참여당과 통합 등 관계 문제는 당에서 공식으로 논의하거나 결정한 바 없다고 답했는데, 막상 당 대표는 국민참여당과 거리좁히기를 개인적으로 지속해 왔던 것이다.

이정희 대표는 이런 행보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과거에 대해 반성을 요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정희 대표의 본인의 경험이 그러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국민참여당의 진보대통합 참여에 반대하는 많은 당원들과 진보 활동가들이 문제삼는 ‘과거’는 단지 옛날의 안 좋은 기억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 지향과 기반에 관한 문제이고, 현재의 정치적 과제 문제다.

과거는 묻지 마세요?

울부짖으며 저항하는 국회 밖의 민중과 의사당의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내팽개치고 저들이 통과시킨 악법이 한두 개가 아니다. 정리해고 도입, 한미FTA, 비정규직 등 노동악법, 공공서비스 민영화, 국민연금 개악, 해외 파병 등 민주당 정권 10년이 만든 죄악이 이명박 정부의 도움을 받아 아직도 살아서 노동자·민중에게 고통을 안기고 있는데, 이를 앞장서 해결해야 할 진보정당이 그들의 과거를 묻지 않는다면 어떻게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가 등장한 배경에는 오히려 노무현 정부의 개혁 배신이 대중의 환멸을 낳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진보정당이 질적으로 그들과 다른 정치를 제대로 추구하지 못했던 대가로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기회로 바꿔놓지 못했다.

그래서 과거에서 진짜 배워야 하는 교훈은 진보정당이 자유주의 자본가당들 사이에 있는 차이를 흐리는 게 아니라 분명히 하면서 단결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정희 대표는 “[국민참여당이] 진보의 방향으로 발걸음을 떼어 주신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말한다. 국민참여당이 진보대통합 합의문을 승인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유시민과 국민참여당 지도부는 기존 진보정당들을 ‘계급적[이념적] 진보정당’이라고 부르면서 자신들은 ‘대중적 진보정당’을 지향한다고 선긋기를 분명히 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정희 대표도 이에 동조했다. 그런데 유시민과 참여당 지도부의 이 용어법은 우리를 소수의 골방분자로 매도하려고 의도된 것이다.

계급 vs 대중?

계급정당과 대중정당은 대립되는 게 아니다. 한국에서 우리가 대변하고 설득해야 할 노동계급 대중이 1천7백만 명에 이른다. 저들의 용어법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탄생한 민주노동당을 경멸하는 편견의 표출이고 진보대통합을 교란하려는 의도된 상징 조작에 불과하다.

유시민은 건방지게 진보정당에게 ‘정부에 반대하고 민주당과 차별화’하면서 투쟁하고 계급을 내세우는 ‘소수파 전략’을 포기하라고 말한다. 참여정부에 반대만 해서 한나라당이 살아나게 한 것에 진보진영도 성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보대통합 합의문에 동의한다면서, 이 합의문의 지향·정책과 정면 충돌하는 자신들의 강령을 바꾸지 않는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어떤가. 노동‘계급’과 사회주의 ‘이념’을 포기하면서 진보대통합 합의문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강령을 바꿔 버렸다. 유시민이나 국참당 지도부의 같잖은 충고에 단 한마디도 반론하지 않는다. 국민참여당과 가까이 하려다가 당 안팎에서 반발이 생기고, 애초 기획했던 진보 양당 통합마저 위태로워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국민참여당과 통합 논의 때문에 정작 자기 위치를 잃고 있는 정당은 어느 정당인가? 어느 당이 어느 당에게 끌려가고 있는가?

이정희 대표는 《미래의 진보》 서문에서 “참여정부가 시도한 개혁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진보진영이 참여와 비판의 방법을 고루 활용하며 정부가 개혁과 진보의 길을 강력하게 밀고 가도록 해야 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것과 마치 동전의 앞뒷면처럼 전체에서 잇닿아 있다”고 썼다.

얄궂게도 참여당 대변인이자 노무현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이던 이백만이 이 문구 그대로 이정희 대표의 말이라며 인용해 자기 트위터에 올렸다. 왜 그랬을까.

문제는 이것이 완전히 그릇된 평가라는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2005년 정부에 참여해서 친노동 정책을 견인하겠다고 그 무리수를 둬가며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했지만, 노사관계로드맵과 비정규직악법이라는 철퇴를 맞았을 뿐이다.

한미FTA와 제국주의 전쟁 파병, 공공서비스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한나라당과 대연정 운운하는 정부에 진보정당이 어떻게 참여하나. 노동자·농민이 집회 현장에서 경찰에 맞아 죽는데, 진보정당이 그 정부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그 정부를 제대로 타격하지 못한 것이 문제인가.

FTA 반대? 재협상?

이정희 대표가 그렇게 평가하는 까닭은 결국 연립정부를 꾸리자는 결론을 유도하려는 셈법일 것이다. 그런데 참여정부 실패에 진보도 책임있다는 평가야말로 유시민 등이 자신들의 반성(성찰)을 전제로 진보정치세력에게 요구하는 것이고, 저들이 반성 시늉을 했으므로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에게 요구할 문제다.

즉 저들의 반성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사실은 진보정치세력을 함정에 빠뜨리는 길이다.

연합을 고려하는 지금에도 민주노동당이 이렇게 후퇴하는데, 연립정부를 본격 추진한다면, 이런 압력은 통합 진보 정당이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투쟁을 가로막는 구실을 하게 만들 것이다.

예를 들어, 왜 한미FTA 반대가 당론인 당이 어떻게 ‘FTA 재협상’이라는 요구에 합의하는가. 야권연대를 하더라도 FTA 반대는 독자적으로 투쟁하고, ‘일방 비준 강행시 실력 저지’만 합의해서 그렇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지금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취하는 정책이야말로 기층 투쟁을 망가뜨리는 지름길이다.

정권 참여가 중요하다 해도 어떤 정권인지가 더 중요하고, 어떤 정권인지보다 노동 대중의 각성과 자주적 행동력이 더 중요하다. 그것이 진짜 진보의 힘이니 말이다. 국민참여당을 진보대통합에 끌어들이는 것은 이 힘을 분열시키고 혼란에 빠뜨려 마비시키는 길이다.

호위호식하며 민중을 억누르고 탄압한 참여정부 고위관료 출신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헛된 자신감 말고 기층의 대중투쟁을 조직해 개혁을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할 때다.

이정희 대표는 기층 민중의 투쟁의 전통을 이어받겠다며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탄생한 정당의 대표라는 것을 다시 되새겨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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