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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화염의 바다〉:
난민의 참상을 생생하게 폭로하다

세계 난민이 6천 5백만 명을 넘었다. 지중해에서 익사하는 난민은 2년 반 만에 1만 명을 돌파했다. 지금도 많은 난민들이 전쟁과 박해를 피해 지중해를 건너고 있다.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인 〈화염의 바다〉는 람페두사 주민들의 삶과 지중해를 건너 람페두사로 오는 난민들의 참상을 담았다. 람페두사는 이탈리아 최남단의 섬으로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다. 그래서 북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은 이곳에 가장 먼저 발을 딛게 된다.

〈화염의 바다〉는 다큐멘터리 거장 잔프랑코 로시 감독의 작품으로, 다큐멘터리 영화 최초로 베를린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2016년 2월 18일 이탈리아에서 처음 개봉했고, 한국에서는 2016년 8월 24일과 27일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하루 한 번씩 상영했다.

나는 27일에 극장을 찾았는데 난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보여 주듯, 〈화염의 바다〉는 상영 1~2시간 전부터 매진됐다. 전날부터 시스템 오류로 현장예매만 가능했는데도 말이다.

<화염의 바다>, 잔프랑코 로시 감독, 110분

영화는 난민 구조 현장을 생생하게 담으며 그들이 얼마나 열악하게 지중해를 건너 왔는지 보여 준다. 난민들은 배라고 할 수도 없는 모터를 단 작은 고무보트에 2백50~3백 명씩 몸을 욱여넣어 지중해를 건넌다. 보트가 전복되거나 침몰하기도 하지만 난민들에게는 구명조끼조차 없다.

구조원들이 배 하나를 구조하면 심각한 탈수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과 수백 명의 난민, 그리고 시체 수십 구를 수습하게 된다. 큰 난민선의 경우, 가장 열악한 지하칸에서 연료로 인한 화학적 화상이나 유독가스로 인한 질식 사고가 많다.

영화는 내전을 피해 온 나이지리아 난민들의 기도와 노래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말해 준다. 많은 나이지리아인들이 폭격을 경험했고, 살해당하거나 강간당했다. 나이지리아에서 도망친 이들은 사하라 사막을 건너 리비아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과 탈수로 죽었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오줌을 마셨다.

그러나 그렇게 도착한 아프리카 북쪽 끝 리비아의 도시는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가 점령하고 있었다. 리비아에 도착한 이들은 감옥에 갇혔고, 다시 또 많은 이들이 죽었다. 음식도 물도 없는 곳에서 매일매일 맞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살기 위해 도망쳐 바다로 향했다.

그러나 바다에서도 또다시 너무나 많이 죽었다. 한 보트에서는 탑승자 90명 중 30명만 구조되고 나머지는 죽었다.

감독 잔프랑코 로시는 유럽의 영화포털 웹사이트인 ‘씨네유로파’와의 인터뷰에서 “죽음을 피해 탈출하는 이들을 막을 수는 없다”며 국경 폐쇄가 난민들을 더 위험한 처지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국경 폐쇄를 “끔찍한 일”이라고 일갈하며, 자유롭게 국경을 왕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목숨을 건 도박

영화에서는 참혹한 난민들의 모습과 람페두사 주민들의 평온한 삶이 교차한다. 수많은 난민이 죽어간 바다가, 람페두사 주민인 사무엘라와 그의 가족들에게는 평온한 공간이다. 사무엘라는 ‘약시’를 앓고 있는데, 로시 감독은 "사무엘라의 ‘약시’가 난민들에 대한 우리 서양인들의 태만한 관점을 보여 주는 비유"라고 했다.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있지만 보지 못하는, 보고도 외면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담은 것이다.

난민들에게 냉담한 출입국 관리소의 모습도 보여 준다. 구조 요청을 받고 구조에 나서는 관리소 직원들의 모습에서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급박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배에 2백50명이 타고 있다며 구조 요청을 한 난민들은 결국 시체로 수습됐다. 관리소 직원들은 몸을 가누지 못하는 환자들을 짐짝처럼 옮기고, 온몸에 가솔린을 뒤집어 쓴 난민들의 소지품을 검사하며 잔혹한 농담을 내뱉는다.

로시 감독은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뒤 “영화로 난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을 담아내듯 영화는 구조된 뒤 얼굴에 물을 쏟으며 기뻐하는 여성과 난민 수용소에서 기도하고 축구하며 삶을 살아 나가려는 난민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난민들에게 따뜻한 시선과 관심을 촉구하고 또 난민에 대한 악마화와 편견 부추기기에 맞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처럼 유럽 지배자들의 국경 봉쇄 때문에 난민들은 목숨을 건 도박을 강요당한다. 눈 앞에 닥친 박해와 생명의 위협으로 피난을 떠나는 난민이 합법적 방법으로 유럽에 들어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최근 유럽연합은 난민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난민을 터키와 리비아로 송환하고, 해양 순찰을 강화해 난민 유입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한다. 죽음을 피해 온 사람들을 다시 돌려보내면, 위험하게 지중해를 건널 이유가 없어질 것이라는 끔찍한 이유다. 제 집 앞에서만 안 죽으면 된다는 심보가 아닌가!

이 영화에 표현된 냉담한 관리소 직원들의 태도의 배경에는 이런 유럽연합의 정책이 존재한다.

이 영화에서 난민 문제의 원인은 암시적으로 제시된다. 사무엘라의 할머니는 사무엘라에게 전쟁 시기에 바다가 화염에 붉게 타올랐다는 이야기를 해 준다. 실제로 “화염의 바다”를 만든 여러 전쟁 하나하나마다 미국과 서방 열강이 개입해 있다.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이 난민이 된 시리아부터 콜롬비아, 팔레스타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미국과 제국주의 열강이 직접 전쟁을 벌이거나, 개입해서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서방이 “인도주의적” 전쟁이나 공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국주의의 개입은 재앙을 더 키울 뿐이다. 난민 수천만 명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때문에 진정으로 난민들의 삶을 위한다면, 서방의 제국주의 전쟁과 군사 개입에 반대해야 한다.

제국주의 열강은 자신들이 낳은 난민 문제에 진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

유럽 지배자들은 난민 수용 비용이 부담된다며 엄살을 떨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전쟁에 쏟아 부은 돈의 반의 반만이라도 난민을 위해 썼다면 난민 문제는 해결됐을 것이다. 미국이 13년 동안(2001~14년) 전쟁에 쏟아부은 돈은 1조 6천억 달러(약 1천8백조 원)나 되지만 2014년에 미국이 난민 구제를 위해 쓴 돈은 11억 달러(약 1조 2천억 원)에 불과하다. 독일도 난민 때문에 한국 돈으로 10조 원 이상을 썼다며 투덜댔지만 이 돈은 독일 GDP의 0.3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해 난민들이 국경 개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할 때 많은 유럽인들이 난민들을 지지하며 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9월 12일 하루에만 영국 곳곳에서 약 8만 명,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3만 명, 독일 함부르크에서 1만 4천 명 등이 거리로 나와 난민을 환영했다.

영화 〈화염의 바다〉는 바로 이처럼 난민에 연대하고, 국경 개방과 난민 지원을 요구해야 할 이유와 명분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이 영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열렬한 호응(관객들은 마지막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가 일제히 박수를 쳤다)을 보며 이런 운동의 잠재적 지지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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