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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머니, 핑크워싱과 성소수자 인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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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블로그의 ‘‘핑크머니에 대한 수다회’ 스케치’ 본문 중 현우(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회원, 정의당 성소수자위회원)의 발제문 전문을 옮긴 것이다.
장면1.
작년 11월 5일, 신나는센터는 ‘성소수자와 기업: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핑크 산업의 전망과 비전’이라는 제목의 강연회를 개최했다. 이 강연회에 초대된 우승용 러쉬 코리아 상무는 “(성소수자) 유명인이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라고 발언하며 논란을 야기했다. 우승용 상무는 국내 모 유명 성소수자 연예인의 사진을 모자이크해 보여주며 “유명인사가 행동을 조심해서 성소수자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야 한다”며 “티팬티 입고 엉덩이 까고 돌아다니면 다른 분들이 불편해할 것이다. 대중들이 (유명인사의 행동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이것 또한 (성소수자들의)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발언은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숨기고 대중 앞에 스스로를 드러내지 말아야한다는 성소수자 차별적 발언이었기에 논란이 일었고, 결국 강연은 30분 만에 중단되었다. 이날 강연은 성소수자 우호적인 마케팅과 캠페인, 정책을 시행 중인 기업을 조명해 성소수자와 기업에 관해 분석해보자는 취지로 진행된 것이었기에 우 상무의 발언은 소비자들에게 더욱 충격을 주었다.
[출처: ‘‘성소수자 차별 발언’ 러쉬코리아, 겉핥기식사과 논란’, 투데이 신문, 2016.11.17]
장면2.
작년 5월, 퀴어문화축제 조직위는 노동자연대의 퀴어퍼레이드 부스 선정을 취소했다. 노동자연대의 ‘강남역 살인 사건’ 기사가 ‘페미니즘을 폄하하고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 인권에 대해 매우 낮은 감수성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이유에서였다. 노동자연대의 ‘강남역 살인 사건’ 기사는 논란의 여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의 노동자연대 부스 선정 취소는 갑작스러웠다. 노동자연대는 이와 관련하여 “조직위원회는 노동자연대처럼 성소수자 해방운동의 일부인 마르크스주의 단체의 부스는 배제하면서도,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미국, 영국, 독일 등 제국주의 국가의 대사관 부스는 선정하는 이중잣대에 대해서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전 CEO의 숱한 성희롱과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성차별적 광고로 유명한 ‘아메리칸 어패럴’ 같은 기업이 이미지 변신을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퀴어문화축제를 활용하는 것이 용인돼야 하는가 하는 문제제기에도 조직위원회가 귀를 기울이기를 바랍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핑크머니와 성소수자 인권
핑크머니는 게이 커뮤니티의 구매력과 이로부터 파생되는 게이들의 소비를 일컫는 말이다. 서구의 경우, 게이 커뮤니티의 경제적 능력과 구매력이 증대되면서 게이 커뮤니티는 자신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옹호하는 기업들의 제품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장의 흐름에 발맞춰 적지 않은 기업들은 게이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옹호하는 마케팅 전략, 캠페인, 기업 내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고, 이들은 핑크머니의 수혜를 보게 된다.
성소수자들은 핑크머니로 일컬어지는 자신의 경제적 능력과 구매력을 통해 사회 내에서 가시화될 수 있고, 핑크머니를 경제적 압박수단으로 삼아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일정 부분 없앨 수도 있다. 그러나 핑크머니를 둘러싼 사회적 양상들은 핑크머니를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성소수자 친화적인 마케팅과 캠페인, 기업 내 정책을 통해 핑크머니의 수혜를 입는 기업들은 근본적으로 핑크머니가 많은 이윤을 남겨다 주기에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를 취한다.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를 보이는 기업들, 이른바 ‘핑크산업’ 기업들은 단순히 게이들의 핑크머니를 통해 이윤을 얻을 뿐 아니라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를 통해 획득한 ‘착한 기업’ 타이틀로 내부적인 인권문제를 은폐하고, 긍정적 기업 이미지를 획득해 장기적인 이윤을 얻는다. 핑크 산업 기업들의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는 당위적인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기 보다는 기업들의 이윤획득 욕구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핑크산업 기업들은 핑크머니가 충분한 이윤을 가져다주지 않고, 오히려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가 이윤에 악영향을 끼친다면 과감하게 성소수자 친화적 정책을 철회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핑크머니는 성소수자들의 인권에 기여하는 바도 있지만 성소수자 인권과 차별 철폐라는 당위적인 문제를 기업의 경제적 이윤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문제로 전락시킬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핑크머니가 성소수자 인권의 문제를 경제적 이윤에 따른 문제로 전락시키는 양상은 핑크머니의 개념적 범위에서부터 드러난다. 핑크머니의 주체이자, 핑크머니를 통해 가시화되는 주체가 성소수자 그룹 중 게이들에게만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 등 다른 성소수자들이 핑크머니를 통해 가시화, 주체화되지 않는 모습은 성소수자 그룹 내부에서도 위계적으로 나타나는 사회경제적 지위의 문제를 반영한다. 교차적인 사회적 차별 속에서 게이들은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보다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얻게 되고, 핑크머니라는 권력을 얻게 된다. 소위 말해 ‘돈이 되지 않는’ 다른 성소수자 그룹들은 핑크머니라는 권력으로부터 배제되고 있다. 핑크머니가 확장되고 그 영향력이 증대될수록 핑크머니로부터 배제될 수밖에 없는 성소수자들의 인권 문제가 비가시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
핑크머니와 핑크워싱
핑크워싱은 제국주의 국가들과 기업들이 마케팅이나 정치적 전략을 목적으로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와 언사, 정책을 동원해 자신들의 활동을 정당화하고, 홍보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핑크워싱은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이용해 제국주의 국가들과 기업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정당화하고 이익을 얻는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다.
이스라엘 정부의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와 정책은 대표적인 핑크워싱으로 지적받고 있다. 얼마 전 서울인권영화제를 비롯한 영화제에서 ‘핑크워싱에 반대한다’는 기조 아래 보이콧된 이스라엘의 인터섹스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3의 성’은 이스라엘 정부의 핑크워싱을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다. 이스라엘 정부는 성소수자 우호적 정책을 펼치고 성소수자와 관련된 영화들을 제작, 배급함으로써 중동에서 유일하게 성소수자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전파하고, 전 세계적으로 ‘문화 다양성을 장려하는 민주 국가’라는 이미지를 유포해왔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정작 이스라엘 내부의 성소수자 인권상황은 열악하다는 점, 이러한 프로파간다를 통해 이스라엘이 대외적으론 인권을 존중한다는 긍정적 이미지를 만드는 동시에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점에서 핑크워싱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 정부의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와 정책은 자신들의 반인권적 범죄와 행위를 핑크색(성소수자 이슈)으로 덧칠하는데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핑크머니를 통해 양산되는 핑크산업 기업들도 핑크워싱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들다. 다수의 핑크산업 기업들은 정작 기업이 행하고 있는 노동착취나 인권유린의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성소수자 인권 친화적인 마케팅과 정책을 펼침으로서 경제적 이윤을 도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핑크워싱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공개적으로 성소수자 지지를 표명하며 지속적으로 성소수자 친화적인 마케팅과 내부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지의 제3세계 국가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자신들의 기업경영 방침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인권친화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내부적으로는 그 어떤 기업보다도 적극적으로 제3세계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는 것이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민낯이다.
이처럼 핑크워싱은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내세워 제국주의 국가들과 기업들이 사회의 다른 약자를 향해 행하는 착취와 억압을 은폐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그러나 성소수자 해방운동의 관점에서 봤을 때 핑크워싱은 무엇보다도 성소수자 억압의 주요기제인 자본주의의 문제를 은폐하고, 자본주의의 존속을 위해 기능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성소수자 억압의 근원이 자본주의에 있다고 바라보는 맑시즘의 시각에서 성소수자의 해방은 자본주의의 분쇄를 통해서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핑크워싱은 오늘날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시키는 제국주의 국가들과 자본들의 착취와 억압을 은페함으로서 교묘한 체제의 유지와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근원적인 성소수자 해방의 장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핑크머니, 핑크워싱과 성소수자 인권운동
성소수자 억압의 근원이 자본주의에 있다고 바라보는 맑시즘적 시각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현실에 부닥친 성소수자 차별과 억압을 해결하기 위해 힘쓰는 동시에 근원적인 성소수자 해방의 운동 전략을 모색하고 실천해야 한다. 항상 눈앞에 닥친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힘써야 하지만 역으로 현실의 문제에만 빠져 근원적 문제의 해결을 소홀히 하거나 포기하게 된다면 사회변화는 요원해진다는 것이다.
핑크머니라는 성소수자들의 경제 권력과 수단은 당장 눈앞에 닥쳐있는 성소수자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핑크머니라는 수단을 성소수자들이 마냥 반기고 활용할 수 없는 것은 그 자체가 큰 한계를 지니고 있을뿐더러, 핑크워싱으로 변질되어 성소수자 의 근원적 해방을 막는 장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어떠한 성정체성과 성적지향을 갖든 자유로운 해방사회를 꿈꾸는 성소수자들은 이러한 면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전략과 방식, 그 수단을 세밀히 검토하고 고려해야할 필요가 있다.
원문 보기: ‘핑크머니에 대한 수다회’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