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 총파업 이후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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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구조 개악과 공무원연금 개악을 4월 국회 안에 추진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두 가지가 맞물린 결과다.
하나는 박근혜 정부의 정치 위기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침몰시키려다 거대한 반발에 부딪힌 상황에서 성완종 게이트마저 터지자 정부는 한층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그 결과 개악 추진의 정당성과 동력에 상당히 차질이 빚어졌다.
다른 하나는 아래로부터의 반발이다. 한국노총의 협상 결렬 선언으로 노사정 대타협이 무산돼, 정부는 플랜B로 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이는 한국노총 소속 노동자들의 불만이 만만치 않음을 뜻했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어느 인터뷰에서 “난 샌드위치 신세”라며 정부와 조합원 사이에 낀 부담을 토로하기도 했다.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악에서도 대타협 모양새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도 공무원 노동자들의 반발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공무원노조 등이 개악을 전제로 한 협상을 거부하지 않고 실무기구에 매달려 있는 것은 크게 아쉬운 일이지만, 아래로부터의 반발 때문에 심지어 공노총조차 총파업 계획을 내놨다.
고비
민주노총이 올해 초 일찌감치 투쟁의 시동을 건 것은 위 두 가지 사태 전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사실, 성완종 게이트는 정부가 노동자 투쟁에서 시선을 돌리게 만들고 후진 부위를 ‘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달래려고 기획 사정에 나섰다가 제 발등을 찍게 된 사건이다.
민주노총이 노동시장 구조 개악에 반대해 “정권과 맞짱뜨기”를 선언하고 나서지 않았다면, 한국노총 지도부는 기층의 반발을 훨씬 덜 의식했을 것이다. 공무원노조 지도부도 투쟁적 민주노총 지도부의 등장,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내부의 반발에 압박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신임 민주노총 지도부가 여러 우려와, 다른 노조 지도자들의 소극성 속에서도 4·24 총파업을 결정하고 조직화에 나선 것이 효과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만약 노동조합의 정해진 일정을 우선시하면서 투쟁을 6~7월로 미뤘다면 연초에 지지율이 급락한 정권의 위기 상황과, 노동시장·공무원연금 개악 논의가 한창인 국면, 세월호 시행령 정국 등에 대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우리 측이 기선을 제압한 상황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박근혜 정부는 심각한 정치 위기 상황에서도 결코 공무원연금 개악과 노동시장 구조 개악 추진을 늦추지 않고 있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그 자신이 이를 “생존 전략”라고 강조했던 대로 박근혜는 집요하게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 1주기에 맞춰 해외 ‘도피’에 나서면서도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에게 공무원연금 개악을 차질 없이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실무기구 논의마저 시한을 넘기자 초조해진 김무성은 4월 23일 “공무원연금 개혁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는 대국민 호소문까지 발표했다. 공무원들을 국민 세금 빼앗는 파렴치한으로 몰면서 기성 야당과 공무원단체들을 압박한 것이다.
현재 여야는 공무원연금 개악안의 최종 제출 시한을 사실상 5월 1일로 정한 상태다.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 개악도 가이드라인과 시행령을 통해 시급히 추진하려 한다. 5월에 취업규칙 변경 기준을, 6~7월에 일반해고 요건 완화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위기 속에서도 집요한 공세를 멈추지 않는 지금, 우리 측도 집요함과 단호함으로 맞서야 한다.
4·24 총파업 이후 정부의 개악 추진 일정을 겨냥한 민주노총 차원의 투쟁이 배치돼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엄포 한 번 놓은 뒤 개악을 방치하는 꼴이 될 수 있어 선제파업의 의미가 퇴색할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정부의 개악이 관철되기 전에 선제공격으로 정부의 계획을 좌절시키겠다는 민주노총의 선제파업 계획은 효과가 있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찌감치 투쟁의 시동을 건 덕분에 조성된 유리한 정세를 연료 삼아 투쟁을 더욱 전진시키는 것이다.
끝이 아니라 시작
그러려면 첫째, 무엇보다 지금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전선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는 공무원연금 개악을 성사시킴으로써 정세의 반전을 꾀하려 한다. 국정 주도권을 찾고, 전체 노동자 투쟁 전선을 교란시키고 한동안 와해시키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무원연금 투쟁은 단지 공무원노조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공무원노조 집행부가 스스로 양보안을 내지는 않더라도 실무기구에 남아 공무원연금 개악을 묵인한다면, 이는 박근혜를 위기에서 구출하고 전체 노동자 투쟁 전선에 찬물을 끼얹는 셈이 될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총 지도부는 공무원연금의 개악을 전제로 개악의 정도를 정하는 실무기구 논의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여야가 본회의에서 개악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도록 적어도 5월 6일까지 민주노총 차원의 투쟁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공무원노조 내 좌파 활동가들은 노조 집행부가 실무기구에서 나와 개악안 국회 통과를 막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기층에서 계속 이런 압력을 조성하고 확대해야 한다.
둘째, 노동시장 구조 개악에 맞선 중앙 차원의 투쟁 전선을 유지·강화해야지 사업장별 투쟁으로 분산케 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 개악의 일부 사항을 국회로 넘기고, 다른 일부 사항은 가이드라인과 시행령과 단협 시정 지도로 관철시키려 한다. 이럴 때 흔히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국회 대응’과 ‘사업장별 임단협 대응’으로 초점을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통상임금 투쟁 경험은 정부 지침을 폐기하기 위한 투쟁에 중심을 두지 않고 각 사업장 별로 각개약진 하는 투쟁이 무기력하다는 점을 보여 줬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분산적 투쟁은 미조직 노동자들의 조건 방어를 방기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오히려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에 가이드라인 반대 공동투쟁을 제안해, 한국노총 지도부가 국회 대응에 초점을 두며 형식만 달라진 협상장으로 어물쩍 돌아가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투쟁을 확대하기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한국노총 소속 금융노조는 민주노총의 4·24 파업 집회에 참가하겠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를 잘 살려야 한다.
셋째, 민주노총은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이나 성완종 게이트 같은 정치 쟁점에 더욱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난해 세월호 정국에서 민주노총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구실만을 했다. 한상균 위원장은 후보 시절 이를 비판하며 앞으로는 민주노총이 이런 정치·사회적 문제에 더 주도적으로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사회연대위원회도 신설했다.
지금은 이런 문제의식이 적극 구현돼야 할 때다. 성완종 리스트에 기성 야당 정치인이 많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일부 시민사회 진영은 관망 태도가 뚜렷하다. 기성 야당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노동운동이 성완종 게이트에 대한 항의를 주도하고 박근혜를 궁지로 몰아붙여야 한다.
이런 활동은 전체 노동자 투쟁을 전진시키는 데서도 매우 중요하다. 좌파 활동가들은 정치적 쟁점들을 이용해 산업 현장에서 투쟁 전진을 위한 활력을 높이도록 애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