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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공세와 2015년 노동자 투쟁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12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본격화, 2015년 경제정책방향(안)〉을 내놓았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본격화”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2014년 초에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제 궤도에 올려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초 규제완화 ‘열풍’을 일으키며 서비스산업과 노동시장 등의 규제를 풀려고 했는데, 세월호 참사라는 암초에 부딪혀 생각만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는 기업 이윤을 위한 규제완화가 어떻게 사람들을 끔찍한 위험으로 몰아넣는지 밝히 보여 줬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모질게 뿌리치며 ‘경제 활성화’ 타령을 하더니, 다시금 연말에 노동자들을 정조준한 공격 종합세트를 내놓은 것이다.

2015년 경제정책방향(안)의 핵심 내용은 “핵심분야 구조개혁”이다. 정부는 주요국 구조개혁 사례를 들며 “생산요소와 관련된 금융·노동·교육개혁과 재정여력 확보를 위한 공공부문 개혁이 핵심”이라고 했다. 그 구체적 과제로,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공무원연금 개혁, 공공부문의 민간 투자 확대(즉, 민영화) 등을 꼽았다. 노동분야 구조개혁에 관해서는 곧이어 내놓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안), 비정규직 처우개선 및 노동시장 활력제고 방안〉에 더 자세히 담았다.

노동시장 구조 개악의 핵심 내용들을 간단히 짚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임금 공격이다. 정부는 연령이나 근속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급 임금체계를 문제 삼으며 임금피크제와 직무성과급제 도입 같은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려 한다. 전자는 고령 노동자들을 겨냥해서, 후자는 개인별 임금 결정구조를 강요함으로써 전반적인 임금 삭감을 노린다. 전경련의 조사에 따르면, 300인 이상 대기업 10곳 중 7곳은 2016년 정년연장 의무화를 앞두고 올해 임금피크제 도입을 벼르고 있다.

통상임금 범위 정상화를 막으려는 것도 장시간 노동체제를 부르는 낮은 임금을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도 임금 삭감 효과를 낸다. 초과근로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비정규직에 대한 규제 완화다. 정부는 비정규직에 대한 기간 제한을 2년보다 완화해 4년까지 연장하겠다고 하고, 파견 허용 제한도 완화하려 한다. 55세 이상과 고소득 관리직·전문직에게 파견근로를 전면 허용하려 하는데, 그러면 전체 노동자 10명 중 3명이 그 대상이 된다. ‘고소득 전문직’에는 교사와 간호사 같은 여성 비율이 큰 노동자군도 포함된다.

또, 정부는 파견근로 보호를 명분으로 사실상 사내하청 합법화도 노리고 있다. 파견법 적용 대상 확대는 불법파견 판결을 받고도 버티고 있는 재벌들을 노골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셋째, 해고 규제 완화다. 지난해 말 쌍용차 법원 판결로 정리해고 요건이 완화된 데 이어, 정부는 통상해고 요건도 완화하려 한다. 징계해고나 정리해고보다 손쉬운 실적 부진자(저성과자) 해고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고용주가 원할 때 고용했다가 노동시장의 조건이 달라지면 내던져 버리겠다는 얘기다.

2016년 정년연장이 의무화되면 자칫 해고가 어려워질 수도 있는 문제점을 저성과자 해고제 도입으로 해소하려는 목적도 있다. 업무 평가에 기초한 저성과자 해고제는 관리자의 권한을 강화하고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보복용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넷째,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대한 제한 회피다. 현재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이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될 경우 과반수 노조의 동의나 과반수 노동자들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정부지침으로 완화하려는 것이다. 정년연장, 임금피크제 등 노동조건 악화를 초래하는 취업규칙 변경을 기업이 쉽게 할 수 있도록 열어 주는 것으로, 행정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을 통한 입법권 침해다. 그렇게 되면 기업들은 단체협약을 지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또는 개별 노동자들을 압박해서 취업규칙을 변경해 노동조건을 후퇴시킬 수 있다.

다섯째, 정부는 위와 같은 공격을 공공부문에서부터 밀어붙이려 한다. 이미 정부는 업무 저성과자 퇴출제, 성과연봉제, 임금피크제 등의 도입과 단협 무력화를 추진 중이다. 공무원연금 개악과 함께, 노동시장 구조 개악에서도 공공부문은 최전선인 것이다.

착취율 증대

위와 같은 내용들은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노사정 일자리협약’, ‘투자활성화 대책’, ‘경제혁신 3개년계획’ 등에서 이어져 온 것으로, 장기화되고 있는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경제정책의 겉모양을 띠고 발표했던 것들을 〈2015년 경제정책방향〉과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에서 총망라한 셈이다.

이것은 자본가 계급이 오랫동안 바라 온 바이기도 하다. 기업주들은 “과도한 고용보호법과 강성 노조의 중첩적 보호를 받는 대기업·정규직·유노조 부문으로 인해 우리 나라의 노동시장 경직성이 심하다”(경총)며 “노동시장 유연화”를 요구해 왔다. 또, 해고와 비정규직 사용에 관한 규제 완화, 임금과 생산성의 괴리를 해결하기 위한 연공급제의 폐기와 성과급 도입을 줄기차게 촉구해 왔다.

그래서 경총은 박근혜 정부가 경제혁신 3개년계획을 발표했을 때 즉시 성명을 내어, “노동시장의 낡은 제도와 관행 개선, 그리고 임금-생산성 간의 연계 강화를 … 강조한 부분에 대해 공감”한다며 환영했다. 또,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대해서도 “시대적 사명”이라며, 강력한 추진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사실, 지배계급과 우파는 이런 것들을 강력하게 추진하라고 일치 단결해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전례 없이 심각해지는 경제 위기와 저성장 시대에 대처하려면 노동운동을 제압해 신자유주의 조처를 밀어불여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에 떠넘길 강한 정부가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한국판 마거릿 대처가 되기를 바란 것이다. 대처 사망 2주년을 맞아 우파 신문과 경제지들은 다시금 대처가 추진했던 민영화, 규제완화, 노조 공격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강력히 주문하고 있다. 전 재정경제부 장관 강봉균은 “[노동개혁을 위해]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근혜는 올해 신년기자회견에서 공공과 노동 개혁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지배계급의 기대에 부응하며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을 다짐한 것이다.

저들이 이토록 필사적인 이유는 국제 경쟁에서 뒤지지 않고 세계 시장에서 입지를 지키려면 착취율을 높이는 것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종종 유럽 국가들의 구조개혁을 사례로 드는데, 유럽 지배자들의 고민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즉, 미국과 동아시아 신흥국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에서 벗어나 경쟁력을 높이고자, 전후에 노동자들에게 제공했던 복지 등의 양보 조처들을 빼앗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국 지배자들은 특히 독일 모델에 주목하는데 그것이 노동자들의 임금을 공격해 경기 침체를 딛고 수출 경제를 재건한 케이스이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의 ‘하르츠 개혁’은 정규직에 유리한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우며, 해고 제한을 완화하고 기간제와 파견 근로 규제도 완화했다. 그 결과 ‘미니잡’과 파견 일자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이 무려 22퍼센트로 늘어났다.

한국도 대표적인 수출 경제인데, 지금 세계경제 위기와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한국 경제는 2000년 이후 대중국 수출의 급속한 증가 덕을 봤는데,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로 자본재 및 중간재 수입 수요가 하락하고 한·중 간 기술 격차도 줄어들어 수출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중국 내수시장이나 동남아 시장 공략의 필요성이 제기될 정도의 난관 속에서 한국 지배자들은 독일 같은 “임금 덤핑” 효과를 원할 것이다. 경총은 최근 노동시장 구조개악과 법제도 개악을 촉구하며 “우리 기업들이 … 가파르게 증가하는 인건비 부담을 안고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고 강변했다.

위선적인 정규직 과보호 책임론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화 같은 신자유주의적 처방들을 밀어붙이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1997년 IMF를 불러들인 경제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본격 추진된 지 20년 가까이 되면서 그에 대한 반감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근혜는 한편으로는 사기극으로 끝날 립서비스(입에 발린 말),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을 서로 이간질시키기에 의존한다.

주로 노동대중의 후진층을 겨냥하는 박근혜의 립서비스는 이미 사기극으로 드러난 게 많다. 대표적인 것은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늘지오(일자리를 늘리고 지키고 질을 올리는)” 등의 대선 공약이다. 박근혜는 집권 몇 달 만에 이런 공약들을 사실상 내던졌다. 박근혜 대선공약의 30퍼센트가 일자리와 노동분야 공약이었고, 그래서 박근혜 취임 초기에 일각에서는 그가 하층 노동자들에게는 시혜를 베풀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이 수많은 일자리·노동공약 가운데 이행된 것은 60세 정년연장 정도인데, 그나마 임금피크제를 통한 임금 삭감이 한 짝으로 추진되고 있다.

립서비스의 최신 버전은 아마도 경제부총리 최경환의 최저임금 인상 언급일 것이다. 최경환은 지난 3월 초 “디플레 우려에 큰 걱정을 하고 있다”며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이 일어나지 않고는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을 빠르게 올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최경환의 “디플레 우려” 발언은 곧 금리 인하로 이어졌다. 정부가 금리 인하를 압박한 진정한 이유는 환율 인상으로 기업들의 수익을 높여 주려는 것이었다. “수출 경쟁력”을 고려해서 말이다. 그러나 임금 인상에 관해서는 어떤 조치도 뒤따르지 않았다. 최경환은 지난해 7월 경제부총리 취임 직후에도 임금 인상 등을 통해 기업 사내유보금이 가계로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실효성 있는 정책이 추진된 것은 없었다.

최저임금 인상이 예년 수준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오히려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통해 임금 공격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노사정위에서 다루는 3대 핵심 과제는 죄다 임금을 삭감하는 조처들이다(통상임금→범위 협소화; 노동시간→탄력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정년연장→임금피크제 도입).

한편, 노동자들을 서로 이간질시키기는 노동시장 구조 개악 추진 방안의 기본 프레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비정규직의 열악한 조건, 청년과 여성의 낮은 고용률, 사회적 복지의 미비를 정규직 조직 노동자들의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 상대적 고용안정, 그리고 기업 복지의 탓으로 돌린다.

이것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의 부제를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노동시장 활력 제고 방안”이라고 붙인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노동시장의 활력을 높여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것인데, 노동시장 활력 제고 방안이란 바로 정규직의 “과보호”를 푸는 것이다.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문제라며, 마치 정규직이 좋은 일자리를 견고하게 독점하고 있어서 비정규직이 노동시장에서 상향 이동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1997년 금융 공황 이후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치르게 하려고 정리해고제와 파견제를 도입한 것은 바로 정부와 기업주들이었다. 지배자들은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싸고 ‘유연’한 노동자를 원했던 것이다. 그 결과 비정규직이 대거 양산됐고 워킹 푸어(노동빈곤층)가 늘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기업들은 인건비를 대폭 줄였다. [그림]에서 보듯이, 노동소득분배율(총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7년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요컨대 노동의 몫이 줄고 자본의 몫이 늘면서 자본과 노동 사이의 격차가 더 벌어진 것이 신자유주의 처방이 내려진 지난 20여 년 동안의 근본적 변화이고 근본적 문제다.

물론 노동자들 내부의 격차가 증대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정규직 노동자들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독과점화에 따른 기업 규모와 지불 능력의 격차, 서비스업 비중 증대 같은 산업 구조 변화, 제조업과 서비스업 사이의 생산성 격차 등이 더 근본적인 문제다.

1997년 위기 이후 자본의 집적과 집중은 훨씬 더 심화돼, 경제에 대한 재벌의 지배력이 더 강화됐다. 2000년대 들어 재벌 계열사들의 순이익이 전체 사기업 순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 됐다. 최근 통계를 보면,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2014년 당기순이익은 30대 그룹 전체의 무려 81퍼센트를 차지했다. 이는 2010년 47.5퍼센트에 비해서도 크게 높아진 수치다.

그런데 이런 재벌 기업들은 인건비를 줄이고자 하도급, 외주화를 광범하게 사용함으로써 열악한 조건의 비정규직을 양산해 왔다. 삼성·현대차·SK·LG 등 10대 재벌그룹 계열사의 노동자는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다. 특히 간접고용 비율이 매우 높은데, 현대중공업이 60.9퍼센트, 포스코가 46.6퍼센트, 삼성이 32.6퍼센트, GS가 29.7퍼센트, 현대차가 28.2퍼센트이다(2014년). 대기업들이 이처럼 비정규직을 남용하는 바람에 질 좋은 일자리가 더욱 부족해진다. 물론 한국 경제가 수출·대기업·제조업 중심이어서 경제 성장의 고용 효과가 매우 낮은 것(고용 없는 성장)이 좀 더 근본적인 요인이긴 하지만 말이다.

일각에서는 재벌 대기업들이 외주화와 하도급 노동자 착취를 통해 얻은 과실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나눠먹는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하도 상식처럼 퍼져 있어 심지어 노동운동 내에도 이를 수용하는 경향이 적잖이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노동소득분배율은 기업 규모가 클수록 낮다. 대기업일수록 소득분배에 인색한 것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20대 기업의 노동소득분배율은 49.9퍼센트로, 한국 전체 평균 노동소득분배율 59.7퍼센트에 비해 10퍼센트나 낮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나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재벌들의 시혜 덕분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조직해 조건 개선을 위해 싸워 왔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존재 여부가 임금과 노동조건 격차에 주된 영향을 미쳤다. 정이환 교수에 따르면, 1996년 6퍼센트 내외이던 노조 부문 ‘임금 프리미엄’은 2002년 15퍼센트로 증가했다. 요컨대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건을 더 잘 방어해 온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기업주들은 노동조합을 피해 그 바깥에서 더 싸고 자르기 쉬운 노동자들을 고용해 왔던 것이다. 그래 놓고는 이제 이 노동자들의 열악한 조건을 정규직 “과보호”를 깨는 무기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유(有)노조·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이 좋은 일자리를 독점하고 청년·여성·비정규직의 기회를 빼앗는 것으로 묘사하면서, 그들의 좋은 일자리를 빼앗아 쪼깨서 나누고, 임금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노동조합 역시 같은 이유로 공격한다.

그러나 정규직 ‘과보호’를 깨겠다는 정부 대책은 단지 유노조·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전체 노동자의 7.4퍼센트에 불과하다)만을 겨냥하는 게 결코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 개악 추진은 전체 노동자들의 처지를 악화시킬 것이다.

가령 정부는 정규직 ‘과보호’를 없애겠다며 근로기준법의 해고제한 법리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제한을 손보려 하는데, 그렇게 되면 무노조·중소영세기업·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노동법이 포함하고 있는 보호 장치를 잃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사용자와의 세력관계에서 더 취약한 이들이야말로 노동조건 악화에 속수무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노골적인 비정규직 제한 완화 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런 조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1차 노동시장”(좋은 일자리)으로 들어갈 기회를 주기는커녕 비정규직에서 벗어나기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박근혜 정부가 벤치마킹 하려는 독일의 하르츠 개혁도 정규직 과보호 완화를 내세웠지만, 그 결과 파견 노동자와 노동빈곤층이 대폭 늘었고 노동자들 전반의 생활수준 저하와 노동조합 약화로 이어졌다.

물론 정부와 사용자들이 유노조·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그저 말로만 으름장을 놓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각에서는 잘 조직된 노동자들은 어차피 개별 노조의 단체협약을 통해 방어할 수 있으므로 정규직에 대한 공격이 실질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공공부문 1차 ‘정상화’ 공격으로 지난해 이미 많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악화됐다. 지금도 정부는 업무 저성과자 퇴출제, 성과연봉제, 임금피크제 등의 도입을 공공부문에서부터 밀어붙이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유노조·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은 임금체계 개편이나 해고요건 완화 공격에서 결코 비켜나 있지 않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대기업들도 임금체계 개편을 시도하고 있고, 저성과자 해고는 KT에서 보듯이 대기업들이 추진하려는 상시 구조조정에 이용될 것이다.

요컨대 현재 박근혜 정부의 노동자 공격은 특정 부문의 노동자들에게만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을 향하고 있다.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노동계급이 가져가는 몫을 줄이는 게 저들의 목적이다.

계급의 단결을 이룰 수 있을까?

이처럼 박근혜 정부가 노동자들을 이간질하는 것은 노동자 단결을 가로막고 각개격파하기 위한 것이다. 다양한 부문들에 파상공세를 가하면서도 그것이 연대 구축으로 이어지지 못하도록 말이다. 특히, 박근혜는 잘 조직돼 있는 대기업 정규직(대공장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위축시키고 고립시켜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전체 노동자 투쟁 전선을 약화시키고자 한다.

이에 대한 우리 측의 가장 효과적인 전술은 박근혜의 공세에 노동자 단결로 맞서는 것이다. 그러려면, 박근혜의 노동시장 구조 개악 공격의 칼날이 특정 부문에 한정되지 않고 노동자 계급 전체를 향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설사 공격의 양상이 시간 차를 두고 진행되거나, 약한 고리로 여겨지는 부문을 먼저 공격해 그것을 지렛대로 공세를 확산하는 방식을 취할지라도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 정규직 “과보호”, “특혜”, “철밥통” 이데올로기 공격에 얼마나 잘 맞서면서 전체 노동자들의 단결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정부와 기업주들은 국민연금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공무원연금, 기업 복지가 괜찮은 공공부문이나 대기업의 단체협약, 청년 신입사원보다 꽤 높은 고령 노동자들의 임금을 문제 삼으며 공격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은 상대적으로 조건이 좋고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방어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이 노동자들이 비정규·미조직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과 조직화를 위해서 연대에 나서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한 부문이 공격당하는 것을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이 방관한다면, 심지어 한 부문의 특혜가 사라져야 내 형편이 나아진다고 여긴다면, 노동자들은 각개격파 당하기 십상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단결이 중요한 이유다.

상대적으로 조건이 좋고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공무원연금 개악은 국민연금 개악의 지렛대가 되고, 공공부문 ‘방만’ 비난은 민간기업의 노동조건 악화 압력으로 작용하며, 임금피크제 도입 같은 임금체계 개편은 전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자신의 조건을 방어하고 자신감을 얻을 때 더 열악한 조건의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연대 투쟁에 나설 수 있다. 그리고 잘 조직된 노동자들의 기세 좋은 투쟁은 미조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과 조직화에 나설 수 있도록 고무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노동운동 내부를 보면 정부의 정규직 “과보호”, “특혜”, “철밥통” 공격에 매우 취약하다. 말로는 반대한다지만, 진지하게 그들의 조건을 방어하기를 수줍어 하고 그것이 전체 노동자 계급의 조건을 방어하는 일이라고도 믿지 않는 경향이 상당히 퍼져 있다. 여기에는 조직 노동자, 특히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상당한 불신이 깔려 있고, 이는 노동계급의 단결에 대한 회의로도 연결된다. 즉, 대부분이 대기업 정규직인 조직 노동자들은 높은 소득과 생활수준을 누리며 예전의 전투성을 잃고 보수화했고, 신자유주의에 포섭돼 그 가치를 내면화하고 있고, 눈앞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만 싸우고, 심지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비정규직을 희생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온건한 진보 사회학자들, ‘프레카리아트’론을 수용하는 단체와 개인들, ‘다중’을 내세우는 자율주의자들, 대공장과 공공부문의 정규직을 더는 프롤레타리아로 볼 수 없다는 초좌파 등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 있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이에 다양한 정도로 타협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 정부와 기업주들의 대기업 정규직 조직노동자 공격을 진지하게 방어하고 연대하기 어렵다. 살 만한 노동자들에게 연대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거나, 심지어 정규직 노동조건 방어는 결국 하청 노동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노동계급 내부 격차를 더 벌릴 뿐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최근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 개악에 관해 그것이 정규직 노동자들을 겨냥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런 주장도 정규직 노동조건 방어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어차피 정규직 조직 노동자들은 단체협약으로 노동조건을 지킬 수 있으므로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의 정규직 때리기는 이데올로기 공격일 뿐이고, 실제로는 중소기업 미조직 노동자들이 실질적 타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공부문과 민간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진정한 노동조건 공격을 당하고 있다. 가령 지금 공무원들이 연금 공격을 받고 있고, 철도 노동자들이 근속승진제 폐지 공격을 받고 있고, 현대기아차 노동자들이 연공급제 폐기와 성과급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 공격을 받고 있고,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이 단체협약 공격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정규직 공격이 실질적이지 않다는 주장은 사실상 사용자와 정부의 정규직 노동조건 공격을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실제로, 좌파 활동가들 가운데 상당수가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를 노동운동의 중심 과제로 삼기를 꺼린다. 심지어 통상임금을 확대하거나 기업 복지를 지키려는 요구를 터부시하는 경우마저 있다.

그러다 보면 노동조건 개악을 일부 수용하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타협에 맞서며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한다. 그동안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정부와 기업이 추진하는 노동조건 개악을 저지하려 하기보다 협상을 통해 손실을 일부 벌충하는 방식을 흔히 취해 왔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손실을 일부 벌충하며 제도 개악을 수용하거나, 신규자들의 노동조건 개악을 내주는 식의 타협이야말로 부문의 협소한 이해관계를 앞세우다 고립을 자초하는 길이다.

이와 달리, 좌파 활동가는 정규직 노동조건을 일관되게 방어하면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계급 전체의 조건을 좌우하는 제도 방어와 개선에 앞장서도록 설득해야 한다. 그렇게 조직 노동자들이 효과적인 투쟁을 전개한다면, 중소기업 미조직 노동자들도 노동조합 투쟁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조직화의 전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박근혜 정부의 정규직-비정규직 이간질에 맞서 우리 쪽도 노동계급 내부의 격차 해소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소위 ‘프레임 전쟁’에서 밀린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노동계급 내부 격차의 해소는 필요하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절대적 몫을 늘리는 것을 지향하면서 노동계급 내부 격차 줄이기를 모색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양보론’으로 귀결되기 쉽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해 일자리 창출이나 비정규직 조건 개선에 사용하자든지, 임금 삭감을 감내하고 일자리를 쪼개자든지 하는 식으로 노동계급 내부의 나눔만 생각하는 것은 자본과 노동의 격차 증대를 감추려는 정부와 기업주들의 프레임에 속아 넘어가는 것일 뿐이다.

1997년 이후 국민총생산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크게 떨어졌다. 부자 증세를 통한 복지 강화, 공공서비스 확대를 통한 일자리 만들기, 사내유보금 사용을 통한 정규직화, 정부 책임 강화를 통한 공적 연금 강화,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 만들기 등처럼 노동계급의 절대적 몫을 늘리는 것이 노동운동의 요구가 돼야 한다.

돈이 없는 게 문제는 아니다. 한 통계를 보면, 10대 대기업 사내유보금 522조 원의 0.8퍼센트만 사용해도 이 기업들에 고용된 비정규직 43만 명을 정규직화하고 연봉도 대폭 올릴 수 있다. 또, 노동시간을 OECD 평균 수준으로만 줄여도 고용률을 76퍼센트로 올릴 수 있다.

누구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말하는 듯하지만, 이것을 진지하고 일관되게 추구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신자유주의로 노동계급이 변해(내부 격차 증대) 하나의 계급으로서 단결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많이 퍼져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노동계급 내 상이한 부문 간 단결은 자동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투사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진지하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할 과제다.

민주노총 한상균 집행부의 등장과 좌파 활동가들의 과제

2015년 노동자 투쟁의 중요한 변수 하나는 지난해 연말 선거에서 16년 만에 좌파 지도부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한상균 후보조는 62.7퍼센트 투표율을 기록한 1차 투표에서 국민파-중앙파-전국회의 연합선본 후보를 제치고 1등을 차지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결선에서도 승리를 거머줬다.

민주노총 한상균 집행부의 당선은 박근혜 정부의 파상공세를 막아야 한다는 좀 더 투쟁적인 조합원들의 바람이 우세한 결과였다. 조합원들은 박근혜의 전면적 공세에 맞서야 한다고 생각하며, 잘 싸울 지도부를 원했던 것이다. 철도파업과 민주노총 본부 침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전 민주노총 집행부의 대응이 실망스러웠다는 점과 함께, 2015년 박근혜와 한판 붙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맞물린 것이다. 77일간의 공장 점거라는 한상균 후보의 전투적 전력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한상균 집행부는 당선 직후 4월 24일 총파업을 선언했다. 그리고 5월과 6월에 파상적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고, 하반기 총파업도 예고했다. 박근혜의 집요하고 전면적 공세 양상을 보면 하루 총파업으로 부족하다는 것이 명백하다. 좌파 활동가들은 4월 24일 총파업을 성공적으로 성사시켜, 이후 투쟁을 더욱 전진시키는 도약대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노동운동 안에는 4·24 총파업을 비롯한 2015년 투쟁에 대해 회의적인 활동가들이 상당히 많다. 지금 민주노총의 조직력과 조합원들의 상태가 총파업을 할 정도가 되느냐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상대적 우파로부터뿐 아니라 초좌파 진영으로부터도 나온다. 결국 ‘뻥파업’ 되고 현장에 실망감만 줄 게 뻔하다며 환상을 조장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재 조합원들의 자신감이 높아 스스로 투쟁에 활발히 나서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두어 해 동안의 노동자 투쟁을 돌아보면, 철도파업과 전교조 규약시정 거부 투쟁 등 잠재력을 보여 줬다. 또, 스스로 투쟁에 나설 자신이 없는 조합원들일지라도 지도부가 소명하는 총파업에는 나설 수 있다. 혼자 싸우다 고립될까 움츠렸던 조합원들도 다 함께 파업에 나선다면 자신감을 얻을 수 있고, 이렇게 투쟁 근육을 키우다 보면 스스로 더욱 전진할 힘도 얻을 수 있다.

4·24 총파업의 주도력은 민주노총 신임 지도부로부터 나왔다. 현장 조합원들의 강력한 압력에 떠밀려 준비된 것은 아니다. 1905년 러시아나 1968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총파업처럼 아래로부터의 주도력과 에너지가 충만한 혁명적 파업이 아니라 위로부터 조직된 관료적 파업이다. 그러나 이것이 4·24 총파업에 회의적이거나 무심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어떤 활동가들은 아래로부터 자발성이 충분하지도 않은데도 위로부터 총파업을 선언하는 게 오히려 계급투쟁과 노동자들의 자신감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전체 노동계급의 처지를 악화시킬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조합원들을 총동원하는 투쟁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노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지름길일 것이다.

진지한 활동가라면 총파업이 성사될 것인가 아닐 것인가 하는 식의 관조적인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좌파 지도부가 등장해 총파업을 선언한 현 상황을 노동자 운동의 일보 전진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 민주노총 집행부의 파업 호소에 응해 기층 조합원들이 실제로 파업에 나서도록, 그리고 스스로 투쟁에 나섬으로써 자신감을 높이고 주도력을 발휘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시리자가 집권한 그리스는 2008년 위기 이후 지난 5년 동안 32번의 총파업을 경험했다. 처음에 좌파들은 투쟁으로 긴축을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었다. 사회당이 집권하고 있으니 저항운동이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이 컸다. 그러나 2009년에 벌어진 첫 총파업에서 반자본주의 좌파가 결정적 구실을 하면서 기층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도록 애썼다. 이것이 압력이 돼 공산당도 자기 영향력이 있는 노조를 움직이는 등 투쟁이 지속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처음에 관료적 파업으로 시작된 총파업은 회를 거듭하면서 점점 아래로부터의 에너지가 충만해졌다. 혁명적 좌파가 노동조합 지도부의 총파업 선언을 활용해 현장 조합원들의 주도력이 발휘되도록 애쓴 것이 이런 발전에 일조했다. 이런 그리스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

노동조합 좌파 지도부가 등장해 투쟁을 호소하는 상황은 노동자들이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조성한다. 좌파 활동가들은 이런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협력해 투쟁을 성사시키도록 애써야 하는데, 그 목적은 현장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높이는 것이다. 좌파 지도자들이 잘 싸워 줄 것이라고 믿고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 스스로 투쟁에 나섬으로써 사기를 회복하고 기층의 조직력을 강화하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

또, 좌파 활동가들은 민주노총 좌파 지도부의 등장을 이용해 산하 산별연맹과 대형 노조들에서도 투쟁을 조직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애써야 한다. 2015년 투쟁 계획을 둘러싼 노동조합 지도자들 사이의 분열은 관료적 통제의 약화를 낳을 수 있다. 좌파 활동가들은 이를 활용해 산별연맹과 대형 노조들에서 지도부에 압력을 가하고, 현장 조합원들이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민주노총 신임 지도부의 2015년 투쟁 계획이 공문구가 되지 않으려면, 산별연맹과 대형 노조들이 싸우도록 만드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산별연맹과 대형 노조들은 민주노총 투쟁 계획을 사실상 무력화시킨 경우가 적잖았다. 이런 때, 투쟁 계획 실행에 비협조적인 산하 노조 지도부를 민주노총 지도부가 상층 차원의 내부 논의를 통해 설득하려 하는 것은 거의 가망이 없다.

두 가지 과제가 맞물려야 한다. 하나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산하 노조 지도부의 투쟁 회피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조합원들에게 투쟁을 직접 호소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민주노총 지도부가 공무원노조 집행부의 공무원연금 실무기구 참여 같은 뜨거운 문제들을 회피하지 말고 공개적인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산하 산별연맹이나 노조의 활동가들이 기층에서 실질적인 투쟁 조직에 나서는 것이다. 투쟁 조직에 뜨뜻미지근한 자신의 노조 집행부에게 압력을 가하고, 현장 조합원들이 행동에 나설 자신감을 갖도록 설득하고 조직해야 한다.

이 둘은 서로 맞물리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현장 활동가들은 민주노총 지도부의 투쟁 호소를 기층의 투쟁 조직에 활용할 수 있고, 기층에서의 이런 활동은 노조 지도자들 사이에서 좌파 지도자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

물론 현재 기층의 활력이 충분하지 않고, 현장 활동가층이 두텁지 못한데다 사기도 좋지 않아 어려움이 적잖다. 그러나 그동안 노동조합 내 좌파 활동가들이 노동조합 집행부 배출을 주된 목표로 삼아 활동하면서 현장에 공백이 빚어진 것이 이런 문제를 낳은 한 요인이기도 하는 점을 돌아봐야 한다.

근본적으로 기층의 활력이 중요하다. 기층의 활력은 좌파 지도자들에게도 압력이 될 수 있다. 좌파 지도부의 등장은 투쟁에 좋은 출발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열쇠는 현장 조합원들에게 있다. 좌파 지도자는 매우 훌륭한 투사일지라도 노동조합 관료 전체의 규범에 순응하라는 엄청난 압력을 받는다는 점을 좌파 활동가들은 알아야 한다. 좌파 활동가들의 독립적인 네트워크가 있어야 노동조합 지도자들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독자적인 투쟁도 해 나갈 수 있다. 좌파 활동가들은 근시안적이거나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현장 노동자들의 활동과 조직을 발전시키는 것에 주안점을 두면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좌파 활동가들은 투쟁의 방향과 과제를 제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박근혜의 이간질에 맞서 노동계급을 단결시키고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점은 앞에서 충분히 다뤘다. 또, 투쟁이 탄력을 잃지 않도록 정치적 대응을 잘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가령 공무원노조 집행부가 공무원연금 개악에 합의하지 못하도록 실무기구 탈퇴와 파업 참가를 압박하는 것은 전체 노동자 투쟁 전선에 매우 중요하다.

이런 문제는 비단 노동 쟁점과만 관계 있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이나 정권의 부패 규탄 같은 정치적 민주주의 문제, 한반도 불안정 같은 제국주의 문제 등도 중요하다. 지금은 정치적 불안정이 큰 시기이므로 좌파 활동가들은 정치적 쟁점들을 이용해 산업 현장에서 투쟁 가능성을 높이도록 애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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