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건설 노동자가 '수급 조절' 연장을 요구하는 게 올바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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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덤프, 레미콘) 건설 노동자들은 상황이 좋지 않다.
경기가 좋지 않기 때문에 차량 가동률이 48%이고, 건설 경기는 더욱 침체하면서 일거리가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이에 동의한다. 재개발 등으로 벌어들이는 이윤 대부분이 건설 노동자들에게 분배되지 않고, 회사들의 배만 불리는 현실도 노동자들의 고통 증가에 한몫했다.
건설노조는 이런 고통을 줄이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수급 조절 연장을 요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억압받는 자들과 연대하는 방식일 것 같진 않다.
나는 사범대생들이 비사범대생의 교직 이수를 반대했던 사례가 떠올랐다.
사범대생의 임용시험 경쟁률은 수십 대 일이라서 대다수 사범대생이 교사가 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런 조건에 처한 사범대생의 현실이 안타깝고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나은 조건의 노동자인 교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배척하는 방식의 요구를 내걸어선 안 된다.
사범대생들이 지지해야 하는 요구는 비사범대생들과 단결할 수 있는 요구인 교사확충, 교육재정 확대가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건설노동자들이 '수급 조절'을 연장하라고 요구한다면 실업자들과의 단결을 방해할 것이다. 그 요구 대신 '정부가 일자리를, 그 일자리는 양질로'라는 요구를 해야 한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건설업을 활성화하려고 하긴 했다. 4대강 사업 말이다.
당연히 노동자들은 건설업자들의 배만 불리는 그런 건설 사업이 아니라,
빈곤층과 노동자를 위한 무상주택, 기후 온난화 해결에 도움되는 단열건물로의 전환 등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이상엽 동지의 편지에 대한 답변
건설기계 노동자들의 ‘수급 조절’ 요구는 정당하다
박설
아마도 적잖은 독자들이 이상엽 동지와 같은 의문을 가졌을 법하다. 나도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해당 노동자들과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다. 특정 투쟁과 요구에 대한 평가는 구체적인 현실에 기초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건설기계 노동자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수급 조절’ 요구가 노동자들의 단결을 해치지는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상엽 동지가 지적한 것처럼, 덤프·레미콘 등 건설기계 차량 가동률은 50퍼센트에도 못 미친다. 만약 덤프 차량 수급 조절이 5만 대를 기준으로 한다면, 그 중 2만5천 대 이상은 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직종으로 유입되는 사람보다 이 일을 관두거나 쉬는 사람이 더 많다.
그래서 ‘수급 조절’ 제도 속에서도 이 일을 원하는 사람들은 손쉽게 차량을 구입할 수 있다. 5만 대 안에 등록된 차량 번호를 구입하면 되니까 말이다.
물론, 이러려면 중고 차량을 구입해야 한다. 신규 차량은 ‘수급 제도’의 제한에 걸린다.
그러나 이것이 노동자들의 유입을 차단하는 효과를 낸다고 볼 수는 없다. 중고 차량 번호를 구입하는 데는 8백만 원 가량이 들지만, 신규 차량을 구입하는 데는 적어도 1억 원 이상이 필요하다. 가뜩이나 일감이 없어 이 일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려운 판에, 이 만큼의 비용을 투자할 사람은 없다. 수지타산이 안 맞기 때문이다.
박재순 동지가 지적했듯이,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수급 조절’을 통해 막고 싶은 자들은 바로 “수십 대의 신규 차량을 구입해 현장에 들어와 노동조건을 후퇴시키고 일을 독점”하려는 일부 업자들이다. 이들은 특정 기업과 독점적으로 계약을 맺어 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며 수익금을 착복하려 한다.
더구나 정부는 대형 장비 업체들과 국내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 FTA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며 ‘수급 조절’ 해제를 요구했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조건을 지키려고 ‘수급 조절’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물론, 이상엽 동지가 지적했듯이, 이것은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할 근본책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정부가 책임지고 양질의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보장해야 하고, 그 속에서 상시적인 고용 불안, 체불임금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건설기계 노동자들의 노동 기본권도 보장해야 한다.
이 노동자들이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그토록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들이 법적으로는 개인 사업주라는 점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개별적으로 차량을 구입해야 하고, 또 개별적으로 건설업체와 단기 계약을 맺어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 결성의 권리, 단체 교섭과 단체 행동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덤프 등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건설노조의 중추를 이루며 인상적인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 속에서 이들은 법적 지위의 한계를 뛰어넘어 노동자 단결을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