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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붕괴 20년 ─ 사회주의의 몰락이었나?

20년 전 1991년은 사회주의 대국으로 알려진 소련이 붕괴한 해다. 8월 19~21일 소련 공산당 보수파가 일으킨 쿠데타가 민중의 저항으로 실패하면서 소련 공산당은 불법화됐고, 그해 말 소련(소비에트 연방)은 해체됐다.

서방은 소련 붕괴가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대결에서 자본주의가 최종 승리한 사건으로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역사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자본주의 이후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역사의 종언”이라고 썼다.

소련 붕괴는 좌파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의 신뢰가 실추됐다. 남한에서도 소련 체제를 대안으로 삼던 혁명적 청년·학생 들이 대거 혁명가의 길을 포기했다.

그러나 20년 전 붕괴한 그 체제가 과연 사회주의였는가? 만약 사회주의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로 역행한 것이라면, 모종의 혁명 과정에서 나타날 법한 것과 비슷한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그러나 소련·동유럽 블록 붕괴로 그런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기존 국가를 경영하던 자들이 이제는 사유화된 옛 국영기업들을 경영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과연 붕괴 이전 체제는 과연 사회주의였던 것일까?

국유화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는 시장 경쟁이 사라지고 생산수단이 국유화된 체제라고 생각한다. 서방 지배계급도, 소련 관료들 자신도 그렇게 주장해 왔다.

그러나 국유화가 과연 사회주의의 표지가 될 수 있는가? 그런 기준대로라면, 국가 통제가 매우 강력했던 남한의 박정희 정권은 사회주의에 가장 근접한 정권 중 하나로 봐야 할 것이다.

나치 독일은 어떠한가? 소련과 같은 시기에, 나치도 헤르만 괴링 공장 등 주요 공장들을 국가 통제 하에 뒀다. 심지어 나치의 정식 당명은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이었다. 당명에 “사회주의”와 “노동자”가 들어가 있다고 나치 독일을 사회주의라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사회주의에 대한 가장 현실적 전망을 내놓은 마르크스는 사회주의가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이라고 썼다. 마르크스는 파리코뮌을 경험하면서, 노동계급이 투쟁 과정에서 자본가 계급의 국가를 분쇄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민주적 기관들로 대체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스탈린 체제 하에서 노동계급은 자기 해방 과정에 있었는가? 그 체제 하에서 국가가 경제를 통제했지만, 그 국가를 노동계급이 통제하지 못했다. 노동계급은 자신들의 조건을 방어할 권리(파업권 등)도 보장받지 못했다. 국가는 노동계급에 의해서가 아니라, 관료들에 의해 노동계급에 맞서서 운영됐다.

스탈린 체제는 사회주의이기는커녕 오히려 자본주의와 닮아 있었다.

초기 자본주의는 경쟁이 주로 사적 기업들의 시장 경쟁이라는 형태를 띠었지만, 19세기 후반부터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고도화하면서 기업과 국가의 연관이 깊어지고, 경쟁의 형태도 사기업들의 시장 경쟁과 국가간 군사적 경쟁이 결합되는 양상을 띠었다.

스탈린이 1930년대 단행한 급속한 공업화와 강력한 국가 통제는 바로 서방 자본주의 열강과의 군사적 경쟁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정도는 달랐지만, 당대의 서방 자본주의 열강(독일, 일본, 미국 등)도 국가 통제를 강화했다. 즉, 스탈린 체제는 자본주의의 경쟁 동학에 따라 움직였던 것이고, 국유화는 세계적 차원의 경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이 점을 간파한 마르크스주의자 토니 클리프는 이미 1947년에 이 체제를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라고 명명했다.

변질

이제, 다음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될 법하다. 이 체제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의 결과물이었는가? 혁명은 본성적으로 타락하게 마련이지 않은가?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을 묘사한 미국인 기자 존 리드의 책 《세계를 뒤흔든 열흘》을 보면, 러시아 혁명이 평범한 노동자 민중의 자기 의식적 행위였다는 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대중 자신의 행동으로 착취와 민족, 인종, 성, 종교에 따른 차별을 철폐했다. 이런 자기 해방 과정은 스탈린 체제와 조금도 닮지 않았다.

그러나 혁명 러시아는 1923년에 독일에서 혁명이 패배하면서 고립됐고, 이어서 변질되기 시작됐다. 중요한 것은 변질이 필연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기는 세계 자본주의 차원의 위기였으므로, 러시아 혁명은 중부 유럽으로 혁명을 확산시켰다. 그러나 중부 유럽의 나라들에서는 일찌감치 노동계급 운동에 뿌리를 내린 러시아 볼셰비키 같은 혁명 정당이 없었고, 따라서 그곳의 혁명가들은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없었다.

사회주의는 한 나라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한 나라에서 완수될 수 없다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공리(마르크스부터 레닌과 트로츠키까지 누구나 인정하고 있었던)에 따르면, 국제 혁명의 전망이 일시적으로 차단된 것은 분명히 노동자 국가에 심각한 위기로 작용할 것이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트로츠키와 좌익반대파의 전망처럼, 다음번 국제 혁명 확산 시기를 준비하면서, 노동계급의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길이 있었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 관료들에 기반한 스탈린 분파는 이 길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면서 ‘일국사회주의’ 노선으로 소련 체제를 이끌었다.

마침내 1928~29년 스탈린의 반혁명이 노동자 국가를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로 전환시켰다. 스탈린은 농업집산화와 급속한 중공업 육성을 밀어붙였고, 노동계급의 민주적 권리를 파괴함으로써 노동자 국가의 잔재를 모조리 없앴다.

그 후 60년간 지속된 체제는 서방 자본주의 열강과 본질적으로 같은 동력에 의해 운영됐다.

초기에는 엄청난 착취와 국가 통제 덕에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축적이 심화하면서 점점 위기에 처하게 됐다.

다만 서방 열강은 1960년대 말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 국가자본주의에서 다국적 자본주의로 전환한 반면, 소련은 정치와 경제의 융합 정도가 훨씬 극단적이어서 그런 전환을 쉽게 할 수 없었다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1991년 소련 붕괴는 사회주의의 몰락을 뜻하는 사건이 아니었다. 영국의 작고한 마르크스주의자 크리스 하먼이 말했듯이, 그것은 한 종류의 자본주의가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로 전환된 “게 걸음”이었을 뿐이다.

물론 국가자본주의 축적 속에서 형성된 노동계급이 관료 지배계급의 억압과 독재에 맞서 일어섰다는 점에서는 의미있는 ‘역사의 복수’였지만 말이다.

1930년대 이래로 세계 자본주의가 가장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는 지금, 우리는 독일의 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한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하는 물음에 직면해 있다.

20년 전 몰락한 체제의 성격을 제대로 해명하는 것은 오늘날 수많은 대중이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적 대안을 모색하도록 하는 데에 중요한 길잡이 구실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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