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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혁명의 현실성》:
혁명의 파도 속에서 건져올린 전략·전술의 보고

근래 아랍 혁명 물결은 세계 도처의 사회주의자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줬다. 그러한 운동들은 대중이 폭정에 맞서 결연히 싸울 수 있음을 보여 줬고, 노동계급이 그 과정에서 결정적 구실을 수행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유럽 긴축 반대 투쟁에서도 조직 노동자들은 중추적 구실을 하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는 지금 이러한 저항들의 성패는 너무나 중요하다.

따라서 《혁명의 현실성》이 비록 꽤 오래 전(1987년)에 첫 출판된 책이긴 하지만 그 의미는 오늘날 훨씬 더 크고 현실적이다. 말 그대로 ‘혁명의 현실성’이 비할 바 없이 커졌고 따라서 좌파가 여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68년 5월과 6월 초 프랑스를 뒤흔든 파업 운동, 1972~73년 칠레 아옌데 정부 당시의 노동자 투쟁, 1974~75년 포르투갈 혁명, 1979년 이란 혁명, 1980~81년 폴란드에서 벌어진 연대노조 운동을 다룬다.

책의 각 장에서 필자들은 각 혁명과 투쟁의 배경과 전개 과정, 지배자들의 대응, 노동자 운동과 좌파들의 전략·전술 등을 상세히 살펴볼 뿐 아니라 평가한다. 독자들은 혁명의 ‘질풍노도’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하고 생생하며 흔히 예기치 못한 상황들에 자신을 대입해 보며 ‘전략과 전술’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게 될 것이다. 책 전체에 걸쳐 실제 혁명들에서 이끌어낸 쓰라린 교훈과 유용한 통찰들이 가득하다.

짧은 서평에서 그 내용들을 모두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책의 필자들이 강조한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살펴보겠다.

첫째, 노동계급이 사회 변혁 운동의 주체로서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혁명들이 늘 노동자 운동의 주도 하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포르투갈에서는 급진적 하급 장교들의 쿠데타가 방아쇠 구실을 했고, 이란에서는 빈민촌 주민들의 시위가, 프랑스에서는 학생 반란이 비슷한 구실을 했다. 그러나 운동이 고비에 부딪혔을 때 투쟁을 전진시킨 것은 늘 노동계급이었다. 이란 혁명에서도 이슬람 성직자 세력의 구실에만 초점을 맞추는 통속적 설명과 달리 이란 석유 노동자들의 파업이 없었다면 샤는 결코 물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남한의 일부 좌파가 민중전선 전략, 즉 부르주아 정당인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과의 계급 동맹(선거연합, 연립정부 등)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각별히 중요하다.

민중전선 전략의 옹호자들은 흔히 칠레 민중연합 정부의 경험을 우호적으로 인용하는데, 그것은 성공은커녕 실패의 본보기일 뿐이다.

아옌데가 이끄는 민중연합 정부는 명백히 노동자 운동의 고양 덕분에 집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거에서 승리한 뒤 민중연합은 지배계급과의 타협에 얽매여 되레 노동자 운동에 ‘자제’를 종용했다. 심지어 반동의 조짐이 역력한 상황에서조차 아옌데가 지배자들이 아닌 노동계급을 통제해 달라며 스스로 군 장성들을 불러들였다는 사실은 민중전선 전략의 자해(自害)적 본질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준다(바로 이 장군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궁을 폭격했고 수많은 노동자들을 학살했다).

개혁이냐 혁명이냐

둘째, 혁명이 일정 수준을 넘어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혁명적 분출이 그에 부합하는 조직상의 발전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운동은 “초점을 잃은 채 급격히 수그러들 수 있다.”

68운동 때 프랑스에서 행진하는 노동자들 노동계급이 혁명을 전진시킬 열쇠를 쥐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학생 반란에 뒤이어 역사상 최대 규모의 총파업이 벌어졌지만 현장 조합원들의 독립적인 조직은 발전하지 못했고 따라서 치솟았던 운동이 비교적 쉽사리 가라앉고 말았다.

반대로, 다른 곳에서 노동자 운동은 새로운 대중 조직과 민주적 기구들을 발전시켰고, 덕분에 더욱 멀리 나아갈 수 있었다. 칠레의 ‘코르돈’과 폴란드의 연대노조는 가장 두드러진 사례였는데, 이런 기구들은 여러 작업장과 운동들을 연결하는 한편 경제적 요구와 정치적 요구가 수렴되고 결합되는 효과적 고리가 됐다. 그것은 노동자 권력의 맹아였다.

새로운 대중 기구들이 사회 여러 부문에 들어서 통제력을 행사하는 수준까지 발전하게 되면, 그것이 기존의 자본가 국가 권력과 대립하는 이른바 ‘이원 권력’ 상황이 조성된다. 이러한 상황은 그 본질상 불안정하고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제압하고 파괴해야만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중차대한 상황에서 셋째 문제, 즉 혁명이냐 개혁이냐 하는 문제가 첨예하게 제기된다. ‘이원 권력’ 상황에서 기존 권력을 분쇄하고 새로운 권력과 질서의 잠재력을 완전히 해방할 필요를 개혁주의가 한사코 가로막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매번 부질없는 환상(‘공존’, ‘균형’)을 설파하며 후퇴(‘타협’, ‘자제’)를 종용했고 그럼으로써 운동을 패배로 내몰았다.

위에 언급한 모든 쟁점들은 결국 마지막이자 아마도 가장 중요한 실천적 문제, 즉 혁명조직의 필요성과 직접 연결된다. 왜냐하면 앞서 얘기한 쟁점들을 둘러싼 모든 논쟁에서 혁명조직의 존재와 주장이야말로 핵심적인 변수였기 때문이다.

‘계급 동맹인가 노동계급 독립성인가’, ‘독립적 현장 노동자 조직과 네트워크가 왜 중요하고 필요한가’, ‘군대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며, 사병들은 어떻게 전취할 수 있는가’, ‘사회의 혁명적 전복인가 개혁인가’ 등의 모든 문제에서 일관되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경험 있는 혁명가 조직의 존재 여부는 더없이 중요했다. 종종 이런 문제들에 대한 올바른 대답이 자생적·부분적으로 제기됐지만 결코 체계적으로 일반화되거나 확산되는 일은 없었다. 그런 일은 오직 일관된 혁명 조직이 혁명적 소용돌이 이전에 어느 정도 준비돼 있을 때에만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지금 당장 혁명 조직 건설에 나서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 위기 분석과 비판을 위한 이론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그것의 혁명적 전복을 위한 정치 이론이다. 이 책은 이를 보여 주는 훌륭한 본보기인 셈이다. 다가오는 혁명적 기회를 부여잡고 싶은 활동가들에게 필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