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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패권은 붕괴할 것인가?

8월 2일 만료되는 미국의 부채상한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자마자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춤으로써 전 세계 금융시장이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미국은 70여 년 만에 최고등급인 트리플A에서 강등돼 벨기에나 뉴질랜드와 같은 등급이자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보다 한 등급 높은 수준이 됐다.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은 국제 금융시장에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많은 국가들, 특히 재정위기를 겪거나 그 위험에 노출돼 있는 남유럽 국가들의 신용등급이 하락할 수 있다.

미국 패권의 한 축인 ‘달러-월스트리트 체제’의 약화는 세계적 격변의 서막일 수 있다.

또 미국 신용등급 하락의 직접적인 결과로 미국 국채 발행 비용이 증가하고 미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나 금융기관들의 평가액이 줄어들 수 있다. 예를 들면 미국 재무부가 7월 18일 발표한 ‘월별 국제 자본통계’를 보면, 중국은 지난 5월 말 현재 1조 1천5백98억 달러(약 1천2백53조 원)의 미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번 신용등급 하락으로 중국은 2천5백억 원에서 3천억 원 정도의 평가액 손실을 볼 수 있다.

특히 2008년 이래로 위기에서 겨우 벗어난 금융기구들이 미 국채의 평가액 하락으로 자기자본을 더 확충해야 스트레스 테스트(금융안전성 평가)를 통과할 수 있다. 이처럼 미국 신용등급 하락은 여러 측면에서 장기적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장기적 효과

미국 신용등급 하락은 제2차세계대전 이래로 형성된 질서가 무너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상징적 사건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전 세계 산업생산의 중심지가 되었고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금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1952년에 선진국의 생산의 거의 60퍼센트가 미국에서 생산되고 있었고 1950년 인구 1명당 총생산수준에 대한 연구를 보면, 미국을 100으로 잡을 때 영국은 55, 독일은 37, 그리고 이탈리아는 25였다. 1950년에 미국은 독일보다 일곱 배 많은 공산품을 생산했으며 일본의 20배 이상을 생산했다.

이런 경제적 우위를 기초로 1944년 미국 뉴햄프셔의 브레튼우즈에서 전후 경제질서의 기초가 확립됐는데, 그것이 브레튼우즈 체제였다. 이 체제 하에서 달러화만이 금과 태환할 수 있도록 하고(금 1온스당 35달러), 파운드나 프랑 또는 마르크화 등은 달러화와 교환하도록 했다.

이런 미국 경제가 1966년부터 일본과 독일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것은 일본과 독일 경제가 미국과 소련의 군비경쟁 틈새에서 급성장했기 때문이었다. 미국 경제는 1960년대 후반의 과잉생산과 이로 말미암은 이윤율 저하, 베트남 전쟁의 영향 등으로 쇠퇴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1970년에 미국은 전후 처음으로 국제수지 적자를 기록했는데, 그 이듬해인 1971년에는 적자폭이 전년도의 3배나 됐다. 그리고 1971년에 미국의 금 보유량은 공식적인 채무, 즉 외국의 달러 보유량의 4분의 1을 밑돌았다. 이런 사정 때문에 닉슨은 1971년에 금태환제를 포기했고, 결국 1973년에 변동환율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사실상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달러화는 실질적으로 국제 기축통화 구실을 계속 수행했다. 미국은 군사적 우위,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수출, IMF에 대한 지배 등을 활용해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피터 고완은 이 체제를 달러-월스트리트체제(DWSR)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달러-월스트리트 체제’ 속에서도 미국은 세계시장에서의 점유율이 하락하면서 경제력도 쇠퇴했다.

미국 경제의 하락으로 말미암아 달러화 가치도 하락했는데, 2002년부터 2011년 사이에 유로화에 견줘 40퍼센트나 평가절하됐다.

헤게모니 쇠퇴

달러-월스트리트 체제의 또 다른 특징은 일본과 일부 동아시아 국가들이 경제발전을 이룩하면서 거둔 국제수지 흑자가 미국으로 환류하면서 미국의 부채에 기반을 둔 소비 확대를 지탱해 줬다는 점이다. 이런 연계고리는 2000년대 들어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흑자로 벌어들인 달러화를 미 국채 매입에 사용했고, 미국은 쌍둥이 적자인데 소비를 확대해 세계경제의 거품 성장에 기여했다. 그러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로 거품이 터지면서, 미국 경제가 내부적으로는 주택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믿음에 바탕을 둔 자산효과와 외부적으로는 빚에 의지한 소비 확대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중국 정부가 오바마에게 사회복지를 축소해서 빚을 줄이도록 촉구한 것은 현재로선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2009년 초반 중국 인민은행장 저우샤오촨은 달러화가 아닌 IMF의 특별인출권(SDR)을 기축통화로 사용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세계 기축통화 구실을 달러가 아닌 다른 통화가 대체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매우 낮다. 현재 전 세계 무역거래량의 43퍼센트가 달러화로 이루어지고 있고, 전 세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 중 61퍼센트가 달러화로 비축되고 있다. 이에 비해 유로화는 외환보유고 중 차지하는 비중이 30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의 위안화도 전 세계 무역거래량에서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달러화를 대체할 만한 세계적 통화는 당분간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유럽에서는 오늘 그리스의 급한 불을 끄고 내일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위기를 진정시켜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유로화의 운명은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도 제 코가 석자인 상황이다. 중국 정부는 경제 위기에 대응해 과도한 적자 재정을 사용했고, 이것이 거품 경제와 인플레를 불러왔다. 중국의 올해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6.5퍼센트로 과거 37개월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중국의 과도한 경기부양책이 ‘위험한 도박’이라고 지적한다.

위험한 도박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한 이후 오히려 미 국채 가격이 상승한 것은 유럽이나 중국이 미국보다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시장의 판단 때문이다.

달러화의 가치가 하락하면 미국 수출업자들에게 유리하지만 미국 소비시장에 수출하는 해외의 많은 수출업자들에게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각국 정부들은 외환시장에 개입해 자국 통화의 가치를 낮추려 노력할 것이다. 이미 일본 정부가 이런 노력의 첫걸음을 내딛고 있다.

1929년 대공황에 직면한 선진국들도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를 통해 수출을 늘리려 했지만 모든 국가들이 이런 노력을 기울이면서 세계무역은 대공황 전에 견줘 3분의 1로 추락했다.

2008년부터 시작된 세계경제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그에 기초를 두고 있던 ‘상식들’이 폐기된다. 1914년 제1차세계대전에서 1945년 종전까지의 기간에 두 번의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과 같은 격변이 벌어졌다. 미국 신용등급의 강등은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가 가져올 격변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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