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고장난 자본주의 분석과 전망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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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장을 휘저은 주가 변동은 월스트리트의 리먼브러더스 은행이 파산한 2008년 가을을 떠올리게 한다. 3년 전과 다름 없이 현재에도 혼란은 체제에 깊숙이 자리한 문제를 드러낸다. 유로존의 부채 위기 심화와 신용평가사 S&P가 미국 정부의 신용등급을 하락시킨 것이 이번 패닉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2008년에 국가들이 취한 조처로 위기가 해결되기는커녕 봉합됐을 뿐이라는 사실이 이번 패닉을 통해 드러났다. 당시 정부들은 완전한 파국을 모면하려고 시장 개입, 은행 구제금융, 경기 부양, 전례 없는 부채 수준 낮추기에 나섰다. 그러나 체제가 남긴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았고 다시 한 번 혼란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제적인 부양책이 유로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부양책으로 경기가 회복됐다면 국가들의 거대한 부채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부 부채가 주요 문제로 등장했다는 사실은 경기부양책이 실패했다는 징조다.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처럼 허약한 유로존 국가들은 가장 심각한 문제에 부딪혔다.
경제가 추락하기 전까지 이 국가들은 훨씬 강력한 유로존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의 이자율로 차입할 수 있었고 신용과 자산 거품을 키웠다.
경제가 곤경에 빠졌지만 이 국가들은 자국의 통화가치를 절하시켜 수출을 촉진하거나 이자율을 낮추는 전통적 처방을 사용할 수 없었다. 유로화에 매여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국가들은 갚을 엄두도 낼 수 없는 빚더미 위에 올랐다. 문제가 커지자 채권 시장에서는 이들 국가가 발행한 국채의 이자율이 치솟았고 채무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구제금융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이 국가들은 대규모 긴축정책(공공부문 임금 삭감, 사유화, 국가 지출 축소)을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긴축 조처는 새로운 문제를 양산하기만 했다.
곧, 그리스 정부가 사실상 지불 불능 상태에 있고 돈을 갚을 능력도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유럽중앙은행, 다른 금융기구, 유럽 지배자들(특히 프랑스의 사르코지와 독일의 메르켈)은 그리스를 ‘구제’하는 합의에 도달했다.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는 이유는?
구제안이 마련된 것은 그리스 민중을 염려해서가 아니었다. 유럽 지배자들은, 그리스의 채무불이행으로 그리스에 대출해 준 유로존의 핵심 은행들과 이미 그리스 채권들을 사들였던 유럽중앙은행(ECB)이 받을 타격을 방지하고자 했다.
또한 이들은 다른 유럽 국가들로 패닉이 확산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
다른 유럽 회원국들의 보증 아래서 새로운 구제금융을 제공하겠다는 구제안에는 그리스의 채무불이행을 사실상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민간의 채권 투자자들은 어느 정도 손실을 보게 된다. 향후 위기의 확산을 막기 위한 개입 조처로 유럽재정안정기구(EFS)의 기금을 이용해 유럽중앙은행이 보유한 채권들을 인수할 계획이다.
그러나 위기의 전염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이들 국가의 차입 비용이 폭증했다. 스페인의 경제 규모는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를 합한 것보다 갑절이나 크다. 이탈리아 경제는 스페인 경제보다 훨씬 더 크다.
이탈리아 채권 시장은 그 규모가 세계에서 셋째로 크며 미국과 일본 다음이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실패하도록 내버려 두기에는 너무 큰” 나라다. 이 나라들이 지불불능에 빠지면 최악의 위기가 촉발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구제하기에도 너무 크다.” 기존의 구제금융 기금으로는 이 국가들의 부채를 감당할 수 없다.
여하튼, 유럽 지배자들에게 그리스 구제안은 다른 회원국에서 다시 반복돼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최근 유럽중앙은행은 패닉을 진정시키기 위해 이탈리아 채권을 긴급하게 매입했다.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은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다. 달러는 세계 기축통화다.
미국의 부채한도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면서 시장에는 이미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재정지출 삭감을 전제로 부채한도를 높인다는 결정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합의됐다.
공화당 강경파들은 부채를 줄이기 위해 지출을 삭감하는 안을 고집했고 민주당 행정부는 약간의 세금인상을 포함한 지출 삭감안을 고집했다.
지배계급의 분열 속에서 아무런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는 민간 기구인 S&P는 미국 정부의 신용 등급을 낮췄다.
신용등급은 대부자가 빌려준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여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미국 신용 등급 하락의 효과는 분명치 않다(결코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차입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은 크다.
위기가 전염되고 있는가?
자본주의 체제 전체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의 차입(민간 부문과 정부)은 최근 몇십 년간 세계경제의 주요 동력이었다.
제2의 성장 엔진으로 불리는 중국의 호황조차 미국 노동자들의 소비재 구입에 달려 있다.
이러한 수출로 얻어진 달러는 미국 정부가 발행한 재무부 채권을 중국이 매입하면서 다시 미국으로 환류했다. 재무부 채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중국과 다른 채권국들은 곤란에 직면한다. 중국은 이미 1조 달러를 넘는 재무부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더 넓게 보면, 재무부 채권은 기존의 은행 시스템과 ‘그림자 금융’ 양 편에서 유력한 담보 수단이다. 그림자 금융은 은행과는 달리 규제와 보증을 받지 않는 금융 체제의 일부다.
그 규모가 너무 커진 나머지 전통적 은행 시스템은 왜소해 보일 정도가 됐다. 파생 상품 시장, 헤지펀드 등이 그림자 금융에 속한다.
2008년 위기의 확산에는 그림자 금융을 통한 전염이 상당한 구실을 했다. 복잡한 증권들이 대부되고 매매됐다. 상환 능력이 없는 미국 노동자들의 차입에 기초를 두고 말이다.
그러나 이 자산들이 ‘악성’ 자산으로 판명되자 리먼브러더스 같은 회사들이 주저앉았다.
지금까지 든든해 보였던 미국 재무부 채권이 시장에서 의심을 받게 되면 비슷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에 지배자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무엇이 잘못됐는가?
2008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 개입의 규모는 역사상 최고였다. 잠시 동안은 개입이 효과를 발휘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제 문제가 다시 전면에 등장하면서 자본주의 국가들은 위기를 지연시킬 수단이 바닥나 최악의 경우에 아무런 수단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2008년 국가 개입의 전제에는 체제가 단기적인 금융 위기를 겪고 있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부의 부담은 제법 빨리 해소될 듯이 보였다. 정부의 추가적인 부채는 일단 경제 성장이 재개되면 해소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문제를 달리 생각했다. 우리는 위기의 뿌리에는 194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자본주의 체제의 장기적인 이윤율 하락이 있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에는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 체제의 부분적인 구조조정, 금융 부문의 비대한 발전으로 이윤율의 추가적인 하락이 상쇄됐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체제가 완전히 회복될 수 없었다.
근본적인 문제가 여전히 표면 아래에 있었다.
부채와 금융 팽창은 자본주의 체제의 성장을 이끄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지만 새로운 문제들을 낳았다.
2007년에 시작돼 2008년에 가속화된 경제 위기는 단순히 금융 위기가 아니었다. 금융 위기로 시작된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노후할 대로 노후한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였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궁극적으로 체제 자체를 변혁하는 수밖에 없다.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1930년대 대공황기에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2차세계대전을 위한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 재조직화와 전쟁에 따른 대대적인 파괴가 필요했다.
현재 자본주의가 처한 위기가 1930년대와 비교해 어느 만큼 깊은지는 아무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많은 주류 논평가들이 보기에도 회복은 요원하다.
유럽 경제 대부분은 정체돼 있거나 위축돼 있다.
미국에서는 생산과 소비가 둔화되고 9퍼센트에 달한 실업률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심지어 중국마저 곤란한 상황으로 성장을 유지하려면 높은 수준의 투자가 잇따라야 한다.
그런데 이제는 과열 징후마저 보인다. 부채 수준이 증가하고 부동산 거품이 일어나고 있다.
자본주의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려면 엄청난 혼란과 격변이 필요해 보인다.
2008년 가을과 비교하자면 이 새로운 국면은 한 가지 측면에서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다.
이제 계급투쟁의 물결이 밀어닥치고, 지배자들은 분열하거나 방향을 잃고, 많은 노동자들은 저항의 필요성을 깨닫고 있다.
좌파는 이러한 저항이 자라나는 데 중심적 구실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