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 체제와 주택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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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 체제와 주택 문제
한상원
1976년 발표된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는 집을 철거당하고 절망에 내몰린 도시 빈민들의 삶이 묘사돼 있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도시 빈민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언론은 상도2동 철거민들의 ‘폭력성’을 문제 삼는 내용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그 동안 철거용역원들이 가스총, 식칼, 고공 크레인, 물대포 등을 동원해 철거민들을 공격한 사실은 한 줄도 보도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언론은 철거민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도 전혀 말하지 않는다.
강제 철거에 내몰린 주민들의 요구는 매우 간단하다. 임대 주택을 지어 철거민들이 이주할 수 있게 하고, 그 기간 중에는 임시 수용시설에서 지낼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법으로도 보장된 내용이다. 도시재개발법 27조는 “[재개발] 시행자는…주택이 철거되는 자를 당해 재개발구역 또는 그 구역 외의 적당한 시설에 임시 사용하거나…필요한 때에는 국가·공공단체 또는 개인의 시설이나 토지를 임시 사용할 수 있다.…이 경우 국·공유지의 사용은 무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재개발이 시작되면 정부도, 건설업체도 철거민들의 주거권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상도2동 주민들은 주로 파출부나 청소부, 일용직 노동자 등 가난한 사람들이다. 자신의 주거권을 지키기 위한 철거민들의 투쟁은 정당하다.
빈곤과 불평등
산업화 초기에 도시로 온 농민들은 저임금 노동자층을 이루었다. 이들은 마포, 청계천, 성북동 등지에 판자촌을 짓고 생활했다.
판자촌과 산동네가 넘쳐나 도시가 더 팽창할 수 없게 되자 정부는 재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정부는 서울 중심부를 정리하면서 중구·충무로·명동 등의 주민들을 사당·봉천·신림 등의 지역으로 이주시켰고, 그 곳에는 새로운 대단위 무허가 정착지가 생겨났다. 이처럼, 정부의 초기 재개발 정책은 대책 없이 도시 빈민들을 다른 지역으로 집단 이주시키는 것이었다.
이후 재개발은 투기꾼들과 건설업체의 이윤을 위해 진행되었다. 상도동 지역의 경우, 재개발 공사가 시작된 것은 지하철 7호선이 개통되면서 많은 개발 이익이 보장된 후였다. 철거민들은 가진 자들의 이윤을 위해 길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심각한 주택 불균형 역시 계급 양극화를 낳는 이윤 체제의 문제점이다.
1996년과 2000년의 가구 소비 실태를 조사한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를 보면 하위 1퍼센트의 소득이 28.9퍼센트 하락한 반면, 상위 1퍼센트의 소득은 무려 77.5퍼센트 증가했다.
빈곤은 심화하는 반면, 주택 값은 폭등했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소형 평형 의무제’를 폐지하고, 분양가 자율화·분양가 전매 허용을 실시했다. 이것은 투기꾼들과 건설자본을 위한 조치였다. 그 이후 해마다 전세값 상승률은 평균 70퍼센트에 달했고, 아파트 분양가는 5배가 뛰었다.
이 때문에 주택 보급율은 1백퍼센트가 넘는데도 국민의 절반이 무주택자다.
11월 24일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세대별 주택소유 현황’을 보면, 2002년 6월 현재 전국 1천6백73만 세대 중 절반이 넘는 8백41만 세대가 자기 집을 보유하지 못한 무주택
자다.
반면에, 서울 강남의 경우 거주자들은 1세대 당 평균 3.67채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 3천2백17세대는 11∼20채씩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대안
부자들과 빈민들의 주거 환경도 하늘과 땅 차이다. 가난한 세입자들은 낮에도 캄캄한 지하 단칸방에서 바퀴벌레를 청테이프로 잡으며 살아 가거나, 옥탑방에서 한겨울 매서운 바람을 막으려 문틈에 스티로폼을 끼워넣고, 비가 많이 오면 천장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대저택에서 골프 연습을 하는 부자들은 이런 사실을 이해조차 못할 것이다.
주택난 해결을 위해 노무현 정부는 향후 10년 동안 1백50만 채의 공공임대주택을 짓겠다고 밝혔다.
이는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5년 동안에만 주민등록상 세대 수가 1백41만 가구 증가했다.
더구나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지도 나와 있지 않다.
재원이 모자랄 경우 정부가 민간 자본에 공공주택 건설이나 운영을 위탁할 수 있다. 이 경우 공공임대주택은 투기의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대처와 레이건은 정부 지출을 삭감하기 위해 사기업에 의한 공영주택 사유화를 실시했다.
부자들과 부동산 투기꾼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이윤이 아닌 인간의 필요에 따라 주택이 배분되는 사회에서만 주택 불평등은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