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재산’ 사건:
어처구니없는 마녀사냥에 맞서 진보가 단결해야
〈노동자 연대〉 구독
‘왕재산’ 사건은 검찰총장 한상대의 첫 기획 작품이다.
하지만 “12년 만에 적발한 반국가단체 사건”치곤 너무나 어설프다. 검찰이 밝힌 ‘왕재산’ 조직원은 5명인데, 황당하게도 고작 5명이 “군부대와 주요 시설을 폭파”하고 “무장봉기를 조직”하고 “국가를 전복”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팔레스타인을 보면 1명만 궐기하면 폭파할 수 있지 않나” 하며 우기고 있다.
‘반국가단체’의 요건인 ‘지휘 통솔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근거도 없다. 검찰이 인천지역당의 주요 책임자라고 거론한 두 사람은 4년 동안 전화통화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국정원은 황당하게도 “지난 4년간 왜 전화통화를 한 번 안 했냐?”고 타박했다.
이들이 북한 당국에 넘겼다는 정보들도 ‘국가 기밀’과는 거리가 멀다. 미군 야전교범과 군 시설 주변 위성사진 등은 인터넷이나 서점에서 누구나 구할 수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내부 동향과 남한 정세’ 등을 북한에 보고했다고 하지만, 이것 역시 언론만 검색해도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거나 개인의 생각을 정리한 것일 뿐이다.
검찰은 이처럼 부실한 엉터리 근거로 뒷받침된 마녀사냥을 통해 반정부 진보 활동가들과 단체가 ‘간첩’이거나 북한의 꼭두각시라는 메시지를 주려 한다. 이번에도 검찰은 국가보안법 폐지 집회,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 한미FTA 반대 투쟁, 심지어 진보대통합조차 모두 북한의 지령에 의한 것인 양 묘사했다.
북한이 “[진보]통합이 파탄될 경우 진보신당을 고사시키라”는 지령을 내렸다거나 ‘왕재산’ 사건 관련자들이 민주노총 등의 내부 정보를 북한에 보고했다는 말을 검찰이 흘리는 것은 진보진영의 분열을 부추기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발표에 연연해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을 방어하는 것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남한 지배자들과 미국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들, 진보대통합 등이 모두 북한에 놀아난 것이라는 식의 주장은 진보 진영을 모욕하는 것이며 터무니없는 왜곡이다.
심지어 남한의 진보 활동가들 중 일부가 북한에 친화적이거나 몰래 북한 관계자와 접촉했다 해도 그들은 대개 ‘간첩’이 아니라 남한 진보운동의 일부로서 남한의 민중과 함께 이 사회의 모순에 맞서 싸워 온 동지들이다.
무엇보다 북한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든, 이것은 진정한 진보 대안을 위해 토론하고 논쟁할 문제이지, 처벌하고 탄압할 문제가 아니다. 〈레프트21〉도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고 북한 3대 세습 등에 대해서 날카롭게 비판해 왔지만, 북한을 지지하는 견해 때문에 누군가가 국가 탄압을 받는 것에는 단호히 맞서서 방어할 것이다.
게다가 남북한 지배자들과 기업가들은 수시로 왕래하고 선물을 주고 받으며 협상을 해도 전혀 처벌받지 않는데, 남한의 민중운동 활동가들이 북한을 방문하거나 북한과 교류하면 처벌받는 것도 엄연한 이중잣대다.
북한에 우호적인 단체와 개인에 대한 마녀사냥 앞에 진보가 단결해 맞서지 않는다면 ‘일심회’ 사건 당시처럼 진보운동은 분열·위축될 수 있다. 진보신당 인천시당은 ‘왕재산’ 사건 구속자들을 방어하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처럼 정견을 뛰어 넘어 함께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혹시라도 이 사건을 이용해 ‘종북주의’라며 동지를 공격한다면 그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대응해서 괜히 사건을 키워줄 필요 없다’는 식의 수세적 태도보다는 탄압을 고발하고 정당성을 적극 주장하면서 방어를 확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