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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진보운동의 녹색 신호등 박원순, 그리고 좌파의 과제

지난 26일,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시민들은 박원순을 선택했다. 바야흐로 서울에 변화의 봄바람이 분 것이다. 감히 판단하건대, 박원순의 당선이 가지는 의미는 우리나라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을만큼 크다. 그것은 부패한 보수층에 대한 민심의 결정적 심판이며, 계급의식의 중대한 전환점임과 동시에 진보를 향한, 보다 열린 사회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이 표출된 것이다.

그 동안 안보 논리, 성장 논리, 자본의 논리를 통해 수많은 진보를 탄압하고, ‘상식적인 사고’를 하는 이들의 눈에 먹물을 뿌리며 ‘진실’을 알리려는 이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면서 진보의 ‘ㅈ’자도 꺼낼 수 없도록 만들어 온 이 땅에서 이제는 정말로 변화의 희망이 싹튼 것이다. 과장된 것 같지만 박원순의 당선은 ‘진정한’ 진보를 향한 발걸음의 떡잎을 틔운 것과 같다.

그런데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긴 보수층은 ‘검증은 이제부터다!’라며 박원순을 흔들기 위해 이빨을 세우고 있다. 비단 박원순의 자질 검증 뿐만 아니라, 박원순이 이제까지 해 온 발언들을 두고 ‘안보관이 의심스럽다’며 몰아세우기도 한다. 심지어 〈뉴데일리〉 등 시대착오적 반동세력은 ‘종친초(종북-친북-촛불군중)세력의 오너, 서울을 점령하다’ 등의 기사로, 철저한 흑백논리와 반공-친미주의로 점철된 색깔 공세를 퍼붓기도 한다. 그들은 ‘서울이 빨갱이에게 점령되었다’느니, ‘20대와 30대는 전부 빨갱이에게 선동되었다’라느니, ‘서울시청에 인공기가 걸릴 것’이라느니, ‘광화문 광장이 반미 촛불 시위로 뒤덮힐 것’이라느니 하는 ‘위험천만’한 선동적 언사를 마구 토해내고 있다. 재밌는 사실은, 저러한 말을 하는 자들은 스스로를 ‘투철한 안보관을 지닌 애국자’이며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한다는 것이다.

시민의식이 한 단계 진보하고, 현 정권에 대한 극도의 실망감 등 여러 요소가 겹쳐 박원순의 당선을 만들어냈지만, 여전히 저러한 광적인 매카시즘과 이분법적 논리, 반동적 언사가 용인되고 또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나라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말해 준다.

시민의식의 수준이 여전히 낮고, 계급의식 역시 여전히 보편적이지 않은 현실을 고려해볼 때, 박원순의 당선만으로 우리나라의 진보운동이 더 진전될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일 수 있다. ‘좌파=빨갱이=종북=반미=촛불’이라는 이상스런, 비관용적이고 비상식적인 공식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인식이 아직도 강고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인식의 카르텔을 완전히 깨버리지 않는 한 더 이상의 진보는 어려울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앞으로 좌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극우주의, 전쟁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되찾기 위해 온갖 공세를 펼치는 이 때, 좌파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내가 제시하는 주장은 다음과 같다.

① 최대한 주어진 상황 안에서 합리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여기서 ‘합리’란 이해득실 차원에서의 ‘합리’가 아니라 좌우익을 아우르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일컫는다. 진보 진영 내에서도 문제점은 항시 존재한다. 그것을 꿰뚫어보고, 동시에 우익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로 예리한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② ‘투쟁’과 같은 행동위주적 방식보다도 대화와 토론 등 ‘소통’을 보다 더 중시함으로서 시민사회 내부로 깊숙이 진입해야 한다. 투쟁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다만 ‘파업=시민 불편’이라는 왜곡된 사고방식이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상 과도한 투쟁은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 지금은 시민들의 광범한 연대를 이끌어 낼 때다. 우리는 ‘투쟁’만을 고집하다가 좌절한 사례를 이미 숱하게 알고 있다. 따라서 먼저 대화와 토론을 요구하는 솔선수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투쟁적 행동들은 광범한 시민들의 호응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그 위력이 배가가 되므로 시민들의 참여가 저조한 이 때, 우리는 시민들과 소통함으로서 보다 넓은 범위의 연대와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③똘레랑스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익에 대한 비판을 통해 그들을 견제할 수는 있지만 ‘배척’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우익 진영 역시 타당한 주장을 할 수 있으므로 그러한 주장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하겠다. 다만, 극우주의와 같은 반동적이고 비관용적, 배타적 태도에 대해서는 우리도 불관용을 취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홍세화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앵똘레랑스에는 앵똘레랑스로’ 단호하게 대처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④우리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만큼 깊은 지적 성찰이 필요하다. 자본과 시장의 힘은 현실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그 폭력성을 민중 앞에 당당히 드러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으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 대안 있어?’ 종종 수많은 좌파들은 ‘대안’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 엄청난 분열증은 느끼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안이 있음을 알고 있다. 다만 그것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았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본의 논리에 맞서 그들에게 ‘감히’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만큼 지적으로 깊이 탐구해야만 한다. 또한 그것을 대중화할 수 있다면 시너지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내용은 이미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일 수 있다. 아니,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제시하는 이유는, ‘당연한’ 것들에 대한 재확인 차원에서다. ‘진보’를 위해 혹여 과격한 투쟁만을 하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그저 입으로만 ‘진보’를 말하지는 않았는지? 이번 박원순의 당선은 ‘진보’에 대해 시민들이 귀를 열겠다는 녹색 신호이다. 이것을 전환점으로 삼아 진보 운동의 새싹을 무럭무럭 키울 수 있어야 하겠다. 우익과의 대결구도가 아니라, 대화와 토론 그리고 상호 비판을 통해 스스로 발전하는 좌파가 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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