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대학입시 거부 선언, 겁 없는 이들의 경쾌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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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고3이다. 썩어 빠진 입시제도와 제도권 교육을 맹렬히 비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논리에 아주 충실하게 순응하고 있는 ‘한심한’ 고3이다. 세상에 이런 모순덩어리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런 지극히 ‘소시민적인’ 태도가 비단 나 혼자만의 전유물은 아닐 거라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나는 오늘도 ‘EBS 수능특강 파이널 실전모의고사 외국어 영역’을 붙들고 빨간 동그라미 개수를 세며 하루를 보낸다.
나를 포함해서, 다수의 사람들이 입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나처럼 ‘현실’이라는 굴레에 얽매여서 ‘세상이 다 그렇지’라고 대답하며 쉽게 순응한다. 어쩌면 나를 포함해서 많은 고3들은 현재의 체제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당당히 굴레를 꿰차고 나와 ‘아프다!’라고 소리쳐 줄 사람을 절실히 필요로 했을지 모른다.
지난 13일, 서울대 자퇴를 선언한 유윤종 씨는 대학을 거부하며 현실 학벌 사회의 차가운 냉소적 시선을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프다!’
그는 세상에 질문을 던졌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학벌 중심 사회가, 경쟁 일변도의 줄세우기가 과연 타당한지? 그는 자퇴 선언에 이어 대학 입시를 거부하는 청소년들과 함께 ‘대학 입시 거부 선언’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단지 ‘대학 가지 않겠습니다’라는 한마디를 위해 서울대를 자퇴한 그의 모습에 자꾸 전태일이 겹쳐진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대학 가지 않겠습니다’라는 한마디를 하려면 흡사 몸을 불사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한 유윤종 씨가 말하는 ‘대학 입시 거부 선언’에 대해서 주변의 냉소가 만만치 않다. 맞다. 유윤종 씨 스스로 인정했다. 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아직 정치적 주체로 표면에 떠오르지도 못하는 청소년들이, 대학을 거부한다고 선언을 하면 과연 세상이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줄까? 청소년들의 ‘미성숙한’ 판단으로 단정 짓고 톱 뉴스 목록에서 제외시키지 않겠는가?
절절한 외침
그러나 이 선언이 효과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청소년들이 대학입시를 거부하겠다고 의사를 표시한 것은 제도권 교육에, 학벌 사회에, 기업화 된 대학에, 무한 경쟁 레이스에, 불분명한 미래를 준비할 것을 강요받는 현실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대학입시거부는 ‘낙오자들의 반란’이 아니라 죽어버린 사회에서, 죽으라 강요하는 체제 속에서 살고자 몸부림 치는 이들의 절절한 외침이다.
대학입시거부선언이 대한민국의 교육제도 및 사람들의 의식까지 단번에 바꿀 순 없다. 이제 시작이다. 모두가 대학을 향해 ‘Yes!’라고 할 때, 이들은 외로운 용기로 ‘No!’라고 대답한다. 나는 먼지보다 작은 용기만을 가진 고3이지만, 이들의 움직임에 대해서 가슴 깊이 경의를 표한다. 제도 속에서 제도를 거부하는 ‘겁 없는’ 이들의 행진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