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바람 속에 진보정치의 나아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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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재보선에서 진보정당은 위기와 가능성을 모두 보여 줬다.
우선 진보정당과 후보들은 무대 위에서 별로 시선을 끌지 못했다.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 경선에서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가 얻은 표는 2퍼센트 남짓이었다. 야권연대를 위해 ‘어차피 사퇴할 후보’라며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심지어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조차 최규엽 후보 선거운동이 아니라 당선이 유력한 박원순 후보와 선을 대고 약속을 받아내기 바빴다.
진보의 독자성을 훼손해서라도 의회에 진출하는 게 실질적 개혁을 이룰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해 온 게 민주노동당 지도부였으니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막상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거둔 성적을 보면 가능성을 볼 수 있다.
민주당과 단일화하지 않고 출마한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11~27퍼센트를 득표한 것이다.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노원구에서는 민주노동당이 당선했다. 이는 양천구청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 표의 70퍼센트도 받지 못하고 탈락한 민주당과 대조된다.
반MB ‘계급’투표를 한 노동계급 청년세대가 민주당을 마뜩잖게 여기고 있으며 이들 중 의미있는 수가 진보정당을 지지할 의향이 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만약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대통합이 성공했다면 이 가능성은 더 커졌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가 강령까지 후퇴시키며 친자본주의적인 국민참여당과 통합을 추진하다가 진보대통합을 망쳐 버렸다. 그 결과 반한나라·비민주당 정서의 주도권을 안철수·박원순 등에게 내주게 된 것이다.
노동자·청년들이 계급적 각성을 하며 진보를 갈망하기 시작하는데, 노동자 진보정당의 존재감은 약해지는 역설을 자초한 것이다. 진보정당 지도자들의 뼈아픈 패착이 아닐 수 없다.
한편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가 그토록 그 영향력을 높이 평가했던 유시민과 참여당은 이번 선거에서 매우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참여당이 여전히 구 집권세력인 민주당의 아류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의 분열까지 조장하면서 참여당과 통합하려 한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의 정당성은 더욱 약화됐다.
계급적 분노
그런데도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자들이 또다시 민주노동당·참여당·통합연대와 ‘3자 원샷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도부가 당대회 결정을 한 달여 만에 뒤엎어 버리겠다는 것이다. 이런 비민주적이고 몰상식한 행태는 누구도 납득시킬 수 없다.
노회찬·심상정 등 통합연대 지도자들이 이런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의 압박에 무원칙하게 타협하려는 것도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정치적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하려는 것이다.
민주당의 아류로 비치는 참여당과의 통합 시도는 반한나라·비민주당 정서를 진보정당이 흡수하는 데 장애가 될 것이고, 민주노총에서 불필요한 분열을 재연할 것이다.
이는 지지자들에게 냉소와 환멸을 일으킬 것이고, 결국 진보정당의 정치적 존재감은 더 약화될 수 있다. 그리 되면 ‘혁신과 통합’ 등 NGO 성향 인사들이 주도하는 야권통합 정당에 진보정당들이 들어오라는 압력도 커질 것이다.
참여당과의 통합을 고집하면 일관되게 이 압력을 거스르기도 힘들다. 참여당은 진보정당과 ‘소통합’ 이후에 ‘혁신과 통합’과 함께 야권대통합으로 나갈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여당과의 통합이든 야권통합이든 모두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 노선을 위태롭게 하는 퇴행적 시도다.
노동계급 청년세대는 이번 선거에서 1퍼센트 특권층이 지배하는 기성 정치 구조가 이들의 삶을 개선하지 못한다는 ‘계급적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이는 그에 걸맞는 정치적 그릇에 담겨야 한다.
그러므로 진보정당은 급진적인 가치와 정책을 중심으로 한미FTA 저지 투쟁이나 ‘99퍼센트의 저항 운동’을 건설하며 노동자와 청년들의 분노를 행동으로 조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행동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반한나라·비민주당 개혁주의의 현재 수렴점인 진보적 NGO들과도 [정체성 혼란과 분열을 야기할 무원칙한 정당 통합 대신] 개방적으로 협력하는 관계를 발전시킨다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 기회를 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