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출교에 소극적인 이유가 정말 성폭력 개념 때문이었을까?
〈노동자 연대〉 구독
김지윤
제일 처음 출교요구를 했던 사람들이 다함께가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 모두 기억할 것이다. 출교요구는 학생기층에서 먼저 나왔고, 학교 밖에서 먼저 나왔다. 주목해야 할 경우는 슬럿워크 참가자들이다. 이들은 성추행범 출교를 요구하며 집회의 막을 열었다. 그런가하면 여연을 비롯한 여성단체들도 출교요구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이들이 과연
성추행, 성폭행, 성희롱 등을 포괄하는 성폭력이라는 개념을 굳이 사용하는 이유는 행진의 주장대로
반박문에서 김지윤
성폭력이라는 개념을 넓게 받아들이는 사람들 역시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의 차이에 대해서 구분한다. 그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이 성폭력일 뿐, 성희롱과 성폭행이 결코 같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여성단체들과 여성주의자들이 그들의 출교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김지윤
오히려 많은 여성주의자들은 음주를 이유로 성범죄자를 감형해주지 말라고 요구해왔다. 여전히 술을 마셨다고 별 거 아니라고 말하는 사회에 대한 저항이다. 우리는 성폭력이라는 말이 왜 넓게 적용되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충분히 행진의 주장은 반박할 수 있다.
그들은 페미니즘의 용어로도
그렇기 때문에 이 개념 논쟁은 성폭력이라는 넓은 개념을 사용하는 진보적 대중이 정말 중요한 다른 이야기, 즉 '출교가 옳았다'는 핵심 주장은 보지 않게 할 수도 있다. 지지자들에게 괜한 반감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성폭력이라는 개념을 좁게 써야만 출교를 지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폭넓게 성폭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동에 나서지 않은 것이 결코 아니다. 출교 운동에 대해 행진이 소극적으로 행동한 지점을 비판하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