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약하는 미국의 계급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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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9월은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3년이 되는 때이자 동시에 기업들의 탐욕에 맞선 국제적 운동인 ‘월가를 점거하라’ 운동이 탄생한 달이기도 했다.
9월 중순 활동가 1백50명이 월가에 위치한 사유지 주코티 공원을 점거하면서 시작된 운동은 이 공원의 이름을 ‘자유광장’으로 바꾸고 무기한 점거를 시작했다. 이 운동의 주요 구호인 ‘우리는 99퍼센트다’는 전 세계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10월 15일 뉴욕 타임스 광장에서는 무려 10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 이 운동은 아랍 세계를 뒤흔든 혁명, 특히 30년 동안 이집트를 장기 통치한 독재자 무바라크를 몰아내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한 타흐리르 광장 점거에서 영감을 얻었다.
청년 실직자(미국 실업률은 18.4퍼센트에 이른다)와 노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점거하라’ 운동에 호응했다. 의미심장하게도 미국 최대 노총인 AFL-CIO가 10월 15일 시위를 지지했다. 많은 노동자가 이날 시위에 참가했다.
운수노조 위원장 제임스 리틀은 ‘점거하라’ 운동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행진 전의 연설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월가를 점거하라’는 진정으로 기층에 기반을 둔 운동입니다. 우리는 사회·경제적 정의를 위해 싸우는 미국인들과 함께하게 돼 자랑스럽습니다. 금융 위기를 초래한 자들이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도록 만듭시다.” ‘점거하라’ 운동은 오랫동안 기다려 온 반격의 시작일 수도 있다.
경제 위기가 발생한 뒤 3년 동안 진정한 좌파적 대안이 없는 미국의 상황은 암울해 보였다. 그러나 1930년대 대공황 당시에도 대중은 공황이 시작된 지 4년 뒤부터 반격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일단 반격이 시작됐을 때 투쟁의 강도는 대단했다.
1933~34년 미니애폴리스 지역의 팀스터 노동자들의 반란에서 샌프란시스코 총파업까지 굵직한 투쟁들이 벌어졌다. 1934년에만 노동자 1백50만 명이 파업 2천 건에 참가했다. 현재 ‘점거하라’ 운동은 아직 그 정도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점거하라’ 운동의 탄생이 놀라운 도약인 것은 사실이다.
폭발적 분노
많은 미국인은 2008년 오바마가 당선하면서 진보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사뭇 달랐다. 경제 위기가 심화하면서 실업이 크게 늘고 물가가 대폭 뛰었고, ‘오바마표 의료 개혁’은 무상의료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었다. 지난여름 오바마가 지지한 긴축안에는 앞으로 10년 동안 메디케어와 연금을 대폭 삭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익 운동인 티파티가 성장하고 지난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하면서 미국 좌파의 약점이 커다란 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2011년 공공부문 노동자와 활동가들이 3주 동안 위스콘신 주 의회 건물을 점거한 것은 미국 노동조합 운동의 엄청난 잠재력을 보여 주는 사건이었다.
노동자들은 공화당 상원의원 스콧 워커가 의료보험, 연금과 단체협약권을 공격한 것에 분노했다. 위스콘신 시위는 인디애나에서 오클랜드까지 수많은 미국인의 분위기를 대변했다. ‘점거하라’ 운동은 위스콘신 투쟁이 보여 준 폭발적 분노가 더 크게 확산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주류 언론은 ‘점거하라’ 운동이 방향이 없다고 보도하지만, 사실, 이 운동의 표적은 시종일관 명확했다. 운동 참가자들은 탐욕스런 은행가를 구제하면서 보통 사람을 희생시키는 정책을 반복적으로 비난했다. 운동 참가자들이 든 팻말과 현수막에서는 전 국민 의료보험 실시나 아프가니스탄 전쟁 종식 등 다양한 요구들을 볼 수 있었다.
‘월가를 점거하라’ 운동의 ‘노동자 진출 그룹’은 ‘점거하라’ 운동과 투쟁 중인 작업장을 연결하는 작업을 벌였다.
‘월가를 점거하라’ 운동은 세계경제 위기에 맞선 저항을 발전시키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이 운동이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살아남으려면 운동의 폭을 계속 확장하면서 최대한 많은 노동계급 집단과 함께 싸워야 한다. 노동계급은 미국에서 99퍼센트를 구성하는 사람들 가운데 과반을 차지한다. 게다가, 노동계급은 집단적 산업 행동을 통해 1퍼센트의 무릎을 꿇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