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막장 시나리오’로 달려가는 지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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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배출을 줄여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가속도가 붙고 있는 것이다.
2007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유엔 보고서에서, 과학자들은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그리면서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과학자들은 모든 경우를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는 외면한 채 화석연료에 기대어 세계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온실가스는 엄청나게 배출되는 ‘막장 시나리오’도 그 중에 있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 과학자들이 최악으로 여긴 그 시나리오보다도 더 빠르게 배출량은 증가하고 있다.(그림 참조)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경제성장은 오히려 정체했는데도 말이다.
경제성장 속도가 떨어졌는데도 온실가스가 이처럼 빠르게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재정 적자 때문에 각국 정부가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재생가능에너지에 보조금 지급을 줄였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빠르게 재생가능에너지 사업에서 발을 뺐다. 국내에서도 현대, LG, SK 등이 재생가능에너지 투자를 줄줄이 취소하거나 미루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석유 가격까지 오르자 자본가들은 다시금 석탄을 꺼내 쓰기 시작했다. 석탄은 석유나 천연가스 보다 가격은 싸지만 같은 양의 전기 에너지를 만들 때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산성비를 유발하고 인체에 치명적인 아황산가스와 기관지 질환을 일으키는 미세먼지도 가장 많이 배출한다(1980~1990년대에 석탄이 규제된 이유다). 비용 절감과 이윤 추구 논리가 경제는 살리지도 못하면서 지구와 사람만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 때문에, 12월 9일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리는 ‘제1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7)에 기대를 거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번 총회는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 한다.
이번 총회에서 각국 대표단은 내년에 끝나는 교토 협약의 후속 계획을 내놔야 한다. 원래 교토 협약 후속계획은 2009년 코펜하겐에서 정하기로 했었는데 계속 미루다 여기까지 온 것이다.
교토 협약은 2012년까지 선진국들이 온실가스를 1990년보다 평균 5퍼센트 낮추기로 한 협약이다. 5퍼센트는 기후변화를 막기에 턱없이 부족한 것이지만 ‘일단 한번 해 보자’는 취지에서 광범한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교토 협약은 오늘날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두 나라는 규제하지 않는다. 바로 중국과 미국이다. 미국은 당시 배출량 1위였음에도 뻔뻔하게 교토 협약 비준을 거부했고, 중국은 1997년 당시에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됐기 때문에 배출량을 줄일 의무를 면제받았다. 교토 협약은 선진국들이 산업혁명을 주도하면서 지난 2백 년 동안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한 책임을 먼저 묻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교토 협약 후속 계획은 미국과 중국의 배출을 줄이도록 요구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은 이를 원치 않기 때문에 교토 협약 체제를 ‘자발적 감축 노력’으로 대체하려고 한다. 교토 협약 체제에서는 1백94개 국이 함께 모여서 온실가스 배출 문제를 합의했는데 그것이 거추장스럽다는 것이다. 도둑놈 잡자고 모였더니 도둑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꺼” 하고 말하는 형국이다.
중국과 미국
겉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서로 다투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은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고, 중국은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이 충분한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개도국 대 선진국이라는 구도로 온실가스 문제를 보도한다. 그러나 이는 수박 겉핥기식 접근이다. 본질은 미국과 중국의 지배계급 1퍼센트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99퍼센트의 자국 민중과 나머지 국가들을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올해 11월에 발표된 유엔 보고서를 보면 1970년부터 2008년까지 자연재해로 사망한 사람의 95퍼센트가 개발도상국에 속했고, 그것도 개발도상국들 중 경제성장이 가장 빠른 나라들에서 그랬다. 따라서 기후변화 때문에 자연재해가 닥쳤을 때 중국의 헐벗은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미국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보고서는 2005년을 자연 재해가 가장 컸던 해로 꼽았는데, 미국 남부에서 2천 명에 가까운 빈민들이 수장되고 1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재민으로 전락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이다.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활동가들은 12월 3일 국제적으로 대규모 ‘점거하라’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각국 대표들에게 맡겨서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식으로 끝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후정의 활동가들이 1퍼센트에 맞선 99퍼센트 운동 건설에 힘을 쏟아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