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건은 계급적 이해관계가 다른 세력에게 상반된 모습으로 기억된다. 12월 14일은 ‘제1000차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한 수요 시위가 열린 날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인 1992년 1월 8일 수요일,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성노예 할머니들의 정당한 시위는 한국 정부의 묵인 아래 일본 정부의 묵살로 기나긴 싸움이 됐다.
수요 시위 전날에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죽었다.
이 두 사건은 어떻게 연결이 될까? 포스코의 건설 자본은 박정희 정권이 1965년 일본 정부에게 식민지 및 전쟁의 피해보상을 더는 묻지 않는 조건으로 받은 대일청구권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전쟁에 강제 동원된 민중들, 특히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을 비롯한 노동자 ·민중에 대한 철저한 강탈과 착취와 거래한 ‘피의 대가’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조차도 부정하는 것이 바로 보수언론의 태도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포항제철은 제철소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돈·기술·경험 어느 하나도 없는 맨손으로 시작했다”면서 박태준의 죽음을 두고 한국 경제 근대화를 이끈 큰 별이 진 것이라고 찬양했다.
또한 주류 언론에서 칭찬하는 박태준의 “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자”라고 한 일명 ‘영일만’ 정신의 실상은 건설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휴일까지 착취하고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동원하기 위한 술수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건설 노동자들이 죽어나갔다.
일제강점기와 전쟁 시기에 강제 동원된 노동자와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의 희생과 제철소 건설 과정에서 소리소문 없이 죽어간 노동자들의 희생이 주류언론에서 칭송하는 박태준의 '업적' 이면에 있는 우리 계급의 역사적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