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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의 위기 ─ 올바로 보기

검찰이 통합진보당의 “심장”인 당원명부를 강제 압수했다. 이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심정을 느꼈을 것이다.

통합진보당이 내부적으로 심각하게 분열해 있는 틈을 이용해 결정적 타격을 가하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이한구도 이석기·김재연 당선자의 원내 입성을 막겠다고 했다. 개가 웃을 일이다. 우리는 두 당선자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지만 우파에 의한 원내 입성 저지는 분명하게 반대한다는 점을 밝혀둔다.

“쇄신”을 약속하며 고개 숙인 강기갑 비대위 당권 투쟁이 아니라 선거 부정에 의해 훼손된 정의와 민주주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이한구의 발언은 이 나라 주요 지배자들의 의도를 대변한다. 통합진보당의 제도권 진출을 봉쇄하겠다는 목표 말이다.

성공 여부는 완전히 별개지만, 이들은 할 수만 있다면 이참에 통합진보당을 와해시켜 정권 교체를 저지하고 싶어 한다.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공동정부 구성은 지배계급에게는 피하고 싶은 끔찍한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그러나 노동자 운동은 완전히 다른 이유, 곧 통합진보당의 공동정부 참여는 그 당 지지자들을 공격하게 될 것이라는 이유로 이를 반대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선거 부정 사태에 이은 구당권파의 중앙위원회 폭력 행사 등 때문에 실망감과 환멸감을 느낀 나머지 이런 상황에서 통합진보당 방어를 내켜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을 (비판적으로) 방어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자신감을 얻어 탄압을 확대할 수도 있다. 이미 해방연대와 대구 청년단체가 연달아 경찰의 공격을 받았다.

신상 털기

우익은 통합진보당의 선거 부정 문제를 ‘종북’ 문제로 호도하고 있다. 사태의 진실은 그들의 관심 밖이다. 오로지 통합진보당에 대한 마녀사냥만 있을 뿐이다. 우익 언론의 이석기·김재연 당선인에 대한 ‘신상털기’는 소름끼친다.

재수 없게도, 반우파 지식인인 진중권은 우익의 마녀사냥에 부화뇌동하고 있다. 적의 힘을 빌어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듯이 말이다. 그는 북한 스탈린주의자들과 남한 스탈린주의자들을 전혀 구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자는 북한의 지배계급인 반면, 후자는 남한의 피지배 계급 운동의 일부다.

그러나 ‘종북’ 문제는 통합진보당 사태의 핵심도, 발단도 아니다.

비례후보 경선 과정에서 부정·부실이 많았고 그 결과 선거의 정당성과 신뢰성이 상실됐으니 경선참여 후보들이 사퇴해야 한다는 것이 사태의 골자다.

따라서 선거 부정 규모를 제기하는 것은 쟁점을 비트는 것이다. 구당권파는 선거 부정은 있었으되, “총체적”이지 않았다고 강변한다. 그들의 주장대로 부정의 규모가 10퍼센트라고 치자. 어쨌든 선거 부정 사실은 있었던 것 아닌가. 또, 선거 부정이 있었다면, 과연 ‘드러난 게 전부일까’ 하는 의심을 할 법하지 않은가.

게다가 통합진보당 부정 선거의 핵심은 온라인 투표다. 누군가 수차례 소스코드를 열어 봤다는 것이고, 이것이 투표 결과에 모종의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운동권의 관행”쯤으로 보는 것은 완전 잘못됐다. 이 정도면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선거 부정이다. 그것도 스탈린주의자들(NL)이 선거주의에 눈이 멀어 합법적 대중 정당 안에서 저지른 선거 부정이다.

개혁주의(사회민주주의)가 이번 사태의 원인인 것처럼 보는 시각은 그래서 잘못됐다. 사회민주주의는 기본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중시한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계속 확장되면 사회주의(지금은 사회주의라는 말 대신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쓰지만 말이다)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 이때의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다. 그래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절차의 핵심인 선거를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스탈린주의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정치다. 스탈린주의는 위로부터의 사회주의다. 그것이 군대든 탱크든 아니면 소수 지식인이 농민 군대를 이끌든지 간에 소련과 같은 국가자본주의 모델을 만들면 그것이 곧 사회주의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노동계급이 혁명으로 세계를 바꾸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무시한다.

한편, 스탈린주의는 개혁주의 자체는 아니며, 그들의 개혁주의는 인민전선으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가령, 통합진보당은 스탈린주의자들이 이끄는 개혁주의 정당이다. 이런 모순은 사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지속돼 온 것이다. 모순은 불안정성을 낳는다. 2008년 분당이나 이번 현재 통합진보당의 위기처럼 말이다.

꼬여가는 사태

선거 부정에 의해 파손된 정의와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가 순식간에 당권 투쟁으로 변질되면서 사태는 더욱 꼬여가고 있다.

구당권파는 현 사태를 신당권파가 자신들을 제거하려는 음모로 규정하고 있다. 신당권파에 의한 “쿠데타”라는 것이다. 문제는 신당권파도 이번 사태를 당내 주도권 장악에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사태 해결은커녕 상황이 계속 꼬여가고 그에 따라 진보적 노동 대중의 환멸도 커지고 있다.

이를 의식해 구당권파는 이 사태의 본질을 노선 대립으로 치장하기 시작했다. 강기갑 비대위의 혁신 방향이 우경적이라는 비판이 그것이다.

물론, 신당권파 지도자들이 좌파적이지는 않다. 유시민의 애국가 발언이나 주요 인사들의 연립정부 프로젝트 등을 보면 신당권파가 좌측 통행을 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석기 당선인도 당 행사에서 애국가를 부를 수 있다고 했고, 연립정부 프로젝트는 구당권파도 지지한다. 사실, 연립정부는 스탈린주의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프로젝트다.

따라서 구당권파가 이번 사태를 마치 좌우 투쟁인 양 치장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정작 강기갑 비대위의 문제는 “혁신”의 내용이 도통 뭔지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혁신”이라는 말은 많지만, 선거 부정에 의해 훼손된 정의와 민주주의를 어떻게 바로 세울지는 없다. 이석기·김재연 당선인의 사퇴 압박에 다 걸기를 하는 듯한 인상이다.

이런 대결 양상이 물리적 분당으로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에는 이미 두 개의 당 조직이 존재한다 — 통합진보당 신당권파, 통합진보당 구당권파.

한편, 부정 선거 사태로 인해 통합진보당에 대한 노동자들의 신뢰성이 크게 손상됐다. 이런 상황에서는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철회하고 진보적 다원주의 정치 방침을 채택하는 것이 노동계급의 단결에 이로울 것이다. 다만, 선거 방침은 노동계급의 계급 투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집중 투표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바람직하게는, 전현직 민주노총 리더들이 노동계 정당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대안이다. 그리고 그 당은 참여 세력의 정치적·조직적 독자성과 비판의 자유를 보장하는 공동전선적 모델이 바람직할 것이다. 당 모델보다는 공동전선 모델이 패권주의 폐해를 완화시키는 데 더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