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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라 대학살 이후 새롭게 도약하는 시리아 혁명

서방은 지금 시리아에 “군사적 수단”을 적용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중동 전문가인 사회주의자 시문 아사프가 혁명 운동 내부에서 일어난 변화들이 어떻게 반란을 심화시키고 있는지 살펴본다.

훌라 대학살로 시리아에 외부 군사 개입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다시 늘고 있다. 영국 외무장관 윌리엄 헤이그는 “군사적 수단”을 선택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헤이그의 경고는 친정권 민병대가 훌라 마을에서 대학살을 벌인 뒤 대다수 서방국가가 시리아 대사들을 추방하고 있는 가운데 발표됐다.

헤이그의 성명은 외국의 개입이 시리아와 시리아 혁명 양쪽에 여전히 위험 요소로 남아 있음을 되새기게 한다. 그러나 새로운 “강경한” 유엔 결의안을 통과시키고자 한 서방의 시도는 시리아 정권과 동맹을 고수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외부에서 군사 개입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사이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바로 혁명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시리아 국내에서는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 외의 외부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줄었다.

지난 4일 저항세력 측은 유엔의 평화안이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또한 “예멘식 해법” ― 예멘의 살레 대통령 축출처럼 정권은 그대로 두고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만 체면을 살려주면서 국외로 축출하는 방식 ― 을 적용하려는 시도들에도 혁명 지도부 대다수가 반대했다.

혁명 내부에서 외부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잦아들자 서방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국가위원회도 위기에 빠졌다. 국가위원회의 망명 지도부는 리비아와 같은 방식의 서방 개입에 의존하는 전략을 추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실패했고, 시리아 현지에 실제적인 영향력이 전혀 없는 국가위원회는 커다란 위기를 겪고 있다. 이 때문에 국가위원회 의장 부르한 갈리운이 사임해야만 했다.

시리아국가위원회뿐만 아니라 터키에 있는 자유시리아군의 “공식” 사령부도 혁명 세력이 무장 투쟁과 시민 항쟁 양 측면에서 모두 성장하자 주변화됐다.

혁명 세력한테도 훌라 대학살은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지금까지 혁명에 수동적 태도를 보이던 각계각층의 주민들 사이에 정권에 대한 혐오와 분노가 갈수록 커진 덕택에 지역조정위원회들을 대표해 혁명 지도부가 선언한 항의 파업은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

파업은 수도인 다마스쿠스에서 시작해 다른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했다. 공업과 상업 중심지인 알레포도 이러한 파업 물결에 동참했다.

훌라 대학살

훌라 학살 이후 가장 중요한 발전이 있었던 곳이 바로 알레포였다. 6월 1일 수많은 알레포 시민들이 가두로 쏟아져 나와 시내 중심가로 행진하려 했다. 이 시위는 지금까지 벌어진 시위 가운데 가장 컸다.

이러한 시위 규모와 파업 운동의 성장은 대다수 평범한 민중 사이에서 혁명이 자라고 있음을 보여 준다.

다마스쿠스와 알레포 모두 정권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다. 가두 운동과 지역 총파업이 일파만파로 번져 나갔다. 친정권 측 샤비하 민병대가 파업을 깨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러한 운동과 함께 무장 투쟁도 더욱더 커지고 효과적으로 조직되고 있다. 새로운 군사 조직인 시리아혁명전선이 지난 4일 결성됐다. 시리아혁명전선은 무장 대원 1만 2천 명을 통솔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자유시리아군과 별개로 활동하고 있다.

바샤르 알아사드가 벌인 군사적 도박은 정권을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정권이 처한 위기 수준을 가늠하기가 여전히 어렵지만, 군대의 이반이 현재 심각한 수준이고, 그 때문에 정권은 탄압에 좀더 조심스런 수단과 방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종파적 내전에 대한 우려도 여전히 강력하다. 그렇지만 시리아의 현재 상황을 레바논 내전이나 이라크 상황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웃 나라들과 달리 시리아의 수니파 주민은 인구의 75퍼센트에 달한다. 이번 혁명이 종파적 반란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오래 끌지 않았을 것이다.

시리아 혁명은 기독교도, 드루즈파, 쿠르드인 같은 소수민족을 공격하지 않았다. 샤비하 민병대의 주요 자금줄 또한 정권과 긴밀히 연결된 부유한 수니파 가문들이다.

그럼에도 정권에 충성하고 있다고 흔히 알려진 알라위파한테 보복 공격이 벌어진다면 혁명은 커다란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훌라 대학살은 인근 마을 출신의 알라위파 깡패들이 저질렀다고들 한다.

그러나 훌라 학살을 계기로 알라위파 주민들도 친혁명 쪽과 친정권 쪽으로 크게 나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알라위파 출신 병사들이 혁명 진영으로 탈주하고 있고, 시리아 서부의 알라위파 지역들에서도 반란 지지가 늘고 있다.

현대 시리아 국가는 식민지 시기에 서방 열강이 조장한 종파주의에 반대하며 탄생했다. 이렇듯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시리아 민족주의는 여전히 강하고 굳센 세력으로 남아 있고, 혁명이 애초부터 내세운 구호도 바로 단결이었다. 종파주의가 혁명에 위험 요소로 남아 있지만, 혁명이 제 궤도에서 벗어나게 만들진 못했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3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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