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행렬을 멈출 힘은 연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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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상영한 영화 〈돈의 맛〉에는 외국인 투자자와 재벌 2세가 우연히 TV를 함께 보는 장면이 등장한다. 지붕 위에서 경찰들이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때리는 모습이 TV에 비친다.
아마도 극장 안 관객 대다수는 그 뉴스 장면이 영화 속 만들어진 장면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장면은 2009년 해고에 맞서 공장 점거파업을 벌이던 쌍용차 노동자들을 경찰이 살인적으로 진압한 모습이었다.
그런 야만적인 일이 벌어진 지 3년 후, 우리는 야만을 넘어 비극을 목격하고 있다. 정부와 자본이 만들어 낸 사회적 타살, 쌍용차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이다.
2009년 노동자들이 “해고는 살인이다” 하고 외칠 때, 나는 ‘맞아, 노동자들에게 해고는 살인이나 다름없어’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고는 진짜 살인이었다. 벌써 22명이다.
한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그 노동자의 가족들이 22명이나 죽었다. 뉴스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가 자살했다’고 보도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다. 이명박 정부와 마힌드라 자본이 22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노동자 2천6백46명이 공장에서 쫓겨나 가족이 파괴되고, 쌍용차에서 일했다는 사실 때문에 취직도 되지 않고, 동료와 가족이 죽어가는 모습을 봐야 하는 고통 속에 내몰리고 있다. 이들은 벌써 3년째 정신적·경제적 고통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모든 비극의 원인 제공자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상하이차가 기술유출과 회계조작으로 회사를 거덜내고 정부가 이를 방조해 생긴 문제를 왜 노동자들이 책임져야 하나.
게다가 정부의 무자비한 구조조정과 부채 정리로 헐값에 쌍용차를 인수한 마힌드라는 재고용 약속을 헌신짝처럼 팽개치고는 단 한 명도 복직시킬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이미 정리해고 이전 생산량을 회복했는데도 말이다.
전 경찰청장 조현오가 쌍용차 살인 진압을 자신의 최대 치적으로 삼고, 이명박은 그의 공로를 치하했다니, 진정 치가 떨린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는 23번째 죽음만은 막으려는 심정으로 차린 대한문 분향소를 강제로 철거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을까.
하루아침에 일터에서 쫓겨나고, 고통 속에 나날을 보내야 하는 수천 명의 노동자들을 보며 아마 수많은 청년들이 ‘과연 희망이, 미래가 있는가’ 하는 쓰디쓴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삶을 무참히 짓밟은 그 공장에서는 이 사회 청년들의 희망도 내쫓겼다.
이제 먹튀 자본과 정부의 이윤몰이에 희생된 노동자들 모두가 복직돼야 한다. 23번째 죽음은 안 된다.
죽음의 행렬을 멈출 힘은 바로 연대 투쟁에 있다. 지난해 희망버스는 사회적 연대가 성과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다시 커지고 있는 사회적 연대에 쌍용차 노동자들도 희망을 꿈꾸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다.
‘함께 살자’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더 큰 메아리로 이 사회에 울려 퍼질 때, 죽음의 공장은 희망의 증거로 탈바꿈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