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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는 새로운 희망으로 다시 태어나야”

나는 급하다. 그것도 무척 급하다. 함께 투쟁하는 이들은 ‘뭐에 쫓기는 것 같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난 2009년 쌍용차 평택 공장 점거파업 이후로 이 문제가 빨리 풀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집에 안 들어간지 꽤나 됐지만, 일상을 포기하는 것쯤 아무 것도 아닌 채로 살아야 한다는 무게를 온전히 갖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일상의 허허로움을 느끼는 순간 또 다른 죽음이 기다릴 것 같은 공포가 날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 죽음들에 대한 죄책감을 이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무척 급하다.

22명의 죽음이 있은 뒤 4월 7일 대한문 분향소를 차릴 때, 나는 깊은 무기력과 절망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그때는 조급하지 않아도 됐다.

매일 매일 이어지는 시민들의 분향을 받는 것이 전부였고, 이틀 건너 경찰의 침탈이 이어지는 바람에 뭘 정리하고 상상해 낼 여유가 없었다. 견디면 됐고 감사하면 됐다. 내 슬픔처럼 함께 아파하는 이들을 통해 가슴속 상처가 아무는 걸 느끼면 됐고, 팔다리가 들리고 온갖 모욕을 당할지언정 물러서지 않으면 됐다.

그렇게 사람이 모이게 됐고, 쌍용차 해고자들에 대한 응원과 지지로, 사회적 힘들로 확인됐다. 그건 23번째 죽음을 맞을 수 없다는 절박한 울부짖음에 대한 양심의 화답이었고, 우리를 비로소 사람으로 보게 된 사회적 낙인의 벗음이었다.

사회적 힘

그러나 그렇게 사람으로 인정받고 대접받는 나날들이 언제까지 영속될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지난 3년간 그런 신기루를 너무나도 많이 겪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누구도 쌍용차 문제를 쉽사리 해결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이도 없었기 때문이다.

회계조작으로 이뤄진 정리해고는 원천 무효고, 그래서 공장 밖으로 떠밀린 모든 노동자들이 다시 작업복을 입고 일상을 되찾는 것만이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이야기해 왔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상하이 자동차에 먹튀를 용인하고, 자본에게는 어떤 죄도 묻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에게만 고통을 전가하려던 해고였기 때문이다. 정부가 공권력의 폭력으로 무장하고,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회사를 청산하겠다는 협박 속에서 이루어진 해고였기 때문이었다. 오롯이 국가에 의해 기획되고, 국가에 의해 버림받은 사회적 죽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렵다는 거였다. 노사 문제에서 자본의 부당함만 폭로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외국 투자자본에 대한 여러 이해와 이로부터 예상되는 국제적 분쟁까지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 어렵다는 거였다.

경제 공황 시기에 노동자들을 손쉽게 잘라내야 기업들이 경쟁력을 가질 텐데, 정부가 주도해 민주노총을 무력화시킨 쌍용차 문제를 원점으로 돌리면 이후 노동 유연화정책에 제동이 걸려 어렵다는 거였다.

그렇게 어렵고 어려워서 3년간 22명의 죽음이 이어졌다. 죽음이 계속될 것 같은 낙담과 공포가 이 사회에 남겨졌다. 정책에 사람이 없고, 기업 경쟁력에 노동자는 없고, 국가에 국민은 없는 절망의 이야기로 남겨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회의 양심들은, 이제 이 야만의 정글에 내팽개쳐져 죽음에 이르는 해고자들을 구해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많은 이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꿈쩍도 않았던 쌍용차는 무급 휴직자에 대한 입장을 3년 만에 내놓았다. 어용노조와 단체협상을 통해 무급 휴직자들의 학자금을 지원하고, 명절에 선물을 지급하고, 주식 1백50주를 주는 것을 22명의 죽음 앞에 내놓았다. 분노하는 것 이면에 쌍용차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이제 힘을 갖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09년 쌍용차 평택공장 점거파업 당시, 노조는 신차 개발을 위해 퇴직금을 담보로 한 1천억 원 자금조달과 비정규직 고용안정을 위해 매년 12억 원 기금 출연을 선언했다. 총고용이 보장된다면 순환 무급휴직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이른바 ‘쌍용차 모델’이었다. 함께 살 수 있다면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를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물론 사측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얼토당토않는 이야기로 거부했지만, 그 뒤에 이명박 정부가 있었음을 노동자들은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 거부의 결과가 22명의 사회적 학살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새로운 선언

우리는 다시 새로운 쌍용차 모델을 선언해야 한다. 합의된 무급 휴직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복직에 대해 이런 저런 입장을 내놓는 것만으로는 점점 더 방향성을 잃고 벼랑 끝으로 내몰릴 뿐이다. 공장으로 돌아가길 희망하는 모든 이들이 다시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야 말로 새로운 쌍용차 모델이어야 한다.

1998년 현대차, 2000년 대우차 구조조정 이후에는 하지 못했던, 희망퇴직한 노동자들도 다시 일하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희망이다. 그것이야말로 생명을 살리는 새로운 희망일 것이다.

우리는 걷기로 했다. 마음은 급한데 온도차도 있고, 아직 확신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어 일단 함께 걸어보기로 했다. 서로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노래도 하고, 웃기도 하기로 했다. 그렇게 간극과 생각의 차이를 넘어서 더 많은 이들과 해고와 비정규직 문제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희망으로 가득찬 행진을 할 것이다.

그 희망을 막으려는 정부와 권력의 탄압과 폭력도 담대하게 웃어넘길 것이다. 더 나아가 모든 정리해고는 기업의 회계조작이 없다면 불가능하다는 사실과, 해고와 동전의 양면같은 비정규직문제가 결국 자본의 더 많은 이윤 창출을 위한 욕망의 본질임을 이야기할 것이다.

더디지만 함께하는 것만이 절대 무기임을 우리는 지난 역사 속에서 알고 있다. 물론 이 걸음들로 해고와 비정규직문제의 해결로 갈 수 없음을 우린 알고 있다.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기 위한 생각과 지혜를 모으는 첫 걸음일 뿐이다.

나는 그래서 그 찬란한 걸음 뒤에 이어질 일을 상상한다. 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과 더 이상의 죽음과 아픔이 없을 사회를 위한 지지와 응원을 상상한다. 새로운 쌍용차 해법을 상상한다. 나는 그래서 급하다. 그것도 무척 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