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와 제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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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란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행동이 중심이 되는 거대한 정치 투쟁이다. 혁명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사태와 모순으로 가득하며 미리 예정된 어떤 경로나 공식도 따르지 않는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휩쓸고 있는 혁명의 물결도 마찬가지다. 이 혁명 물결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그 온전한 잠재력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그 시작은 단 몇 주 사이 강력한 독재자 두 명을 무너뜨린 대중 혁명이었다. 튀니지의 벤 알리와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는 둘 다 서방 제국주의의 충성스러운 동맹이었다.
그래서 서방의 정치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이들의 뒤를 봐주다가 마침내 그들이 타도될 것이 명백해 보이자 그제서야 태도를 바꿨다.
서방은 전열을 재빨리 가다듬어야만 했다. 미국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과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은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혁명 지지 인증샷을 찍었고 민주화를 환영한다는 등 훈훈한 말을 쏟아냈다.
이들은 중동에서 조금이나마 영향력을 유지하려면 신생 혁명 운동을 편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대중적 반란이 불러올지도 모를 급진적 변화에 공포를 느꼈다.
당연하게도 서방의 지배자들은 자유를 향한 아랍 민중의 갈망을 대변하는 데 관심이 없다. 더구나 그들은 바레인과 사우디 같은 핵심 동맹국들의 민주화 운동에는 한마디도 지지를 표하지 않았다.
그들의 목적은 아랍 혁명을 가로채거나 탈선시켜 옛 독재 정권들을 친서방 정권들로 대체하려는 것이었다.
주도력
이를 위해 서방 국가들이 처음으로 주도력을 발휘한 것은 리비아에 대한 군사 개입이다. 그들은 벵가지 시민들의 절박한 도움 요청을 개입의 명분으로 삼았다.
서방은 리비아 혁명을 포섭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성과는 양면적이다. 현재 리비아는 파편화되고 양극화돼 있으며, 리비아 민중의 바람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제 서방은 시리아 혁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이번에는 전면적 군사 개입에 좀더 미온적인 듯하다.
게다가 중국과 러시아는 지금껏 유엔을 통한 군사개입 시도를 막아 왔다. 이들은 아사드 정권을 외교적·군사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자국 이익을 지키려 한다.
그래서 서방 국가들은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 지역 동맹국들과 함께 전면적 군사 개입 대신 비밀 작전을 수행하고 있고 유엔이 시리아에 “협상을 통한 해결”을 받아들이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미국은 아사드가 예멘의 살레 대통령을 위해 기획된 것과 비슷한 ‘질서 있는 퇴각’을 통해 물러나길 원한다. 이렇게 하면 시리아의 억압적 국가기구를 온전히 남겨둔 채로 친서방적 정권이 집권할 수 있을 것이다.
리비아와 시리아의 혁명은 좌파 진영 내에서 일부 논쟁을 촉발했다.
좌파 일각에서는 아사드 정권이 중동에서 서방의 이권에 도전하는 세력이라고 말한다. 서방 제국주의가 아사드 정권에 맞선 반란을 사주했다고도 한다.
뒷거래
이는 시리아 정권이 오랫동안 서방 제국주의와 뒷거래를 해 왔음을 무시하는 주장이다. 시리아 정권은 아랍 민중이 아니라 정권의 이익을 추구해 왔다.
더욱이, 시리아 혁명의 뿌리는 튀니지와 이집트 혁명의 그것과 동일하다. 가난과 불의에 저항하고자 하는 민중의 의지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튀니지·이집트 혁명과 다를 바가 없다.
또한 시리아 혁명은 빈부격차 확대, 정치 개혁에 대한 약속 배신 같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폐해에서 비롯했다.
시리아 혁명은 거리의 대중 시위와 지역 위원회들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
이제는 심지어 정권의 보루이자 시리아의 양대 도시인 다마스쿠스와 알레포에서도 저항이 일어나고 있는데, 특히 혁명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의 대중파업도 일어났다.
어느 혁명이나 그렇지만 시리아 혁명에도 서로 경쟁하는 세력들이 있다. 일부는 아사드 정권과 타협할 용의가 있고, 망명 인사들이 주도하는 시리아국가위원회(SNC)를 비롯한 또 다른 일부는 서방 국가들, 그리고 서방의 걸프 지역 동맹국들과 기꺼이 협력하고 그들의 이익에 봉사해 줄 용의가 있다.
그러나 그밖에 많은 세력들은 근본적 변화를 바라며 이를 위해 싸울 태세다.
시리아 지역조정위원회(LCC)는 일상의 투쟁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 기구로서 독자성을 유지해 왔다. 이들이 바로 시리아 혁명의 주된 원동력이다.
서방은 시리아가 피비린내 나는 종파 간 내전에 휘말릴 가능성을 과장하면서 개입 명분을 쌓고 있다. 그러나 과거 역사를 보면 제국주의 국가들이야말로 분열 지배 전략으로 종파 간 갈등을 조장해 온 당사자다.
물론 시리아에서 종파 간 갈등의 위험은 명백히 존재한다. 시리아 정권이 그런 갈등을 부추겨 왔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정황을 보건대 반정부 운동은 종파를 초월한 단결을 추구하고 있다. “시리아인은 하나다”라는 구호가 곳곳의 시위 현장에서 울려 퍼진다.
세력 균형
결국 어느 쪽이 승리할 것인지는 계급 간의 세력 균형에 달려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대중이 거리로 나올 것인가?
이미 일부 도시 노동자들이 파업을 통해 집단적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움직임은 장차 확대될 것인가 아니면 소멸할 것인가?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은 혁명의 진로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혁명의 승리는 대중의 더 광범한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러나 만약 아사드의 탄압이 승리한다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닌 힘에 회의를 느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외부 세력에게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게 될 수도 있다.
어떻게 되든 간에 미국은 사태를 좌지우지할 입장이 못 된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자본주의 블록이기는 해도 전능하지는 않다.
우선 튀니지 혁명과 이집트 혁명부터가 미국의 허를 찔렀다. 또 미국은 이라크에서 승리하지도 못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쫓겨나고 있다. 서방이 시리아 혁명을 포섭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불가피하지는 않다. 아랍 혁명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아랍 혁명을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굴절시키려는 우리 지배자들의 시도에 굳건히 반대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어떤 식으로 포장됐든 간에 일체의 개입에 반대한다. 제국주의자들의 거짓말 뒤에 숨어 있는 진정한 개입 동기를 폭로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아사드의 야만적 정권을 타도하고자 하는 아래로부터의 반란을 지지해야 한다. 러시아 혁명에 대해 레온 트로츠키가 말했듯이, “인민 대중의 반란에는 정당화가 불필요하다[이미 그 자체로 정당하다].”
아랍 민중은 중동 전역에서 역사의 무대 전면에 등장했다. 이는 중동 자본주의에 근본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다시 없는 기회다.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에 도전해야만 자본주의가 양산하는 제국주의 전쟁도 끝장낼 가망이 있다.
지구상의 모든 제국주의 국가들을 끌어내리길 원하는 이들에게 가장 큰 희망은 아랍 세계 도처에서 자국 독재자에 맞서 싸우고 있는 아랍 민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