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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성격 논쟁:
‘재벌타협론 대 중소기업 동맹론’을 넘어서야

최근 장하준·정승일·이종태(이하 장하준 등)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내고, 김상조가 《종횡무진 한국경제》를 내면서 진보진영 내에서 재벌 개혁을 둘러싼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정태인, 이병천 등이 장하준 등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고, 장하준 등이 이를 재비판하면서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김상조 등은 출자총액제한과 순환출자 금지 같은 재벌 개혁 없이는 복지국가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재벌들이 독점적 경제 권력을 이용해 중소기업이나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부를 가로채고,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에 재벌 집단을 약화 또는 해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하준 등은 이런 주장을 비판한다. 최저임금 인상, 복지 확대처럼 재벌의 이익을 축소하는 다른 방법들이 있는데, 재벌의 소유 구조 개혁에 집중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런 비판이 설득력 있는 이유는 재벌 개혁론이 내세우는 기업 소유 구조 개편이 자유주의적 문제의식이며, 노동자들에게는 별다른 득이 될 게 없다는 점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즉, 재벌 개혁이 성공하더라도 ‘재벌 가문 5백 명 정도만 잘 먹던 걸 기껏 5만 명의 금융 자산 부자들까지 잘 먹게 만드는 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장하준 등의 지적은 정당하다.

또, 재벌 개혁론자들은 독과점이나 국가 개입이 없다면 시장은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작동한다고 보며, 흔히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래서 중소기업의 이윤이 늘어나면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도 개선될 것이라고 본다.

장하준 등은 이런 관점도 반대한다. “대기업들이 납품 단가를 높여 준다 하더라도, 과연 중소기업 기업주들이 자진해서 종업원들 임금 올리고, 장시간 노동을 줄이고, 그래서 더 많은 인력을 채용할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중소기업 기업주를 재벌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를 착취하는 착취자로 본다는 점은 옳다.

중소기업의 이윤이 늘어나야지만 임금을 올릴 수 있다는 논리를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받아들이면 자신의 기업주에 맞서 일관되게 싸울 수 없게 된다.

반면 정태인 등 재벌 개혁론자들은 장하준 등이 ‘재벌과의 대타협’이라는 잘못된 길을 제시한다고 비판한다. 재벌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조처에 반대하며 사실상 재벌을 편든다는 것이다.

이것은 장하준 등이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주주 자본주의로 보기 때문이다.

금융자본과 주식 투자자들의 단기적 이익 극대화에만 매달리는 주주 자본주의에서는 장기적인 설비투자가 줄어들어 실업과 비정규직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장하준 등은 저성장과 불평등 확대를 전적으로 주주 자본의 책임으로 돌리고 나서,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금융자본에 맞선 국가 개입 강화와 재벌의 경영권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제 위기와 불평등 확대를 전적으로 금융자본과 주주 자본의 책임으로 돌리는 장하준 등의 설명은 현실과 들어맞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재벌들은 보유 자금을 늘려 왔는데, 이것은 ‘주주에게 배당을 최우선으로 하는 단기 수익성 경영’이라는 주주 자본주의 틀로 설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태인 등이 “과연 경영권을 보호해 주면 재벌들이 배당금을 줄여서 투자를 늘리고 하청 단가도 올려주며 노동자 임금도 끌어올릴까?” 하고 물음을 던지는 것은 정당하다.

진실은 금융자본뿐 아니라 재벌과 같은 거대 산업자본과 국가 관료가 합심해서 신자유주의를 추진했다는 것에 있다.

장하준 등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시작된 배경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이런 변화가 1970년대부터 분명해진 이윤율 하락과 이로부터 비롯한 전 세계적인 위기에서 촉발됐다는 것을 보여 줬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단지 주주 자본의 권력 확대가 아니라 전 세계 지배자들이 이윤율을 회복하기 위해 노동계급에게 대대적으로 공격을 펼친 것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이렇게 봐야만, 왜 한국에서 재벌이 앞장서서 신자유주의를 추진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2008년 경제 위기를 겪은 전 세계 지배자들이 신자유주의에 끝까지 매달리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본질의 일부

그러므로 재벌타협론과 재벌개혁론은 각각 한국 경제 본질의 일부만을 지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진실의 일면만을 부각하며 사태를 왜곡하는 것을 통해, 재벌개혁론은 재벌에 맞서 중소기업과의 동맹을, 장하준 등은 금융자본에 맞서 재벌과의 동맹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본질은 재벌·금융자본과 중소기업들이 국가 관료들과 합심해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 한다는 것에 있다.

재벌타협론과 재벌개혁론 모두 이런 현실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은 근본에서 자본주의를 뛰어넘지 않는 그들의 개혁주의 정치와 관련 있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경제를 더 효율적으로 성장시킬 대안을 찾으며 자본의 일부분과 동맹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하준 등과 정태인 등은 모두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개혁의 걸림돌 취급하며 비판한다.

그러나 지배자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복지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과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단결해 함께 싸우도록 고무해야 한다. 특히, 투쟁 속에서 단련돼 온 조직 노동자들의 자본주의를 마비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매우 중요하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난하고 그들의 투쟁을 폄훼한다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과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이간질해 분열시키려는 지배자들의 술책에 말리게 된다.

1930년대 대불황 이래 최대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요즘처럼 자본가들이 양보할 여력이 별로 없는 시기라면 노동자들의 단결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며, 재벌뿐 아니라 모든 자본가들에 맞서는 거대한 투쟁을 건설하고 이를 체제를 위협할 만한 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가들의 이런저런 세력과 동맹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관점에 서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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