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국가와 자본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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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줄 만한 좋은 질문을 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이하 경어 생략)
안철환 씨는 지난 호 독자편지에서 국가와 자본이 “구조적 상호 의존 관계”라고 정의하기보다는 “부르주아 국가는 총자본의 대변인”이라고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는 “상부구조”이고 자본은 “하부구조”이기 때문에 국가는 자본을 반영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또 국가와 자본을 “구조적 상호 의존 관계”라고 정의하면 국가 개념에 계급성이 결여된다고 보는 것 같다.
먼저, 국가를 활용해 자본주의를 개혁하려는 생각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부르주아 국가의 계급성을 분명히 하려는 안철환 씨의 취지는 완전히 공감한다.
그러나 나는 국가와 자본이 “구조적 상호 의존 관계”라고 정의하는 것이 계급성을 분명히 하면서도 현실을 더욱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총자본’은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이다. 현실에서 자본은 언제나 다수 자본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국가가 ‘총자본’의 대변인이라는 개념은 마치 ‘총자본’이 물질적인 실체로서 현실에 존재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부적절하다.
또 국가를 단순한 상부구조로 볼 수는 없다. 토대는 한 사회의 기초가 되는 경제에 해당하고, 상부구조는 그 토대 위에 자라나는 정치, 법률 등의 현상을 말한다. 현대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주의적인 생산관계를 유지·발전시키려는 상부구조로서 건설이 됐지만,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도 생산에 직접적으로 개입한다.
한국에서도 박정희 정부가 중앙집중적으로 산업화를 계획했듯 말이다. 옛 소련에는 사적 자본가는 없었지만 국가 관료들이 주도해서 산업을 발전시켰다. 서방 국가와의 무력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산업 발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가는 다른 국가와 경쟁하기 위해서도 노동자들에게서 더 많은 착취를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를 “총자본의 대변인”이라고 정의하지 않는다 해서 국가의 계급적인 성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는 계급은 물질적 생산과 착취에 대한 자신의 관계 때문에 다른 인간 집단들에 맞서서 집단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봤다. 그런 정의에 비춰 보면 국가를 지배하는 관료들은 착취 체제를 유지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자본가의 일부라고 봐야 한다. 크리스 하먼은 국가를 지배하는 관료를 “정치적 자본가”라고 분류한 바 있다.
안철환 씨처럼 “부르주아 국가는 총자본의 대변인”이라고 정의할 경우 국가는 마치 생산관계의 외부적인 존재인 것처럼 여겨진다. 국가가 자신의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단지 전체 자본의 평균적인 이해관계를 대변한다고 여겨진다.
그렇게 봐서는 국가와 자본이 격렬한 갈등을 벌이는 경우를 제대로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예컨대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 동유럽 국가기구를 통제한 사람들은 국가기구를 이용해 생산수단을 거의 완전히 국유화했다.
국가와 자본을 “구조적 상호 의존” 관계라고 정의하는 것이 이런 현실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안철환 씨의 주장에는 한 가지 모순이 있어 보인다. 안철환 씨는 국가를 이용해 자본주의를 개혁하려는 것에 반대한다. 그런데 다른 문단에서는 국가 권력을 누가 장악하냐에 따라 국가의 헤게모니가 바뀐다는 듯한 주장도 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안철환 씨가 우려한 “국가를 이용한 자본주의 개혁”을 하자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방향이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와는 완전히 다른 아래로부터의 노동자들의 권력기구를 세우는 대안을 일관되게 추구해야 할 것이다.
덧붙여 안철환 씨는 국가는 총자본의 대변인이라는 주장이 “국가에 맞선 정치 투쟁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과 연결”되기보다는 “정치 투쟁을 더욱 강화하는 경향으로 연결”되지 않나 하는 의문을 던졌다.
나는 두 방향 다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주의가 강한 경향은 국가는 총자본의 반영물이므로 진정한 힘을 가진 자본에 맞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또 국가에 대해 같은 개념을 쓰면서도 국가에 맞선 정치 투쟁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국가에 맞선 정치 투쟁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라고 쓴 문장은 노동조합주의적인 경향을 염두에 둔 것이었는데, 안철환 씨는 내가 스탈린주의 일반을 염두에 두고 쓴 것으로 오해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