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파키스탄을 여행하던 중에 엄청난 수해 때문에 6일간 고립됐던 경험은 내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당시 파키스탄 도로 곳곳이 유실되고, 고립돼 구조 수송기를 겨우 얻어 타서 구사일생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립된 기간은 오히려 파키스탄 동네 구석구석을 탐방하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겪는 가난과 억압을 실감하는 기회가 됐다.
내가 간접적으로 목격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천재지변이라기보다는 인재에 가까웠고, 도시 전체의 식료품과 물이 떨어져 함께 구조를 기다리며 가까이서 체험했던 그들은 사회적 착취 굴레 속에 하루하루를 ‘뗌빵’하듯 살아가고 있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파키스탄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가 여행한 제3세계 사람들 대부분은 선진국에서 기술이나 돈을 공수해 오지 않는 이상 노동착취 속에서 피폐한 삶을 견뎌내야 했다.
아직도 그 장면이 기억난다. 우즈베키스탄 젊은 노동자들은 “우리는 일거리가 없어 낮에도 이렇게 이웃끼리 모여 수다나 떠는거야. 이 나쁜 카리모프(우즈벡 대통령)” 라며 울분을 토해 내고 있었다. 에티오피아 아디스바바에서는 도로 한복판에 자는지 죽었는지 모를 사람들이 누워 있었고, 시골 마을에서는 식수를 찾아 허허벌판을 떠돌아다니는 아낙네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충격과 함께 새로운 세계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런 계기로 다음번 여행부터는 ‘사회적’ 테마를 정해 ‘가장 어렵고 낮은 곳을 어루만질 수 있는 여행’을 떠나자 마음먹었다. 방학을 이용해 인도 꼴까따 마더하우스에서 봉사하기, 희망버스 또는 강정마을 투쟁 참여하기 등등을 경험했다. 그렇게 해서 나를 투쟁의 광장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 과정에서 의식은 점점 발전했던 것 같다.
이렇게 배낭을 메고 떠났던 여행의 첫 시리즈를 마치고, 현재 나는 다른 여행을 즐기고 있다. 예전에 배낭을 메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보이지 않을까 해서 멀리멀리 돌아다녔는데 지금 와서 보니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불만의 시발점이 되는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더 큰 여행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글쎄, 당분간은 이렇게 여행하며 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일단 이번 방학은 맑시즘 2012 포럼을 통해 내 여행의 피를 수혈받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