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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 통합 논쟁을 교육체제 개편 투쟁으로

민주통합당이 국립대 통합안을 대선 공약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학체제 개편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뜨겁게 일어나고 있다. 보수 언론들은 국립대 통합안을 ‘서울대 폐지론’으로 호도하거나 하향평준화 우려를 내세우면서 이 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사전에 봉쇄하려 하고 있다.

국립대 통합안은 여러 시각으로 읽힐 수 있다.

자유주의적인 관점에서 국립대 통합안은 지역 균형발전론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드러난다. 그들은 지방 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육성해 지역 주민들에게도 공정한 고등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국립대 통합안의 핵심으로 이해한다.

교육을 망치고 사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대학 서열화는 폐지돼야 한다. ⓒ임수현

다음으로는 국립대 통합안을 꾸준하게 추진해 온 진보적 교육운동 진영의 관점이 존재한다. 이들은 한국 교육문제의 핵심을 극단적인 대학 서열화와 이로 인한 과잉 입시경쟁으로 보면서, 국립대 통합안을 통해 대학 서열체제를 해체하고 과도한 입시 경쟁을 폐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국립대 통합안은 나아가 정부지원형 사립대를 확대해 이들까지 함께 네트워크를 맺는 대학통합네트워크를 최종적인 목표로 한다. 이 관점에서는 초중등 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해소가 가장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셋째로는 대학체제의 근본적인 개편 방안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한국의 고등교육 체제는 대학 간의 극단적인 서열화로 인해 학벌사회를 강화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구실 즉, 근대적 신분을 새롭게 생산하는 기지 구실을 해 왔다. 또한 폐쇄적인 족벌 체제에 의해 운영되는 사립대학이 난립하면서 대학의 공공성 수준은 바닥인 반면,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립대 통합안은 서열에 의해 수직적으로 위계화되고, ‘봉건적’ 사학자본과 부패한 관료들에 의해 고립되고 분열돼 있던 대학들을 수평적 연대와 공공적인 협력을 통해 재구성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대학생 40만 명(한 학년에 약 10만여 명), 대학원생 20만 명, 대학교수 5만~10만 명이 공동운명체로서 새로운 민주주의(자치)와 협력(연대)을 실험할 수 있는 전망까지 국립대 통합안에 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초보적 개혁

이렇듯 국립대 통합안(나아가 대학통합네트워크안)은 매우 여러 가지 성격과 의미가 응축돼 있는 방안이다.

민주당의 소극적인 분파들은 국립대 통합안을 첫째 수준으로 후퇴시키려 하고 있으며, 적극적인 분파는 둘째 수준으로 상향시키려 하고 있다.

사실 자유주의 세력인 민주당이 국립대 통합안을 주장하는 것은 매우 특이한 경우다. 진보적 교육운동의 중심이라는 전교조 지도부는 최근까지 국립대 통합안이 너무나 이상적인 과격한 안이라며 이를 외면해 왔다. 또한 진보적 교수 일부가 국립대 통합안이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민주당에게 철회할 것을 지금도 권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뛰어넘는 국립대 통합안을 민주당이 주장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한국의 교육 모순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문제점과 심각한 고통에도 대중이 한국의 교육체제에 인내심을 보인 것은 교육의 보상체제가 일정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체제가 더 많은 경쟁, 더 많은 지출, 더 많은 고통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이제 보상체제는 거의 붕괴됐으며 이에 따라 대중의 인내심은 한계에 이르고 있다.

민주당은 이런 대중의 분노와 불만을 무마하고, 그들의 분노와 불만을 자신들에 대한 지지로 전환시키기 위해 급진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이다.

둘째로, 진보진영의 무능력 때문이다. 사실 국립대 통합안은 철저하게 봉건적이면서도 가장 시장화된 대학 사회를 가장 공공적이면서도 민주적인 체제로 변화시킴으로써 신자유주의에 의해 질식당해 왔던 공공성과 민주성을 사회의 다른 부문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 지렛대 구실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국립대 통합안은 당연히 진보정치 세력의 핵심적인 의제가 돼야 한다. 그러나 진보정치 세력의 몰락에 의해 빈 공간이 발생하자, 자유주의 세력인 민주당이 이 공간을 침식해 들어오고 있는 형국이다.

국립대 통합안으로 촉발된 대학체제 개편 논쟁은 대선 국면까지 지속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논의의 중심적인 지형은 보수 세력과 자유주의 세력 사이에서 형성될 것이다. 자유주의 세력들이 국립대 통합안 등 여러 가지 교육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겠지만 그들이 내세운 방안들을 견결하게 밀고 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결국 그들의 구실은 공적 논의 공간을 확장하는 데 머물 것이다. 이제는 진보진영에서 그들이 확장해 놓은 공간을 점유해 들어가야 한다. 진보진영이 마련한 방안을 그들의 언어로 재정의하면서 전유해 나갔듯이, 이제는 우리가 그들이 확장해 놓은 공간을 좀더 진보적이고 변혁적인 성격으로 재구성해 나가야 한다. 머뭇거리고, 후퇴하려 하고, 물타기 하려는 그들을 질타하고 비판하고 뛰어넘으면서,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대중적 흐름들을 창출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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