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오바마냐 롬니냐’보다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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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3개월 앞으로 다가온 미국에서 평범한 노동자·서민의 현재 상황은 결코 좋지 않다.
4천7백만 명이 빈곤층으로 분류될 정도로 빈곤이 확산돼 빈곤률은 46년 만에 최고치고, 실업률은 공식 통계만으로도 8퍼센트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닥터 둠’(‘파멸 예언 박사’) 루비니는 “미국 경제가 앞으로도 수년 동안 추세를 밑도는 성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대선의 쟁점은 이런 바탕 위에서 형성되고 있다. 퓨리서치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인 세 명 중 한 명이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일자리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사회 복지와 연결된 건강보험 문제, 빈곤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등의 쟁점이 그 뒤를 이었고, 성소수자·인종차별도 뜨거운 쟁점이다.
이 쟁점들은 오바마 정부 4년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2008년, 많은 사람들의 큰 기대 속에 임기를 시작한 오바마는 그를 지지한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켰는가?
1퍼센트를 위한 “담대한 희망”
지독한 인종차별, 성차별, 복지 부족으로 오랫동안 고통받았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서 시작된 경제 위기로 삶이 파괴되던 많은 미국인들이 보기에,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는 부자들에 맞서 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 듯했다.
물론 미국의 일부 지배자들도 오바마 당선을 환영했다. 월가 금융권을 비롯한 기업인들도 공화당 후보 매케인보다 오바마에게 더 많은 후원금을 냈다.
그러나 오바마는 그를 향한 기대의 한쪽 편에만 부응했다. 오바마 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월가 출신이거나 대기업 출신이었다. 경제 위기에서 지배자들을 구제하는 데 힘을 아끼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붙은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는 오바마 정부를 따라다닌 꼬리표였다. 많은 미국인들이 이에 크게 실망했다.
오바마의 4년은 전쟁의 4년이기도 했다. 빈 라덴을 처형하고 이라크에서 철군했지만 아프가니스탄에 더 많은 군사와 전쟁 자금을 쏟아부었다. 미국 외부의 수용소 수감 인원은 지속적으로 늘어났고, 수감자들을 고문이 합법인 국가에 인도해 버리는 사례도 끊이지 않고 폭로됐다.
지난 대선에서 그가 가장 강조했던 쟁점 중 하나인 국민건강보험도, 비록 오바마의 지지율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긴 했지만, 제한적 성취만 거뒀을 뿐이다.
지난 6월 말 대법원에 의해 합헌 판정을 받은 건강보험 개혁안은 여전히 가장 가난한 2천6백만 명을 의료보험 혜택에서 제하고 있다.
극빈층을 위한 의료보험 제도인 ‘메디케이드’ 재정 확충도 유명무실했다. 공화당이나 보험회사들과 타협하느라 추가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8백50만 명이 보험혜택 대상에서 제외될 위기에 처했다.
많은 사람들은 오바마가 최초의 흑인대통령이라는 점 때문에 인종차별 문제에 강하게 맞설 것이라 기대했다.
지난 6월 마침내 오바마가 30세 미만의 이주자들에 대한 단속 추방을 중단하겠다는 행정명령을 발표한 것은 이런 기대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결정은 그림의 절반일 뿐이다. 오바마는 지난 3년 동안 언제든 발효할 수 있었던 행정명령을 내리려 하지 않았고, 여전히 이주자들이 ‘불법이주민’ 지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그림의 나머지 절반이다.
올해 상반기에 이슈가 된 동성결혼 차별 반대 문제도 마찬가지다. 오바마는 동성결혼 합법화 지지 발언을 하고, 대법원은 동성결혼을 차별하는 현행 결혼보호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지만, 사실 성 소수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안은 이미 35년 전 최초로 발의됐다. 오바마는 이전 민주당 정부와 꼭 마찬가지로 머뭇거리고 망설이다 선거 때가 되서야 공화당과 차별점을 긋는 데 이 쟁점을 이용하고 있다.
요컨대, 오바마의 희망은 “담대”하지도 않았고, 그나마도 99퍼센트를 위한 몫은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지배자들은 이 정도로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오바마가 경제 위기 고통 전가를 더 효과적으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뼛속까지 1퍼센트’라고 할 만한 공화당의 롬니 같은 자들이 대선에 출마하는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는 것이다.
“귀족”, “인종주의자”, “긴축론자”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재벌 가문 출신인 밋 롬니는 자기 재산만 2억 5천만 달러 이상으로 알려진 갑부다. 롬니는 헤지펀드회사 베인캐피털 최고경영자로, 기업을 헐값에 인수해 노동자들을 구조조정했던 것으로 악명 높다.
그는 오바마가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지 않는다” 하며 공공연히 비난해 보수결집을 노리고 있다.
“빈곤층 따위 신경 안 쓴다” 하고 말해서 “귀족”이라는 딱지가 붙은 롬니는 러시아를 “공공의 적 1호”로, 중국을 “환율조작자”로 부르는 냉전주의자이기도 하다. 롬니가 보기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보다 부유한 것은 “신의 섭리” 때문이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는 것이 미국이 가야 할 길”이다.
롬니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폴 라이언도 결코 롬니 못지않다. 그는 하원 예산위원회 의장으로서 재정 감축과 복지삭감에 앞장섰고, 골드만삭스·시티은행 등의 주가가 폭락하기 직전에 주식을 처분한 것으로 내부자 거래 혐의도 받고 있다. 뇌물을 수수하고 카지노 설립을 지원한 혐의도 제기됐다.
부통령 후보로서 낸 공약도 향후 10년간 정부지출 5조 3천억 달러 추가 삭감, 현재 36퍼센트인 법인세를 25퍼센트로 대폭 인하, 노인을 위한 의료보험 ‘메디케어’의 민영화 등 ‘1퍼센트’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것들이다.
오바마의 시늉뿐인 기업 규제조차 질색하는 미국 지배자들의 지지는 공화당으로 쏠리고 있는 듯하다. 군수기업의 대변자로 정계에 복귀한 딕 체니 같은 인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기업들의 후원금도 민주당보다 공화당에 세 배 이상 많이 몰리고 있다.
그러나 롬니와 라이언 모두 너무도 노골적으로 지배자들의 대변자로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대중적 지지를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점거하라’ 운동으로 드러난 반자본주의 정서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바로 그래서 긴축 반대, 전쟁 즉각 종식, 부유층에 대한 공격적인 소득세 인상, 인종과 성 평등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녹색당의 질 스타인이 출마할 수 있는 것이다.
저명한 미국의 진보 지식인 하워드 진은 “정말로 중요한 것은 누가 백악관에 앉아 있느냐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누가 거리에, 카페에, 정부청사 홀에, 공장에 ‘앉아 있느냐’다. 누가 투쟁하고, 누가 사무실을 점거하고, 누가 시위에 나서느냐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결정할 것이다” 하고 쓴 바 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점거하라’ 운동에서 드러난 미국 운동의 잠재력이 어떻게 대중적 저항으로 표현될 것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