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대다. 그리고 알바생이다.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고, 설거지를 하고, 계산을 하고, 청소를 하는 그 흔한 식당 알바생이다. 그날도, 내가 아무리 팔아도 내 돈이 되지 않는 빈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바로 옆 테이블에서 대화가 들려왔다. 어느 교수가 남학생에게 하는 충고인 듯했다.
“취업을 잘하려면 외모를 잘 가꿔야 해. 잘생기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그런 스타일 있잖아? 호호 너도 할 수 있어. 호호” 나는 귀가 거북했다.
청년실업 1백만 시대다. 그러나 사회는 이 청년들에게 취업의 어려움이 당신의 부족함과 나태함, 눈높이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나 또한 박근혜는 절대 모르는 최저시급을 받으면서 남들이 먹던 음식을 맨손으로 만져야 할 때, 마치 하수구에 엉겨 붙은 머리카락이 된 기분이다.
씁쓸하게 밥을 우적거리던 그 남학생도 그런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모순된 충고인가. 한쪽에서는 대량해고와 깡패를 동원한 폭력에 노동자들이 죽어나간다. 또 수많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이 해고의 불안에 덜덜 떨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서는 청년들에게 조금만 노력하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잘 견디면 안정적인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우리의 정신 상태와 능력을 시험에 들게 한다.
그러나 시험에 들어야 하는 것은 대학생들을 상대로 이자 놀음을 하는 정부와 자기 배만 채우는 사학재단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확대를 일삼는 대기업들이다. 그리고 경제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채 사람들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박탈하면서 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병든 자본주의 체제가 시험을 받아야 한다.
그들이 식사를 끝마쳤을 때, 교수의 손에는 〈조선일보〉가 들려 있었다. 1퍼센트는 당신의 부족함만을 꼬집는다. 그러나 99퍼센트는 말한다. 문제는 당신이 아니라 지금의 이 세계라고. 또한 당신과 같은 수많은 사람들의 엄청난 힘을 말하고 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변혁의 씨앗이 움트고 있다.
부디 그 남학생이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 보면서 한숨 쉬지 않기를. 우리 모두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 추한 체제의 진실을 비추어 보기를. 오늘도 손톱에 낀 음식찌꺼기를 빼면서 간절히 외친다.
당신이 나에게 공감한다면 무기력과 자책을 털어내고 우리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걸어야 할지 진지하게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